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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이용규의 번트와 김상현의 슬라이딩, 과연 정당했는가?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0. 23.

한국시리즈 5차전은 로페즈의 완봉쇼로 KIA가 SK를 3-0으로 제압했군요. 하지만 경기의 내용이나 로페즈의 환상투 보다도 더욱 주목을 받은 플레이가 속출한 ‘문제성 짙은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27년 만에 환생한 이용규의 개구리 스퀴즈번트, 그리고 김상현과 박정권의 슬라이딩, 또한 김성근 감독의 항의와 퇴장까지. 여러 가지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벌어졌는데요. 과연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살펴보시죠.

▶ 이용규의 번트는 정당한가?

정말 대단한 번트였습니다. 이용규의 번뜩이는 재치와 센스가 아니라면 쉽게 성공시키기 어려웠을 정도의 고난이도 플레이였죠. 분명 멋있는 장면이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27년 전의 아련한 추억까지 떠올리게 만들어주었으니 더 할 나위 없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멋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당한 쪽이 SK였다고 해서 그 플레이를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번트는 확실한 ‘반칙’이었고, 그것을 인정한 심판들의 판정은 오래 생각할 것도 없는 명백한 ‘오심’입니다.(여기서의 반칙은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단순히 결과적으로 규정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이용규 선수를 욕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니 오해 말아 주시길)

조종규 심판위원장은 "양발이 공중에 뜬 채 번트가 이뤄졌지만 그건 본래 관계없다. 만약 처음부터 이용규가 한 발로 홈플레이트 근처를 밟은 뒤 번트를 댔다면 그건 아웃시킬 수도 있다. 이번 이용규의 번트는 전혀 문제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는데요. 괜히 이 말 한마디를 하는 바람에 안 먹어도 될 욕을 더 듣게 생겼습니다.

이용규가 양발이 모두 자신의 배터박스에 위치해 있다가 점프를 하여 번트를 댔다면 조종규 심판위원장의 말처럼 반칙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용규는 분명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나 홈플레이트 근처를 한 번 밟은 후 점프를 했죠. 야구규칙상 한 발이라도 배터박스를 벗어나면 그것은 그 자체로 규정위반입니다.(재밌는 건 이 룰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바로 박재홍 때문입니다)

하지만 황당한 것은 이때는 SK의 벤치가 조용했다는 점이지요. 만약 이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이 심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그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선수단을 철수시켰다면 전 그 김성근 감독의 행동을 지지했을 겁니다. 물론 한국시리즈에서의 선수단 철수는 결코 박수 받을 수 없는 행위이지만, 상황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그런 극단처방이라도 해야 할 만큼 절박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우습게도 이 장면에서는 모두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어영부영 넘어가더군요. 이용규는 순식간에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 결국 이후의 예상치 못한 사태까지 벌어지며 경기는 산으로 가고 맙니다. 대체 김성근 감독은 왜 이때는 가만히 있었던 걸까요? 저로서는 이 점이 5차전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 김상현의 슬라이딩은 정당한가?

문제는 여기부터죠. 이종범의 땅볼 때 김상현은 자신의 긴 다리를 한껏 과시하며 2루를 향해 슬라이딩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주루플레이가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며 말들이 많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그러한 상황을 확실하게 정리해 줄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죠.

‘3피트 룰’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태그아웃일 경우 ‘몸통’에 한하여 적용되는 것입니다. 김상현의 경우는 포스아웃이었고, 몸통이 아닌 다리였으니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어렵겠죠. 사실 일일이 이런 세밀한 상황에 대해 규정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규정의 허술함을 논할 문제도 아니라는 뜻이죠.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 동안 비슷한 플레이를 어떻게 판정해왔느냐, 즉 그 동안의 관례(판례)가 어떠했느냐를 살펴보면 됩니다. 사실 그게 가장 정확한 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그렇게 과거의 상황들을 놓고 봤을 때, 그 슬라이딩은 수비방해가 아닙니다. 실제로 이런 슬리이딩을 통한 수비방해는 일종의 스킬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이보다 더 심한 슬라이딩이라 하더라도 수비방해로 판정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상현의 슬라이딩은 수비방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본 것이 옳은 판단일 겁니다. 그보다 더 심했던 조동화의 슬라이딩도 수비방해로 판정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상현의 플레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하겠지요.

아, 그렇다고 김상현의 플레이가 과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 다소 과한 면이 있긴 했죠. 정당한 플레이와 수비방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다소 위험한 플레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조동화의 플레이가 수비방해로 판정받지는 않았지만 많은 팬들의 지탄을 받았던 것처럼, 김상현의 플레이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봅니다.

당한 쪽이 그동안 비슷한 경우에서 가해자의 입장이었던 SK라 통쾌하게 느껴지시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상현 선수보고 잘했다고 하는 건 좀 유치하지 않나요? 김상현 스스로도 앞으로 그런 플레이를 다시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정당한 플레이라고해도 ‘위험하지 않은 플레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으니까요. 큰 사고 없이 넘어갔으니 다행이지, 만에 하나 나주환이 큰 부상이라도 당했더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 김성근 감독의 항의는 정당한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김상현의 플레이는 분명 다소 과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럼 감독된 입장에서는 일단 항의를 하는 것이 당연하죠. 감독이란 꼭 ‘정당한 의견제시’를 위해서 항의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때로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흐름을 돌려놓기 위해 ‘항의’라는 도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정당성 여부를 떠나 김상현의 플레이로 인해 나주환의 다리가 걸렸고, 제대로 된 송구가 이루어지지 못해 점수를 줬다면 일단은 무조건 항의를 하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선에서의 감독의 역할이죠. 항의 자체를 두고 김성근 감독을 욕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단, 그 타이밍이 참으로 애매했고, 그 정도가 심했다는 점이 문제죠. 이용규 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김성근 감독이 정말로 강경하게 항의를 해야 했던 타이밍은 그 문제의 ‘개구리 번트’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시기는 놓쳐버리고 적당한 수준에서 넘어가야할 문제는 반대로 너무 크게 벌여놓았다는 점이 문제죠.

명백한 오심은 대충 넘어가더니, 자기 팀 선수들도 자주 하는 플레이에 대해서는 선수단까지 철수시킨 것은 좀 심하게 오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퇴장을 당한 것은 선수단을 철수시켰기 때문입니다. 항의를 강하게 해서 심판이 열 받아서 퇴장시킨 것이 아닙니다. 규정상 감독이 그러한 강경책을 쓰면 퇴장을 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독들 역시도 그런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 때는 퇴장을 각오하고 하는 것이죠. 이걸 두고 심판이 SK의 안티라고 욕하는 건 좀...

▶ 그럼 나주환의 플레이는 프로다웠는가?

알고 계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전 기본적으로 한국야구보다는 메이저리그가 전공(??)입니다. 그런 제게 있어서 이번 김상현의 슬라이딩은 매우 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수준이죠.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유격수와 2루수의 점핑 스로우가 기본 옵션입니다. 당연히 상대의 슬라이딩이 자신을 겨냥할 것을 알고 첨부터 높이 점프하여 송구를 하죠.

그런 면에서 나주환의 플레이는 안일한 면이 있었습니다. 사인 훔치기 논란에 대해 최근 김성근 감독이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바가 있죠. “그런 것에 당하지 않는 게 프로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저 역시도 직접 쓴 글을 통해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었습니다.

그럼 답 나왔군요. 설령 김상현의 슬라이딩이 더욱 심하게, 예를 들면 조동화처럼 아예 몸통부터 상대 수비수를 향해 돌진했다 하더라도 당하지 않는 게 프로다운 겁니다. 김성근 감독님, 설마 자신이 내뱉은 말을 뒤집을 생각은 아니시죠? 간단히 말해 나주환의 플레이는 프로답지 못했습니다. 두산의 손시헌은 조동화의 슬라이딩에도 불구하고 수비 잘만 하던걸요? 게다가 김경문 감독은 거기에 대해 별다른 어필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성근 감독님 스스로의 말씀대로라면, 그게 프로다운 겁니다.

▶ 박정권의 슬라이딩은 정당했는가?

이 부분은 그냥 간단하게 정리하죠. 앞에 제가 언급했었죠. 당했다고 해서 똑같이 갚아주는 건 유치한 짓이라고. 박정권의 슬라이딩은 TV 속의 3류 코미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치함의 극치였습니다. 이건 뭐 초딩끼리 싸우는 것도 아니고 원...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묘기에 가까운 멋진 점핑 스로우나 감상하시죠!! 이 정도는 해줘야 “이야~ 고놈 메이저리거 답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진=KIA 타이거즈, 연합뉴스, 일간스포츠, OSEN, 네이버 캡쳐]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