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본격적인 프로야구의 스토브리그가 시작되었습니다. FA 자격을 갖춘 선수가 공시되고, 권리를 행사하려는 선수들은 이미 신청을 끝마친 상태죠. 올해는 총 27명의 선수들이 FA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 막상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 선수는 8명에 불과합니다.
올 시즌 ‘FA 최대어’로 꼽히는 김태균을 비롯해 이범호, 강동후(이상 한화), 장성호, 김상훈(이상 KIA), 박재홍(SK), 박한이(삼성), 최기문(롯데)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아쉽게도 올해 자격을 갖추고 있던 이종범이나 이대진, 송지만, 김수경 등은 그 권리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27명 가운데 30%인 8명만 신청하는 FA 규정, 이것이 올바른 제도일까요?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FA 규정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이 있죠. 바로 ‘보상 규정’인데요. 그 내용이 가히 살인적인 수준입니다.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해당 선수의 원 소속 구단에 대한 별도의 보상을 해야 합니다. 선수의 전년도 연봉의 300%와 보상선수 한 명, 또는 전년도 연봉의 450%를 지불해야 하죠. 예를 들어 연봉 3억원의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9억원과 보상선수 1명, 또는 13억 5천만원을 원 소속 구단에 넘겨줘야 합니다. 물론 계약한 선수에 대한 계약금과 연봉은 별도로 줘야 하죠.
3억원을 받던 선수가 FA를 신청했다면 최소한 그 이상의 금액을 원해서이겠죠. 그만큼 받을 자신도 있기에 신청했을 겁니다. 한 번 FA를 취득한 선수가 또 다시 FA가 되기 위해선 4년만 더 뛰면 되죠. 그 선수에게 4년간 15억원을 약속했다 치면, 실질적으로 구단이 투자해야하는 금액은 최소 24억과 선수 한 명, 혹은 28억 5천만원이 되죠. 그 정도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영입할만한 선수는 정말 몇 안 되는 것이 사실이죠.
송지만이 올해 FA를 신청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송지만은 올해 3할에 가까운 타율(.289)과 22홈런을 기록하는 수준급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FA 신청을 통한 ‘대박’을 노리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대박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히어로즈 구단은 2008년에 13홈런 62타점으로 큰 활약을 펼치지도 못한 송지만의 연봉을 2억2천에서 4억으로 대폭 상승시켜주었죠. 이미 그 때 당시부터 ‘보상금을 노린 얄팍한 수작’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는데요. 결국 FA가 되더라도 자신을 원하는 구단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권리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두고 이장석 사장이 웃었을지, 아니면 울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건 계획에 있었던 것이겠죠. 참으로 웃지 못 할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올해 강동우가 펄펄 날 것이라 예상치 못한 한화 구단은 지금쯤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을 텐데요.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3할 타율과 88득점 27도루를 기록하며 데뷔년도인 1998년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친 강동우의 올 시즌 연봉은 고작(?) 7천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인데요. 내년이면 36이 되는 선수에게 많은 연봉을 안겨주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적은 보상금을 받고 내주기도 애매한 한화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종범(2억원)과 이대진(1억원)이 FA 신청을 포기한 이유는 위의 경우와는 또 다를 겁니다. 바로 은퇴가 걸려 있기 때문이죠. 사실 이 두 명이 FA를 신청한다는 것은 은퇴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종범은 분명 대단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의 능력치는 보상선수 한 명과 6억원, 또는 8억원의 엄청난 보상을 하고 데려와야 할 정도는 아닌 것이 사실이죠. 이종범은 현재 KIA 내에서도 ‘제10의 선수’이니까요.
그런 이종범이 FA를 신청한다면,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갈 곳 없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론이 무서워서 구단 측에서 적극적으로 은퇴를 종용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웨이버 공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수가 직접 FA를 신청해준다면 그것은 더 없는 찬스가 될 테니까요. 이대진은 말 할 것도 없지요.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고심을 거듭한 이종범은 FA라는 권리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종범 같은 슈퍼스타 출신의 베테랑 플레이어가 FA를 신청하지 못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KIA에 남는다 하더라도 FA 자격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니까요. 구단을 위한 ‘보상규정’이 선수를 위한 ‘FA 제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종범이 이번에 FA를 신청해서 현재의 불합리한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도 했기에 더욱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종범은 충분히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선수이고, 그런 그가 반강제로 은퇴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여론이 들고 일어날 테니까요. 그러면 지금의 어처구니없는 보상규정을 팬들의 힘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험을 한다는 것이 이종범 개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요.
이렇게 현재의 FA 규정은 ‘실력 있는 일부 선수’만을 위한 규정일 뿐입니다. 또한 ‘돈 많은 일부 구단’만을 위한 것이기도 하죠. FA로 풀린 선수가 8명 이하일 때는 각 구단마다 외부에서 영입할 수 있는 선수가 1명으로 제한되어 있기도 합니다. 9~16명이면 2명, 17~24명이면 3명, 그런 식입니다.
이래서야 선수도 제대로 된 권리를 행사하기 힘들고, 구단도 자신들의 필요에 걸 맞는 선수보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반쪽짜리 허술한 규정’에 불과한 것이죠. 우리나라 KBO의 규정 가운데 제대로 된 것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FA 규정은 그 중에서도 심각할 정도로 허술합니다.
이종범 같은 노장의 슈퍼스타가 자신의 권리를 올바로 행사할 수 있는 그런 규정. 팬들이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