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1일) 오후 5시 부터 2009년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해 온 선수들에게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지요.
우리나라의 골든글러브는 미국의 골드글러브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골드글러브는 처음부터 ‘수비 좋은 선수’를 뽑기 위한 상이었지만, 우리나라의 골든글러브는 ‘베스트 10’의 의미가 더욱 강하지요. 따라서 타격 성적이 훨씬 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실버슬러거+골드글러브’의 의미를 지닌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뽑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작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매년 ‘의외의 수상자’들이 배출되면서 물음표를 자아내곤 했는데요. 2007년에도 3루수 부문에는 타율-최다안타 1위인 이현곤의 수상이 유력하다는 언론의 예상을 보고 기가 막혀서 ‘김동주와 이현곤, 3루수 골든 글러브는 누구의 손에?’라는 칼럼을 Daum에 송고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칼럼의 결론은 ‘출루율 1위이며, 홈런-타점에서 월등히 앞서는 김동주가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KIA 팬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김동주가 수상하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죠.
그 당시 김동주가 수상자로 결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야구 기자들의 수준이 크게 올라갔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한국시리즈 MVP로 나지완을 뽑는 것을 보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구나’라는 참람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최악의 코미디 시나리오’는 이번 골든글러브에서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언론은 바람몰이에 나서기 시작했고, 턱도 없는 이유로 몇몇 선수들의 수상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번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최악의 ‘코미디’ 시나리오를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1. 유동훈, 황재균, 가르시아의 후보 탈락
사실 최악의 코미디는 이미 벌어진 상황입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가운데 한 명이랄 수 있는 KIA의 마무리 투수 유동훈이 투수 부문 후보에서 탈락했기 때문이죠. 로페즈와 더불어 2파전을 형성해야 할 선수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애킨스-이용찬-권혁은 후보로 올라 있는데 말이지요. 3루수와 외야수 부문 후보에 오르지 못한 황재균과 가르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글(클릭)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로페즈의 투수 부문 수상 실패
“로페즈만 따돌리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얼마 전 조정훈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아무리 탈삼진 부문에서 앞선다곤 하지만 14승 9패 평균자책 4.05의 성적표를 받아든 ‘토종’ 선수가 14승 5패 평균자책 3.12의 ‘용병’ 선수와의 경쟁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 이 자체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평균자책 1위라곤 하지만 로페즈보다 52이닝이나 적게 던진 김광현(12승 2패 2.80)이 또 하나의 경쟁자라는 것도 우습긴 마찬가집니다. 유동훈이 후보로 올라 있었다면 모를까, 올 시즌 투수부문 수상자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율로 로페즈가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토종 선수들이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국인 선수들은 자주 무시당해왔지요. 과연 올해도 그런 결과가 이어질까요? 로페즈가 수상에 실패한다면, 골든글러브의 색깔은 ‘금색’이 아닌 ‘똥색’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3. 홍성흔의 지명타자 부문 수상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유력 스포츠 언론의 수상자 예측을 보고 허탈한 웃음을 금할 길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다수가 홍성흔을 지명타자 부문의 수상자로 예상하고 있더군요. 지명타자 부문의 후보는 세 명입니다. 홍성흔(12홈런 64타점 .371), 최준석(17홈런 94타점 .302), 그리고 페타지니(26홈런 100타점 .332)입니다. 대체 왜 홍성흔의 수상이 ‘유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홍성흔이 3할7푼 이상의 타율로 이 부문 2위를 차지한 것은 분명 놀라운 성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페타지니의 100타점 보다 대단한가요? 페타지니의 100타점은 LG의 팀 역사상 최초의 기록입니다. 26홈런도 1999년의 이병규에 이은 역대 2위의 기록이죠. 그는 올 시즌 전체 타자들 가운데 출루율 1위이며, OPS 2위입니다. 출루율 8위, OPS 7위인 홍성흔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죠.
타율은 일종의 ‘확률’입니다. 그리고 같은 확률이라면 타율보다는 출루율과 OPS가 훨씬 가치 있고 신뢰성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앞서는 거라곤 타율 하나인 홍성흔이 페타지니를 따돌리고 지명타자 부문 2연패를 노린다? 아무리 제가 롯데 팬이라고 해도 이건 용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네요. 지명타자 부문의 수상자는 페타지니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코미디가 자행될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군요. 기자들이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4. 안치홍의 2루수 부문 2위
2루수 부문의 후보는 정근우(98득점 53도루 .350)와 신명철(20홈런 21도루 .291), 그리고 안치홍(12홈런 65타점 .230)까지 세 명입니다. 2루수 부문의 후보자 선정 기준은 ‘.230이상, 규정타석 이상’입니다. 더욱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 부문의 기준이 .250이상임을 감안할 때, 애당초 안치홍을 포함시키기 위해 저러한 기준을 설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상대적으로 올 시즌 2루수들의 활약이 미미하기도 했구요.
2루수 부문은 정근우가 무난히 수상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안치홍의 이름을 내걸고 ‘고졸 선수 역대 4번째 수상 가능성’을 운운하며 말도 안 되는 뻥을 치고 있죠. 고졸 선수로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고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그가 이슈의 주인공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근우, 신명철 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지요. 안치홍이 감히 정근우의 수상을 방해할 순 없겠지만, 최근 분위기상 신명철을 따돌리고 2위가 되는 모습은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집니다. 20-20클럽에 가입한 신명철이 안치홍에 밀린다는 것은, 올 한 해 내도록 우리가 입이 마르게 칭찬했던 추신수의 기록을 깔아 뭉게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 그런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그 외 잡설
올해는 그 외에도 재미있는 수상자가 다수 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KIA의 김상훈은 포수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고, 저 또한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것은 ‘김상훈이 잘해서’라기 보단 ‘경쟁자가 죄다 부상을 당해서’이지요. 실제로 김상훈은 올 시즌 규정 타석을 채운 43명의 타자들 가운데 타율 꼴찌(42위는 안치홍)입니다. 우리는 사상 최초로 타율 꼴찌의 골든글러브 수상을 지켜볼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물론 이건 김상훈의 잘못은 아니지요. 그는 수상의 자격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투수 로페즈, 포수 김상훈, 1루수 최희섭, 2루수 정근우, 3루수 김상현, 유격수 강정호, 외야수 김현수, 박용택, 강봉규, 지명타자 페타지니의 수상을 예상해 봅니다. 이 중 얼마나 맞을지 궁금해지네요. 투수 부문의 이름이 김광현(혹은 조정훈), 지명타자 수상자가 홍성흔이 된다면 전 그냥 정신줄 놓고 맘껏 좌절하렵니다.(--;)
[사진=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