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적토마’ 이병규의 국내 무대 복귀 과정이 완료되었습니다. LG 트윈스는 이병규와 2년 동안 계약금 1억과 연봉 4억원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일본 무대 진출 후 4년 만의 복귀네요. 뭐 복귀 자체는 환영합니다. 지난해 구심점 없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 했던 LG에 이병규라는 프렌차이즈 스타가 가세한다면 또 다른 부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 계약 내용은 정말 달갑지 않네요. 2년간 총액 9억원. 그것도 밝혀지지 않은 옵션이 있으며, 그 동안 이병규의 요구조건으로 봤을 때 그것은 최소 1억원 이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질적으로 이병규는 일본진출 직전인 2006년에 받았던 연봉 5억원급의, 혹은 그 이상의 대우를 받고 국내 무대로 유턴한 것이죠.
이병규는 복귀 의사를 타진하는 순간부터 LG측과 연봉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시작했습니다. LG는 일본 “무대에서 실패한 이병규에게 최고 대우를 해줄 순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 이병규는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드러난 결과만 본다면 결국 이병규의 요구가 어느 정도 관철된 셈입니다. 이병규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 지켜준 셈이죠. 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은 또 한 번 짓밟히는군요.
일본에서 뛴 3년 동안 이병규는 265경기에 출장해 .253의 타율과 28홈런 119타점 1도루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에 일본으로 진출했던 그이기에 성공보다는 실패를 예상한 사람이 더 많긴 했지만, 어쨌든 매우 아쉬운 성과만 남긴 채 국내로 돌아온 것이죠.
간단히 말해 이병규는 일본 무대에서 실패했습니다. 많은 팬들의 기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죠. 그런 그가 국내 무대로 유턴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운운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3년 내리 이어지는 그의 실패로 인해 한일 양국의 프로야구 수준 차이를 절감하게 된 한국의 팬들은 은근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자존심을 내세우며 국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았으니, 이병규의 자존심은 세워줬을지 몰라도 국내 프로야구와 야구팬들의 자존심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삽질하던 선수라도 국내에서는 통한다’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죠. 그것이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달갑지 않은 현실임엔 틀림없습니다. ‘백의종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지위임’정도는 했어야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을까요. 전쟁에 패해 포로로 잡혔던 장수가 우여곡절 끝에 풀려난 후 임금 앞에 불려가 “전하, 능력 없는 소신을 벌하여 주십시오”가 아니라 “전하, 기뻐하여 주십시오, 소신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왔나이다”라고 뻔뻔하게 외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매우 씁쓸합니다.
이병규를 원하는 구단은 한일 양국의 18개 프로팀 가운데 LG가 유일했습니다. 일본의 구단들이야 이미 가능성이 사라진 이병규에게 관심조차 없었고, 국내의 나머지 7개 구단도 어마어마한 FA 보상금(17억5천만+보상선수 or 22억5천만)을 LG측에 지불해야만 데려올 수 있는 이병규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사실 LG의 입장도 난감했을 겁니다. 내심 ‘제발 다른 구단이 데려가서 FA 보상금이나 받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요. 이미 외야가 포화상태인 LG에게 이병규라는 선수는 또 하나의 숙제와도 같으니까요.
자, 어쨌든 일단 이병규는 연평균 최소 4억5천만원의 돈을 받기로 하고 LG에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앞으로 2년 동안 자신의 몸값에 걸 맞는 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전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사실 저 연봉이 과하다 못해 자존심 상할 정도라고 느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과거 이종범의 사례를 들어 이병규도 당장 일본 진출 직전의 포스를 뿜어내며 꾹내 무대를 호령할 것이라 예상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과연 그럴까요? 이종범은 20대 후반에 일본에 진출했고, 2001년 복귀 당시에 만31세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그가 뛰던 광주 구장은 국내에서 가장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었지요.(이종범의 하락세는 광주구장이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으로 변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병규는 전혀 다릅니다. 74년생인 이병규는 내년에 만36세가 됩니다. 그리고 그가 뛰는 잠실구장은 국내에서 타자에게 가장 불리한 구장이지요.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시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부담감이 그의 나이와 함께 자신을 엄습할 겁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4억 5천 이상의 연봉을 받은 선수는 모두 10명. 올 시즌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입니다. 즉, 이병규가 연봉값을 하기 위해선 투타를 통틀어서 ‘탑10’에 준하는 활약을 펼쳐야 한다는 뜻인데요. 그의 경력과 나이를 감안해 그 기준을 좀 더 내린다 하더라도 각 팀의 원투펀치급 타자로서의 성적을 내야합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국내 프로야구의 28년 역사상 만36세 이상의 나이로 규정 타석을 채우고 3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가 몇이나 될까요? 딱, 4명입니다. 프로원년에 백인천이 감독 겸 선수로 4할을 기록했고, 그 후로는 2006~7년의 양준혁, 2007년의 최동수, 2008년의 전준호까지 4명이 전부입니다.
‘양신’ 양준혁과 백인천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길게 할 것도 없겠지요. 전준호의 3할 타율은 목동구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최동수는 저 해가 자신의 프로 생활 가운데 커리어 하이였습니다. 이종범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과연 이병규가 3할 타율을 기록할 수 있을까요?
이병규는 1999년의 30홈런-30도루라는 기록을 달성한 덕분에 조금 과대평가된 면도 없잖아 있는 선수입니다. 저 해를 제외하면 20홈런을 넘긴 적도 없었고, 5할 이상의 장타율을 기록한 것도 그때뿐이었습니다. ‘배드볼 히터’의 대명사로 타율은 높았지만 4할대의 출루율은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지요.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인 2005년과 2006년의 홈런수는 각각 9개와 7개에 불과했습니다.
2006년 이병규의 성적은 120경기 출장에 타율 .297, 7홈런 55타점 3도루였습니다. 과연 4살 더 먹은 이병규에게 기대할 수 있는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요?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게다가 현재 LG의 외야는 엄청난 포화상태이지요. 1루수와 지명타자까지 모두 끌어들인다고 해도 데리고 있는 선수들을 전부 기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병규가 잘한다면 역시나 한일 양국 프로야구의 수준차를 절감하면서 자존심이 상할 것 같고, 못한다면 그런 선수에게 거액을 안겨줬다는 사실 때문에 또 기분이 나쁠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이병규의 저 계약 내용은 정말 실망스럽네요...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