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6월 1일에 벌어지는 프로야구의 선발 투수가 예고되었습니다. 나머지 7개 팀의 선발은 예상대로였는데요. 유독 한 팀만 달랐습니다. 바로 SK 와이번스였는데요.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이날 경기의 선발로 이승호를 예고했습니다. 현재 SK의 마무리인 81년생의 등번호 20번 이승호가 아닌, LG에서 뛰던 등번호 37번의 76년생 이승호 말입니다. 이승호는 올 시즌 2경기에 나와 2이닝을 던졌고, 지난해도 1군에서 3.2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인 선숩니다. 사실 상당히 의외인 ‘깜짝 등판’이죠.
원래 이날의 선발 투수는 송은범(4승 3패 2.59)일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등판했던 송은범이 6일 만에 정상적으로 등판할 수 있는 날이었죠. 알려진 바로는 송은범의 몸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갑작스레 깜짝 선발로 나서는 이승호가 잘 던져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볼 수도 없지요.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한가지 밖에 없죠. 김성근 감독은 이 경기를 포기한 겁니다.
6월 1일 문학구장에서 SK와 맞붙는 팀은 다름 아닌 한화 이글스, 그리고 선발 투수는 류현진(7승 2패 1.85)입니다. 그것도 지난 화요일에 완봉승을 거둔 이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일주일 만에 등판하는 ‘괴물’ 류현진이죠. 결국 김성근 감독이 5월의 ‘월간 MVP’를 수상할 정도로 최근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류현진과의 승부를 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송은범으로 류현진과 맞불을 놓기 보다는 화요일 경기를 포기하더라도 수요일과 목요일 경기를 모두 승리로 가져가겠다는 계산을 했을 겁니다. 저렇게 화요일만 넘어가면 수요일부터는 송은범-카도쿠라-글로버-김광현-고효준(엄정욱)으로 로테이션을 이어갈 수 있게 되니까요. 한화와의 주중 3연전은 물론, LG와의 주말 3연전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죠.
작전상으로 봤을 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 분의 야구관에 ‘재미’나 ‘팬을 위하는 마음’은 전혀 느낄 수가 없네요. 기왕이면 이제는 선입견 같은 걸 최대한 배제하고 김성근 감독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난 한 언론 기사에 의하면 김성근 감독이 “29일 경기에서 막판에 롯데가 대타만 냈어도 김광현을 긴급 투입시켰을 것이고, 그랬다면 6월 1일에 김광현과 류현진의 맞대결이 성사되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데요.(링크) 과연 실제로 그랬을까요? 송은범도 일부러 맞대결시키지 않고 피해가는 분이 과연 김광현을 류현진과 맞서게 했을까요...?
“화요일에 문학이 매진될 수 있었는데...”라는 말을 남기셨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송은범과 류현진의 매치업도 상당히 흥미로운 대결 아닌가요? 적어도 현재의 송은범은 윤석민과 더불어 국내 우완 투수들 가운데 최고 레벨이죠. 그와 류현진의 맞대결도 충분히 흥미로운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피했습니다. 김광현이라고 달랐을까요? 최근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저 모든 말이 단순한 ‘언론 플레이’일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김성근 감독이 언론의 마구잡이식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편이지만, 반대로 김성근 감독이 언론을 이용해 교묘하게 팬들을 향한 변명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됩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우리들은 김성근 감독이 SK 감독으로 있는 한 김광현과 류현진의 맞대결은 볼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팬들만 꾸고 있는 것이죠.
물론 ‘엘승호’라 불리는 이승호도 2군에서 좋은 기록(4승 1패 2.83)을 기록한 후 1군으로 올라왔습니다. 구위도 꽤나 괜찮은 편이더군요.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의 등판이 화요일인 것일까요? 정상적인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고효준을 대신해 수요일 경기에 들어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에이스급인 송은범을 하루 뒤로 미루면서까지 이승호를 먼저 등판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SK와 한화의 입장이 뒤바뀌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위 팀의 1승 보다는 하위 팀의 1승이 더 절박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1위 팀이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 대해 저로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것도 나름대로 팬들에게 충분한 이슈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매치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랬다는 점이 더욱 아쉽습니다.
‘낭만’과 ‘재미’는 없이 생각‘만’하는 야구. SK가 나머지 7개 구단의 팬들로부터 ‘최강의 팀’일지언정 ‘최고의 팀’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만큼은 그분께서 변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괴물’의 활약에 겁먹은 김성근 감독은 류현진이 무서워 정면승부를 피했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