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스포츠는 참으로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기록경기’ 혹은 ‘숫자놀음’이라는 별명도 있지요. 야구라는 스포츠가 ‘숫자’라는 것과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숫자’를 좀 더 객관화시키고 세분화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극대화하려는 노력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타율과 홈런, 방어율과 다승 등 전통적인 개념에서 중요했던 스탯(기록)들을 좀 더 세분화하면 야구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야구에 관한 ‘대부분의 것’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보는 새로운 눈’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세이버매트릭스입니다. 하지만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연구는 때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지요. 야구에는 ‘통계’라는 ‘과학적’인 요소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불확실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이버매트리션들은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방망이에 맞았을 때, 그것이 안타가 될 확률’을 놓고 그 원인요소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투수 스스로가 자신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지요. 결국 타구가 안타가 되느냐 마느냐는 투수 자신의 능력보다는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에 가깝습니다. 야구는 ‘수식’으로 이루어진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죠. 과학적인 수식이라면 동일한 변수가 투입되었을 때 그 결과 역시 모두 같게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필드에서 벌어지는 스포츠인 야구는 전혀 그렇지가 않지요. 완벽하게 동일한 두 타구라 하더라도 하나는 아웃이 될 수 있고, 하나는 안타가 될 수 있습니다.
센터 방면으로 날아가는 비거리 120m짜리 큰 타구라 하더라도 경기가 벌어지는 곳이 잠실구장(125m)이냐 대전구장(114m)이냐에 따라 플라이 아웃이 될 수도 있고 홈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가르는 안타성 타구를 날렸다 하더라도 상대 수비수가 손시헌이라면 멋진 수비로 그것을 잡아 아웃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손시헌이라 하더라도 그날의 컨디션과 타구가 터져 나오는 찰나의 순간의 반응 속도에 따라 완전히 동일한 타구를 잡아낼 수도, 놓칠 수도 있지요. 매번 똑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도 날씨, 그라운드 상태, 바람, 습도, 관중 수, 팀의 최근 분위기 등 단순한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운 수많은 요소들이 야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야구팬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야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라고 표현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수가 지닌 순수한 능력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을 ‘운’이라고 표현한다면, 야구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운칠기삼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리 세이버매트릭스가 발전하더라도 선수들의 능력을 숫자를 통해 100%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기록을 두고 두 선수의 실제 실력을 비교할 수는 없다는 뜻이지요.
동일한 홈런을 기록했다고 해도 그 선수가 잠실이나 광주구장을 홈으로 쓰는 두산과 KIA 소속일 때는 대전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한화 소속의 타자보다 좀 더 높이 평가해야만 할 겁니다. 투수일 경우는 반대겠지요. 30홈런 타자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며, 같은 2점대 방어율의 투수라고 해도 동일한 레벨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올 시즌 홈런 1위인 채진행은 홈에서는 29경기만에 11홈런을 쏘아 올렸지만, 원정에서는 34경기에서 7홈런에 그치고 있습니다. 반대로 작년에 홈런 2위를 차지했던 최희섭은 홈에서는 12홈런에 그쳤지만, 원정에서는 거의 그 두 배에 달하는 21홈런을 때려냈습니다. 구장의 차이 때문이지요.
2007년 한 해 동안 불운하기로 소문났던 KIA의 윤석민은 3.78의 방어율(리그 12위)을 기록하고도 7승 18패의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당시 KIA가 리그 꼴찌의 약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 같은 팀의 이대진은 윤석민(28경기)보다 훨씬 적은 17경기 만에 그와 동일한 7승(6패)을 챙겼었습니다. 게다가 방어율은 4.11로 더욱 나빴죠. 스코비(22경기 8승 10패 3.92)도 마찬가집니다. 윤석민은 KIA의 선수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운이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이러한 점은 연봉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불운’했기 때문일 뿐, 윤석민이 최다패를 기록한 것은 그 자신의 실력이 뒤처져서가 아니지요. 하지만 그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윤석민의 ‘연봉고과’는 타격을 입습니다.
물론 정상을 참작하여 충분히 고려해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당시 윤석민의 연봉고과가 비슷한 방어율로 더 많은 승수를 쌓은 김수경(12승 7패 3.88)이나 로마노(12승 4패 3.69)보다 좋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결국 윤석민은 자신의 능력과 별개의 요소로 연봉에서도 손해를 본 셈입니다. 이처럼 야구에서는 팀 성적만이 아닌 ‘개인성적’의 측면에서도 팀 동료를 잘 만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야구는 이와 같은 스포츠입니다. 확실한 어떤 공식이 정해져 있지 않죠. 투수들의 투구폼도, 타자들의 타격폼도 모두 제각각이고, 선수들 저마다의 스타일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심지어 구장의 규격에서도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징을 느낄 수 있지요. 이처럼 야구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것이 야구의 매력이 아닐까요. 같은 듯 보여도 다른,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정답은 어디에도 없고 너무나도 많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기를 이끌어 가고 승패를 판가름하는 스포츠.
“과학은 자연의 법칙이며 불확실한 인간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중략) 그러나 예술은 어떤 결실을 맺기까지 직관과 의지가 덧붙여진다. 여기에도 어떤 원리와 원칙이라는 게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당사자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우수한 선수나 감독일지라도 필자의 눈에는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예술가로 보일 뿐이다.”
코페트는 위와 같이 말하며 야구를 ‘예술’이라 칭했습니다. 야구는 ‘최대한 공평한 상황 속에서 과학적인 정확함’을 논하는 기록 스포츠(육상이나 수영 같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아주 다양한 변수 속에서 제 나름의 최선을 결과를 도출해 내는 독특한 스포츠입니다. ‘공평함’ 보다는 ‘다양성’과 ‘개성’을 더욱 추구한다는 특징을 이미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지요.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야구팬들도 매일매일을 야구와 함께 합니다. 이미 야구는 팬들의 일상생활이나 다름없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 틀림없습니다. 매일매일 펼쳐지는 야구 경기가 지겹지 않은 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속에 담겨 있는 ‘예술적인 특징’ 때문이 아닐까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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