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가 금요일(18일) 경기에서 SK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양 팀 선발의 뛰어난 피칭으로 인해 8회까지 2-1의 멋진 투수전이 벌어졌고, KIA는 9회초 1점을 추가하며 점수차를 2점으로 벌렸지요. 그러나 ‘역전의 명수’ SK의 막판 집중력은 너무나 대단했고, 완투를 노리고 마운드에 올라간 윤석민(24)은 또 다시 구원투수들이 자신의 승리를 날려버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미 8회까지 118구를 던졌던 윤석민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주일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의 등판이라는 점과 KIA 불펜이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조범현 감독이 윤석민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윤석민은 선두 타자인 최정에게 안타를 내줬고, 이어진 이호준을 2루 땅볼로 잡아냈지만, 결국 끈질기게 달라붙던 윤상균에게 적시타를 허용하고 맙니다. 점수가 1점차가 되고, 윤석민의 투구수가 130개를 넘어가자 결국 조범현 감독은 손영민을 투입하지요. 손영민은 나주환에게 볼넷을 내줬고, 투수는 다시 서재응으로 바뀌지만, 유독 이런 장면에서 자주 등장해 장면을 자주 보여주곤 하는 조동화가 바뀐 투수의 초구를 때려 주자 일소 끝내기 2루타를 작렬시킵니다.
8회까지 비자책 1점만 내줬던 윤석민의 투구 기록이 8이닝 3실점(2자책)으로 바뀌고, 다잡은 것처럼 보였던 승리가 날아가는 순간이었죠. 교체되어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윤석민이 글러브와 모자를 집어 던지며 화를 내는 모습은 평소에 자주 보기 어려운 생소한 장면이었습니다. 이미 그때 자신의 승리가 날아갈 것을 예감했던 것이 아닐까요?
올 시즌 윤석민의 성적은 4승 3패 1세이브, 방어율은 3.72입니다. 방어율이 특별히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리그 7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하지만 승수는 고작 4승에 불과하지요. 이게 다 소속팀 KIA의 ‘불타는 불펜진’ 덕분입니다.
윤석민은 현재까지 13번 선발 등판해 그 중 8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QS=6이닝이상, 3자책이하)를 기록했습니다. 7이닝이상을 던지고 3자책 이하로 막은 QS+는 6번 기록했지요. QS 회수는 7위, QS+는 류현진(12회), 사도스키(7회)에 이은 공동 3위 입니다. QS+를 달성한 경기에서만 이겼어도 6승은 거뒀겠지만, 윤석민의 승수는 4승에 그치고 있습니다.
올 시즌 윤석민은 선발 등판한 13경기 가운데 9번이나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후속 투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KIA의 불펜은 그 중 4번밖에 윤석민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했지요. 무려 5번이나 불을 지르며 윤석민의 승리를 날려버렸다는 뜻입니다. 윤석민을 제외하고는 구원 때문에 날린 승리가 가장 많은 선수가 바로 2승을 손해 본 봉중근, 사도스키 등입니다. 유독 윤석민 혼자만이 많은 승리를 날려버린 것이지요.
불펜이 윤석민의 승리를 모두 지켜주었더라면, 아니 다른 선수들처럼 1~2번 정도만 날렸더라도 윤석민은 지금쯤 7승 이상을 거두고 개인 첫 시즌 15승에 대한 희망도 가져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찌된 노릇인지, 유독 윤석민만 등판하면 불펜이 ‘롯데 놀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작년에는 크루세타(삼성)가 이 부문에서 5회로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2008년에는 랜들(두산)과 유원상(한화)가 마찬가지로 5번씩 불펜을 원망해야 했지요. 2007년에는 장원삼(당시 현대), 전병호(삼성), 봉중근(LG)이 불운에 울었고, 회수는 똑같이 5회였습니다. 헌데 올 시즌의 윤석민은 시즌의 50%가 채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그들과 같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원래 최근 몇 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가장 불쌍한 사나이’로는 단연 봉중근(31)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07년 이후 불펜 투수들이 봉중근의 승리를 날려버린 것은 무려 11번, 게다가 타자들까지도 도와주지 못하면서 QS를 달성하고도 패전을 기록한 경기가 무려 9번이었습니다. 어느 한 쪽이면 모를까, 불펜과 타자들 양쪽으로부터 꾸준하게 외면당한 투수는 봉중근이 유일했죠.
그에 비하면 몇 년 전부터 새롭게 떠오른 ‘영건 투수 3인방’은 그 동안 적어도 불펜의 도움만큼은 확실하게 받아오던 편이었습니다. 승운이 없는 것처럼 알려진 류현진(23)이지만 지난 4년 동안 구원진이 그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죠. 김광현(22)은 2번, 윤석민도 작년까지는 2번밖에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풀타임 선발로 활약한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3년 동안 6~7회 정도 아픔을 겪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하다 할 정도로 적은 수치입니다. 물론, 투구이닝을 길게 가져가며, 불펜이 승리를 날릴 확률을 최대한 줄인 스스로의 능력도 결합된 결과지요. 하지만 비슷한 레벨인 봉중근을 생각하면, 역시나 ‘불펜의 도움만큼은 확실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헌데, 올 시즌 윤석민이 갑자기 ‘불운의 제왕’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죠. 지난 2007년에는 타자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하며 3.78의 방어율로 18패(7승)를 기록, 모든 야구팬들의 동정을 한 몸에 사던 그가 이번에는 또 다른 형태의 불운을 겪으며 승수를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7년 당시 윤석민이 받은 득점지원은 2.20점, 올해는 그 두 배가 넘는 4.86점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번에는 불펜이 도와주지를 않네요.
그 착하기로 소문난 윤석민이 평소답지 않게 글러브와 모자를 내던진 것은 그러한 최근의 답답함이 저도 모르게 드러난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운드 위에서의 노련한 모습에 종종 잊게 되지만, 그는 아직 24살의 어린 투수이지요. 이런 것들이 쌓여서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KIA 불펜은 지금까지 14번의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 8개 구단 가운데 최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 순위에서도 유동훈(5회)과 손영민(4회)이 이 부문 1,2위에 올라 있습니다. 제아무리 3.97의 뛰어난 불펜 방어율(2위)을 기록하고 있다 하더라도, 팀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요.
선발로 전향한 2007년 이후, 2008년 정도를 제외하면 윤석민은 항상 운이 없거나 팀 사정에 의해 개인 기록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석민의 뒤를 따라다니는 이 지긋지긋한 불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국내 최고의 우완 에이스가 실망하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P.S. 윤석민이 결국 라커를 가격하다 손가락이 골절되서 6주 동안 출장하지 못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군요. 어제의 경기가 어지간히 아쉬웠나 봅니다. 보기 드물게 글러브와 모자를 던지더니, 그걸로도 부족했나 보네요. 그나저나 그로 인해 KIA는 앞으로의 행보가 조금 어려워질 것 같네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KIA 타이거즈,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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