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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롯데를 자극한 조범현과 KIA의 'SK식 야구'

by 카이져 김홍석 2010. 7. 30.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7개 구단의 팬들 사이에서 SK는 마치 공공의 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유래가 없을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승리방정식에 대해서는 다른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사실 지금의 SK는 나름 상당히 깔끔한 야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문제를 만드는 일도 별로 없고, 쓸데 없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김성근 감독이나 선수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점도 있지요. 과거에는 실제로 불미스런 일의 원인을 제공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스스로의 개선 의지를 보이며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편입니다. 실제로 올 시즌 SK 투수들이 기록한 몸에 맞는 공은 26회로 8개 구단 중 최소이며, 최다를 기록 중인 LG(76) 3분의 1 수준입니다.

 

하지만 승리방정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존재합니다. 나머지 7개 구단의 팬들 중 SK 야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SK의 스포츠맨십에서 벗어난 행동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 도루를 한다

2) 점수차가 큰 상황인데도 희생번트를 시도해 더 많은 득점을 노린다

3) 점수차가 큰 상황인데도 9회말 2아웃에 투수교체를 한다

 

대략 이 정도로 집약할 수 있겠네요. 3가지의 패턴은 상대팀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 스포츠맨십에 벗어난 행동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확실히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수의 야구팬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팬들도 있지만, 젊은 세대들 중에서는 대략 6:4 혹은 7:3 정도로 전자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나 싶네요.

 

야구에서는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일종의 백기를 드는 것이 가능하죠. ‘패전처리라 불리는 투수들을 마운드에 올린다던가, 주력 타자들을 백업멤버로 교체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은 내일을 위한 또 다른 준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오히려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는 팀도 나름대로의 배려를 해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배려가 바로 위의 3가지와 관련이 있죠. 점수차가 크면 희생번트나 도루를 시도하지 않고, 기왕이면 이닝 중간에 투수를 교체하지 않고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경기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SK식 야구가 다른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그러한 야구의 불문율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였지요.

 

헌데, 29일에 있었던 롯데와 KIA의 사직경기에서 이 3가지 경우를 모두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걸 모두 실행한 장본인은 바로 이날 경기에서 이용규의 원맨쇼에 힘입어 12-5의 큰 점수차로 승리한 KIA 타이거즈였습니다.

 

3회초 이용규(3)-채종범(2)-최희섭(1)의 연속해서 터져 나온 홈런으로 인해 스코어가 한 순간 6-0으로 벌어진 상황, 결국 롯데 선발 이재곤은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강판되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등판한 패전처리이정민도 안타를 허용하여 1,2루에 두 명의 주자를 두고 있었죠. 그런데 그 때 타석에 등장한 김원섭이 희생번트를 시도해 주자를 2,3루로 보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6-0이라는 점수차와 계속되고 있는 무사 1,2루의 찬스, 그리고 롯데 마운드에 올라온 건 패전처리로 기용되고 있는 이정민. 이미 롯데는 백기를 든 상황이죠. 게다가 KIA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건 에이스 양현종. 그런데 KIA는 그 상황에서 2점을 더 뽑겠다며 희생번트를 시도한 겁니다. , 여기까지는 경기초반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 투수가 양현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롯데 타선이라 해도 역전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0.002%의 가능성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사실 롯데 타선을 떠나서, 롯데 투수진을 생각하면 역전 가능성은 제로지만요)

 

스코어가 10-3으로 벌어진 6, 여전히 KIA 마운드는 양현종이 지키고 있었고, 경기는 후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헌데 선두 타자로 나와 안타 치고 출루한 신종길이 롯데 배터리가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틈을 타 2루로의 도루를 감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결국 신종길은 최희섭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았고, 점수차는 8점으로 벌어졌습니다. 이걸 최선을 다한 플레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대팀의 기분을 무시한 매너 없는 플레이라고 해야 할까요? 3회에 8-1로 앞선 상황에서 도루를 했다는 이유로 이대형(LG)에게 빈볼을 던진 팀이 어디였는지 기억 나시나요?

 

마지막으로 9회말, KIA 조범현 감독은 박성호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선두타자 손아섭이 실책으로 출루했지만, 그 다음 박종윤을 2루수 앞 병살타로 잡아내며 2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 조범현 감독이 투수교체를 지시해, 곽정철을 마운드에 올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9회말 투아웃, 그것도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의 투수교체. 다 죽어가는 롯데를 향해 날린 마지막 확인사살이었죠.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지난 17 SK KIA의 군산 경기. 시합은 SK 9-3으로 리드하고 있었고, KIA는 거듭되는 연패로 인해 팀 분위기가 최악으로 가라앉아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김성근 감독이 그 경기에서 9회말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있던 이승호를 송은범으로 교체했습니다. 김성근 감독 특유의 투수교체가 나온 것이죠.

 

경기 직후 KIA 팬들이 팬 사이트 등에서 광분하며 매우 화를 냈던 것이 기억 나는군요. 어떻게 6점차로 앞서 있는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이미 다 이긴 시합에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냐고 말이지요. ‘SK 야구가 이래서 더럽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라는 내용의 문구를 본 기억도 납니다.

 

SK 야구를 오래도록 봐왔지만, 3가지 상황을 한 경기에서 다 보여준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KIA가 그런 야구를 보여주는 군요. 다급해진 조범현 감독이 김성근 감독의 흉내라도 내는 걸까요?

 

17일 경기에서 SK를 비난한 KIA 팬의 표현에 의하면 29일 경기에서 KIA더러운 야구’를 했습니다. 과연 그 경기에서의 승리를 KIA 팬들은 기뻐할까요, 아니면 부끄러워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자기들이 화가 났던 것처럼 승리에는 기뻐하되 경기 매너에 대해서는 롯데 쪽을 향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제는 SK식 야구가 한국 야구의 표준이 되고 있고, 저를 비롯한 팬들 또한 대세에 따라 SK식 야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그런 시합이었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KIA 타이거즈,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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