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가 개인 통산 처음으로 30홈런 고지에 도달했습니다. 올 시즌 97경기만이고, 아직 시즌은 36경기나 남아 있습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남은 경기에서 10~12개 정도의 홈런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어 7년 만의 40홈런 타자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이대호가 올 시즌 노리는 것은 단순한 홈런왕이 전부가 아닙니다. 역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3할5푼 이상의 타율과 30홈런을 동시에 달성한 것은 1999년 롯데 마해영(35홈런 .372)이 유일합니다. 이대호가 이대로 3할5푼 이상의 고타율을 유지한 채 시즌을 마감하면 역대 두 번째 선수가 되겠죠.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역대 최초의 3할5푼 이상 타율과 40홈런을 동시에 달성하는 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홍성흔이란 강력한 내부의 적(?) 때문에 트리플 크라운은 아무래도 힘들 듯 합니다. 하지만 타율과 홈런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기록이죠.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타율과 홈런 1위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인 1984년의 삼성 이만수(23홈런 80타점 .340)와 2006년의 이대호(26홈런 88타점 .336)뿐이지요.
이만수의 타율 1위는 홍문종(롯데)과 관련된 씻을 수 없는 아쉬운 기억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트리플 크라운은 이대호가 유일하지요. 즉, 한국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타율과 홈런 1위를 동시에 차지한 두 번의 기록을 모두 이대호가 써나간다는 뜻입니다.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타율’과 ‘홈런’은 사실 양립할 수 없는 기록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높은 타율을 기록한다고 해서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많은 홈런을 때린다고 하여 높은 타율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아니죠. 높은 타율을 목적으로 한 교타자와 많은 홈런을 목표로 한 거포는 타석에 임하는 자세와 방망이를 잡는 위치, 그리고 스윙 궤적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투수의 트리플 크라운인 다승-방어율-탈삼진의 연관관계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과 달리, 타자 부문 트리플 크라운인 타율-홈런-타점의 경우 타율과 다른 두 스탯의 상관관계가 시대가 흐를수록 더 낮아지고 있지요. 따라서 홈런과 타율에도 모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두 기록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는 선수는 더더욱 그렇지요.
메이저리그에서도 타율과 홈런 1위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마지막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인 칼 야스츠렘스키가 1967년에 기록(44홈런 121타점 .326)한 이후 아직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 유명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나 알버트 푸홀스, 매니 라미레즈, 배리 본즈 등도 달성하지 못했지요. 그 사이 투수 3관왕은 8번이나 탄생했습니다. 같은 트리플 크라운이라도 투수보다 타자의 그것을 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 야구에서 이대호란 선수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 엄청난 덩치를 보면 그냥 힘만 내세우는 파워히터임이 분명한데, 실제로는 매우 부드러운 스윙을 지닌 교타자의 면모도 함께 갖추고 있지요. 특유의 거구가 이대호란 타자를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지요. 그의 체구가 이승엽이나 장종훈, 아니 적어도 심정수 정도만 되었더라도 이렇게 신기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호는 항상 ‘영양가’ 논란에 시달리곤 합니다. 홍성흔과 더불어 올 시즌 유’2’한 4할대의 득점권 타율을 기록하고 있고, 2006년 이후의 5년 동안 거의 독보적인 국내 최고 타자로 군림해왔지만 롯데 팬들이 이대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 냉정하기만 합니다.
이대호의 30호 홈런은 두산에게 0-12로 뒤지고 있던 7회초에 나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롯데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더군요. ‘저 자식은 꼭 저럴 때만 홈런 치지’라며 말이죠. 사실 경기의 승패에는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는 홈런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홈런이 ‘의미가 없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물론, 10점차로 이기고 있거나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홈런이 동점이나 1~2점 차의 박빙의 승부 상황에서 나오는 홈런보다 그 가치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그 홈런의 가치를 마냥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0-12를 1-12로 만든 이대호의 홈런이 ‘가치 없다’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그 분들께는 리플레이를 확인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군요. 그 한 방의 홈런 때문에 잠실 구장을 찾은 롯데 팬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는지요? 꼼짝없이 영봉패를 당할 것만 같았던 상황에서 터져 나온 그 소중한 한 방이 기 죽어 있던 팬들을 다시금 춤 추게 만들었습니다.
‘승리’에는 별 다른 도움이 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팬들은 그 홈런 하나가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적어도 ‘찍’ 소리는 해보고 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프로야구에서 승리가 전부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는 경기에서도 관중과 팬들은 그 사이에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는 법이고, 이대호의 홈런은 그런 기쁨을 관중들에게 선물한 것이었죠.
게다가 이대호의 홈런을 시작으로 롯데 타자들은 7~9회의 3이닝 동안 무려 9안타를 뽑아내며 4득점했습니다. 이 의미는 매우 크지요. 김선우에게 완전히 눌려 버릴 수도 있었던 롯데 타선의 힘을 되살리는 효과가 이대호의 홈런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5일 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임태훈 등 두산 투수들은 매우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장의 승패에는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었지만, 크 점수차의 패배 속에 힘들어 하던 팬들에게 자그마한 기쁨을 선사하고, 잠들어 있던 동료 선수들의 타격을 일깨워주는 홈런. 12점차 상황에서 터진 이대호의 홈런은 그런 효과가 있었습니다. 과연 이 홈런에 아무런 영양가가 없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야구의 재미는 단판 승부가 아닌 6개월의 장기 레이스라는 점에 있지요. 그리고 하루의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이 다음날 경기에 그대로 이어진다는 데 또 다른 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단 이대호의 30호 홈런 만이 아니라, 적어도 야구에서의 홈런이나 득점에 의미가 없는 것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그건 투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두 자릿수 점수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등판한 투수가 3이닝 정도를 퍼펙트로 막아냈다면, 그것도 나름 상당한 의미가 있지요. 기세가 오른 상대 타자들을 한 번 눌러줌으로 인해, 그 기세가 다음 경기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니까요. 당장의 승리에는 보탬이 되지 않지만, 장기 레이스에 있어 그것은 결국 팀에게 또 다른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야구에서 의미 없거나 영양가 없는 홈런, 즉 그런 성과나 기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야구팬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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