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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억울한’ 2인자는?

by 카이져 김홍석 2010. 8. 28.

올 시즌 프로야구의 MVP 투표는 단연 이대호와 류현진의 2파전으로 압축이 된 상황입니다. 현재로선 이대호가 한발 앞서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호가 타격 7관왕에 실패하고, 류현진이 20승을 달성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4강 진출의 프리미엄까지 있는 이대호의 수상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류현진의 경우는 이번 한대화 감독의 무리한 일정 조정과 전 경기 퀄리티 스타트의 실패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둘 중 누구 한 명이 MVP를 수상하지 못한다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을 듯 합니다. 이대호가 받고 류현진이 2위를 하든, 아니면 류현진이 수상하고 이대호가 또 다시 2위로 무릎을 꿇든, 2위가 되는 선수는 역사상 가장 아까운 2인자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상 최강의 2인자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2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이렇게 아까운경우가 아닌 억울한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성적으로는 당연히 MVP를 수상해야 마땅하지만, 다른 외적인 요소로 인해 수상에 실패한 사례가 제법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지금부터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억울한 2인자가 누구였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83년의 장명부(삼미) & 장효조(삼성)

장명부 - 60경기(44선발) 427이닝 220탈삼진 36완투 5완봉 30 16패 방어율 2.34

이만수 – 98경기 27홈런 74타점 53득점 .294/.378/.555

장효조 - 92경기 18홈런 62타점 61득점 22도루 .369/.469/.618

 

당시 MVP는 홈런-타점 1위인 삼성의 이만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팀의 장효조는 타율-출루율-장타율의 비율스탯을 싹쓸이했고, 22개의 도루까지 곁들였죠. 누가 보더라도 성적상으로는 장효조의 확실한 우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인답지 않게 잘한다는 이유로 그 해 신인상을 받지 못한 장효조는 이번에는 신인이라는 이유로 MVP 투표에서 소외되었습니다. 포인트 제도였던 당시 MVP 투표에서 이만수는 95점으로 1, 장효조는 49점으로 3위였습니다.

 

이만수에 이어 MVP 투표에서 2(50)를 차지했던 선수는 너구리장명부였습니다. 당시 한 시즌에 100경기를 치르던 시절에 절반 이상의 경기에 등판해 그 해 삼미가 거둔 총 승수(52) 58%를 홀로 책임졌습니다. 장명부는 고작(?) 173이닝을 던진 하기룡(2.33)에게 방어율 0.01 뒤지는 바람에 트리플 크라운을 놓쳤고, 다승 2위는 20승의 이상윤이었습니다.

 

두 팀 모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입니다. 저라면 장명부-장효조-이만수 순으로 표를 던졌을 것 같네요.

 

 

2. 85년의 삼성 3인방(장효조,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 11홈런 65타점 66득점 17도루 .373/.460/.543

이만수 - 22홈런 87타점 63득점 7도루 .322/.405/.571

김성한 - 22홈런 75타점 66득점 8도루 .333/.395/.575

김시진 - 47경기 29선발 269이닝 201탈삼진 25 5 10세이브 방어율 2.00

 

85 MVP 투표는 정말 의외의 결과가 나왔던 경우입니다. 투표에서 89점을 얻어 수상의 영광을 안은 김성한(해태) 스스로가 어색한 웃음을 지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장효조는 타율-출루율 1, 이만수는 홈런-타점 1, 김성한은 홈런-장타율 1위였습니다. 그리고 김시진은 다승-탈삼진 1위에 방어율은 3위였죠.

 

KBO는 이들 4명을 후보로 내세웠는데요, 그 결과 삼성 선수들끼리 표가 갈리면서 자신의 표를 묵묵히 획득한 김성한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어부지리라는 말도 많았었지요. 김성한이 89점으로 1, 장효조가 66점으로 2, 김시진이 52점으로 3, 이만수가 14점으로 4위였습니다.

 

이만수와의 이해하기 어려운 차이를 감안하면, 기자들이 83 MVP 투표에서 손해를 본 장효조를 좀 더 배려해주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저라면 이만수-김시진-장효조-김성한의 순으로 표를 던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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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95년의 이상훈(LG)

이상훈 - 30경기 228이닝 12완투 3완봉 20 5패 방어율 2.01

김상호 - 126경기 25홈런 101타점 79득점 .272/.335/.474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MVP 투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MVP를 뽑는데 있어 정규시즌 성적만 가지고 뽑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김상호(OB)가 당시 잠실 최초의 홈런왕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MVP에 도전장을 내밀긴 했지만, 사실 그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기록은 다소 민만한 수준이었죠. 사실 리그 최고를 다투던 타자는 김상훈이 아닌 장종훈(.326/.424/.562)과 양준혁(.313/.418/.532)이었습니다.

 

반면 이상훈은 그 해 선발로 20승을 달성하며 투수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LG가 시즌 막판 OB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0.5게임 차로 정규시즌 1위 자리를 내줬고,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게 무기력한 경기 끝에 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죠. 롯데 타자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진 이상훈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반면 김상호는 한국시리즈에서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죠.

 

결국 이 차이가 은연 중에 반영되어 510점 대 300점이라는 큰 차이로 MVP는 김상호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결과는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말지요. 개인적으로는 이상훈이야말로 가장 억울한 2인자가 아닐까 싶네요. 하긴, 그 당시만 해도 이상훈의 저 20승이 마지막 선발 20기록이 되어 15년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을 겁니다.

 

 

4. 2001년의 펠릭스 호세(롯데)

이승엽 - 127경기 39홈런 95타점 101득점 .277/.412/.605

  - 117경기 36홈런 102타점 90득점 .335/.503/.695

  - 118경기 34홈런 113타점 101득점 .291/.402/.571

 

이 당시 호세는 2인자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MVP 후보로 선정조차 되지 못했지요. KBO에서 MVP 후보 선정 기준을 기능과 정신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는 기능만 우수한 선수였죠. 품행이 방정하거나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저 당시 호세가 기록한 5할대 출루율은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며, 장타율도 당시 기준으로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었습니다. 이승엽이 홈런 1위이긴 했지만, 타점 1위인 우즈에 비해서도 딱히 나은 성적이라고 할 수 없었지요. 게다가 당시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삼성은 우즈가 맹활약한 두산에게 무릎을 꿇고 또 다시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습니다.(KS에서 우즈는 4홈런 8타점, 이승엽은 3홈런 7타점)

 

그런데도 이승엽은 신윤호(15 6 18세이브 3.12) 2차 투표까지 간 결과 33-29로 간신히 MVP를 수상할 수 있었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1차 투표에서의 결과는 33-35로 신윤호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점이지요. 우즈는 1차에서 14표로 일찌감치 탈락했습니다.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호세, 개인-팀 모두 더 좋은 성적으로도 소외되고 만 우즈, 1차 투표에서 이기고도 2차에서 밀린 신윤호, 셋 중 누가 가장 억울할까요?

 

 

5. 2004년의 클리프 브룸바(현대)

브룸바 - 132경기 33홈런 105타점 92득점 .343/.468/.608

배영수 - 35경기 27선발 189이닝 4완투 2완봉 17 2 2.61

  - 29경기 29선발 200이닝 4완투 2완봉 17 8 2.60

리오스 - 32경기 32선발 222이닝 3완투 2완봉 17 8 2.87

 

저 당시 배영수(삼성) 17 2패라는 엄청난 승률을 무기로 압도적인 차이로 MVP를 수상했습니다. 99표 가운데 84표를 쓸어 담았지요. 하지만 위의 기록에서 보듯, 배영수의 기록은 레스(두산)나 리오스(KIA)에 비해 결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승률에서만 뚜렷한 차이를 보일 뿐, 나머지 기록은 오히려 두 외국인 투수가 낫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요.

 

반면 비율스탯을 싹쓸이 한 브룸바(현대)는 당시 단연 돋보이는 최고의 타자였습니다. 홈런은 박경완에 1개 뒤진 2위였고, 타점은 3위였지요. 거의 타격 3관왕에 준하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현대는 브룸바의 활약에 힘입어 삼성을 꺾고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차지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룸바는 MVP 투표에서 13표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물론, 배영수가 포스트시즌에서 ‘10이닝 노히트를 기록하며 야구 관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 정도의 차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 당시의 MVP 투표는 명백한 외국인 선수 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로 앞으로도 역사에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 뉴스뱅크F,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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