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SK 수비야구의 중심, 박경완의 '미친 존재감'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0. 21.

에이스 김광현이 삼성 현재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순간 박경완은 달려가 그대로 김광현을 얼싸안으려 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박경완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먼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대선배에게 정중하게 인사부터 했다. 한국시리즈는 물론이고 한 시즌 내내 자신의 공을 묵묵히 받아준 대선배에 대한 감사와 경외의 표시였다.

 

인사를 한 후 활짝 밝은 표정으로 김광현이 박경완의 품에 안기는 순간, 그 뒤로 SK 선수들이 너나할 것 없이 환호를 지르며 두 선수를 둘러쌌다.

 

바로 지난해 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이 두 선수는 자리에 없었다. 팀이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아쉽게 역전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넘겨주는 순간, SK로서는 박경완과 김광현만 있었더라도...”라는 장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한 시즌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팀에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서있지 못했던 두 선수는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하여 1년을 절치부심하며 기다려왔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은 팀이 2년 만에 정상 왕좌를 탈환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마지막 순간을 이들 배터리로 하여금 장식하게 했다.

 

모든 선수들이 다 잘했지만 이중에서도 역시 포수 박경완의 '미친 존재감'은 단연 압권이었다. 실제 한국시리즈 MVP는 보이는 기록상 두드러졌던 박정권이 차지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인터뷰에서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선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박경완"이란 이름을 첫 머리에 올렸다. 박정권 역시 "마땅히 선배님이 받아야 할 상을 내가 뺏은 것 같아서 죄송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SK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 특유의 강력한 '수비야구'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탄탄한 불펜을 주축으로 한 마운드 운용과 내야 수비 전체를 아우르는데 이어서 그 중심축이라고 할 만한 박경완의 리더십이 절대적이었다. 어떤 투수가 마운드에 서더라도 적재적소의 볼 배합과 안정된 투수리드로 최적의 투구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물론, 내야진 수비를 지휘하는데 있어서도 물샐틈없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박경완은 프로야구 8개 구단의 전체 포수를 통틀어 가장 투수리드가 빼어난 포수로 꼽힌다. "SK를 상대하는 타자들은 김광현이나 이승호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매 경기 박경완과 수싸움을 해야 한다는 게 가장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할 만큼 박경완의 비중은 어떤 에이스와도 비교할 바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그의 투수리드는 상대팀과의 경기경험이 많아질수록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박경완의 역할은 눈에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데서 그 가치가 빛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만일 7차전 한 경기만 포수 마스크를 박경완이 썼더라도, 역전패는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야구라는 스포츠, 특히 단기전에서 안정감 있는 포수의 비중은 그만큼 중요하다.

 

박경완은 그와 함께 국내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진갑용과의 안방마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박경완은 냉철하고 안정적인 투수리드가 특징이지만, 과감하고 공격적인 승부수가 돋보이는 진갑용은 고비마다 SK 타자들의 수싸움에서 패턴을 간파당하며 삼성의 젊은 투수들을 안정감 있게 이끌어주는데 실패했고, 본인도 공수 양면에서 몇 차례 보이지 않는 실책을 저지르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국시리즈 내내 삼성 타선을 압도한 SK의 막강 불펜진은 하나같이 "경완이 형의 투수리드를 그래도 따르기만 했을 뿐"이라며 박경완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실제로 SK 투수들이 박경완이 요구하는 볼배합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선수를 칭찬하는데 인색한 김성근 감독조차 "박경완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다는 자체만으로 마운드의 투수나 야수들에게 안겨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박경완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 그 활약상이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 보이진 않았만,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안방마님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올해 한국시리즈의 진정한 MVP는 바로 박경완이었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제공=SK 와이번스]

 

 

추천 한 방(아래 손 모양)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로그인 없이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