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터운 선수층’을 꼽고 싶다. 이것을 소위 뎁스(Depth)라고 하는데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한 해에 100경기 이상이 치러지는 야구에서 뎁스는 너무도 중요한 요소다. 뎁스가 좋은 팀과 그렇지 못한 팀 간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09시즌 우승 팀이었던 KIA가 지난 시즌 4강 진입에 실패한 이유도 KIA의 좋지 못한 뎁스가 한 몫 했다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뛰어난 선수가 많으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닌 기존 선수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되느냐의 문제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산은 참으로 행복한 팀이다. 어지간한 팀이라면 붙박이 주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레벨의 선수들조차 포지션 경쟁을 벌이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프로야구 개막이지만 두산의 2,3루 자리는 아직도 그 주인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이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을 만한 상황이지만, 이것은 한화 한대화 감독이 앓고 있는 골머리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대화 감독은 그토록 원하던 탕수육이 날아간 상황에서 짬뽕이라도 먹고 싶은데 짬뽕조차 없어 짬뽕라면을 끓이고 있는 상황이고, 김경문 감독은 짬뽕, 짜장면, 볶음밥 중 그저 맘에 드는 걸로 택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지만 도무지 뭘 먹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이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토록 김경문 감독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한 선수들은 바로 주전 3루수와 2루수 포지션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5명의 선수들이다. 특히 3루는 김동주와 이원석, 그리고 윤석민까지 3명의 선수가 각자의 매력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이들 중 누가 짬뽕이고 짜장면이고 볶음밥인지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바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산의 3루 자리는 사실상 부동에 가까웠다. 유격수 출신의 이원석은 두산의 핫코너 터주대감인 김동주를 지명타자 슬롯으로 밀어내고 3루 자리에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명타자로 밀려났던 김동주는 올 시즌 타격감 회복을 위해서라도 다시 3루 포지션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그리고 여기에 지난해 소집해제 된 후 2군 무대에서 맹타를 휘두른 윤석민까지 가세하여 경쟁에 불을 지폈다.
일단 현 상황에서는 뛰어난 수비력을 갖추고 있으며 기존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던 이원석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유격수 출신답게 수비력에서만큼은 경쟁자들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타격이다. 지난 해 2할7푼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율을 기록하면서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반면 경쟁자인 김동주와 윤석민은 타격에서만큼은 이원석에 대해 확실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해 7년 만에 20홈런을 기록하며 여전한 위력을 과시한 김동주는 말할 것도 없고, 윤석민 역시 지난해 2군 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을 시작으로 올 시범경기에서도 만만찮은 방망이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세 선수의 장단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원석은 수비, 김동주는 공격, 윤석민은 공수 모두 준수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이 경쟁을 하다가 결과에 따라 좀 더 나은 선수가 자연스레 주전으로 낙점되는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하지만 세 선수 모두 뚜렷한 장단점을 갖추고 있는 선수들이라 감독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전망이다.
또 다른 격전지구인 2루에서는 3루와는 달리 비슷한 유형의 두 선수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고영민과 오재원이 그 주인공인데, 두 선수 모두 빠른 발과 뛰어난 작전수행 능력을 지닌 전형적인 2번 타자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의 주인을 찾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방금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의 경쟁 같은 경우 더 편할 것이라 해놓고선 이제 와서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간단히 말해 두 선수 모두 누구 하나를 포기하기엔 너무나 좋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선수가 지난 해 페넌트레이스에서의 중박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을 때, 나머지 한 선수는 부진의 늪에서 헤매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두 선수는 공격 스타일, 수비력 모두 엇비슷한 선수라 할 수 있다.
물론 수비력에서만큼은 오재원이 고영민에 미치지 못한다. 줄곧 2루를 책임지며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고영민과 달리 오재원은 전문 2루수가 아니다. 유격수로 데뷔해 3루와 1루를 오가던 중 지난해 비로소 2루에 정착했다. 그래서인지 오재원은 화려한 수비와 더불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다.(개인적으로 오재원이 가장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는 위치는 1루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재원은 방망이에서는 고영민을 확실히 압도한다. 지난해 0.276의 나쁘지 않은 타율을 기록했고, 특히 전반기까지는 0.290으로 더 좋았다.(후반기 타율 0.252) 지난 시즌이 풀타임으로 활약한 첫 해임을 감안, 후반기에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냈던 오재원이기에 올 시즌에는 한 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상대적으로 방망이에서는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수비에서만큼은 고영민이 오재원을 능가한다. 자신의 커리어하이였던 2007시즌을 통해 ‘2익수’의 탄생을 알렸던 고영민은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후배인 오재원에게서 2루 자리를 빼앗아 와야 하는 ‘도전자’의 위치에 서있다.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상황이지만, 지난 오프시즌 동안 고영민이 그 누구보다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는 평가를 주위로부터 받고 듣고 있다. 그만큼 명예회복을 향한 의지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매년 치열한 내부경쟁을 통해 팀 전력을, 그리고 뎁스를 키워온 두산. 올해는 그야말로 그 내부경쟁의 결정판이라 할 만큼 뜨거운 경쟁으로 불이 붙어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이 결국은 두산을 우승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버닝곰 김성현[사진제공=두산 베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