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KIA 타이거즈가 로페즈-구톰슨 듀오를 앞세워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후, 각 팀들은 외국인 선수 선발에 있어 투수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작년에는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나면서, 수준 낮은 외국인 투수가 대거 입국해 한국 야구의 질 자체를 떨어뜨렸다. 지난해 프로야구에 ‘타고투저’ 경향이 짙었던 것은, 수준 낮은 외국인 투수들이 단단히 한 몫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16명의 외국인 선수 중 14명이 투수인데, 그 중 상당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며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프로야구에서의 용병 농사는 해당 팀의 시즌 성적과 직결된다. 시즌의 3분의 1이 갓 넘어간 현 시점에서 8개 구단의 ‘외국인 선수 공헌도’를 A부터 F까지 학점으로 매겨보자.
1. LG 트윈스 : A+
올 시즌 LG가 새로 뽑은 두 외국인 투수 레다메스 리즈(11선발 68이닝 4승 5패 4.50)와 벤자민 주키치(11선발 65이닝 4승 2패 3.60)는 모두 ‘A급 용병’이라고 평가하기엔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한 시너지 효과만큼은 가장 두드러진다. 이 둘과 박현준이 안정적을 로테이션을 소화해주면서 LG의 유일한 약점이었던 선발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
강타선을 지닌 LG는 경기당 6이닝 이상을 책임져주는 선발투수 3명이 갖춰지자, 승승장구하며 2위를 달리고 있다. 김광삼-심수창-봉중근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8승 8패로 5할 승률을 간신히 맞춘 LG가 박현준-리즈-주키치가 등판한 경기에서는 20승 13패로 6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 중이다. 비록 리즈와 주키치가 특급 레벨의 용병은 아니지만, 그들로 인한 시너지 효과만큼은 2009년 KIA의 로페즈-구톰슨 듀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2. KIA 타이거즈 : A
LG의 두 외국인 선수가 팀의 부족한 부분을 훌륭하게 채웠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KIA는 외국인 선수의 수준 자체가 매우 높다. 이미 검증된 아퀼리노 로페즈(9선발 65이닝 4승 2패 2.91)는 물론, 새로 영입한 트레비스 블랙클리(9선발 52.2이닝 3승 3패 3.08) 역시 ‘A급 용병’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주 좋은 피칭을 선보이고 있다.
원래부터 선발진이 강했던 터라, LG처럼 이들 두 명이 5일마다 꼬박꼬박 마운드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것도 KIA의 강점이다. 초반부터 쌓이는 피로가 덜한 만큼 여름 이후에도 여력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만약 포스트시즌에 오르기만 한다면 두 외국인 투수가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롯데 자이언츠 : B+
롯데는 최근 몇 년 동안 은근히 외국인 선수 농사를 잘 짓는 편이다. 올해도 마찬가지. 피홈런이 많아지면서 불안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브라이언 코리(18경기 6선발 54.1이닝 3승 2패 3세 3.64)의 팀 내 공헌도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5월 롯데의 상승세는 라이언 사도스키(6선발 33.2이닝 2승 3패 3.48)의 선발진 합류가 그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코리의 활약에 따라 변수가 있긴 하지만, 이들 정도면 한 시즌을 꾸려나가기에 크게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4. SK 와이번스 : B
올 시즌 최고 용병 중 하나인 게리 글로버(11선발 65이닝 5승 1패 2.35)의 활약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대만리그 출신의 짐 매그레인(10선발 39이닝 2승 3패 4.38)은 좀 문제가 있다. SK의 선발진에 구멍이 뚫린 상황에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마운드에서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 아니, 김성근 감독이 알아서 매그레인의 한계가 찾아오기 전에 일찍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고 있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운용에 기대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 매그레인의 퇴출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5. 삼성 라이온즈 : B-
마이너스(-) 딱지가 붙어있긴 해도 삼성에게 B학점을 준 것은 카도쿠라 켄(9선발 54.2이닝 3승 3패 2.30)의 존재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해 SK에서 포기했던 카도쿠라를 붙잡았고, 그 결과는 대성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우타거포의 역할로 좌-우 타선 균형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외국인 타자 라이언 가코(1홈런 23타점 .248/.344/.306)의 극심한 부진이다. 사실 이 성적이면 진작에 퇴출 결정이 내려졌어야 했는데, 자신의 말을 뒤집기가 부끄러운지 ‘나믿가믿’이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류중일 감독의 결단이 늦어지고 있다. 당장은 쪽이 팔릴지 몰라도 자신이 한 말을 죄다 뒤집은 후 팀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롯데 양승호 감독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6. 두산 베어스 : C-
더스틴 니퍼트(11선발 63.2이닝 5승 2패 2.26)는 올 시즌 최고 외국인 투수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페르난도 니에베(5경기 4선발 17.2이닝 1패 9.68)는 최악의 외국인 투수다. 라몬 라미레즈가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퇴출된 후 새로 영입된 페르난도는 볼 스피드와 제구력, 무브먼트 등 모든 면에서 한국에서 통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이미 퇴출 수순을 밟고 있으나, 새로 또 다른 외국인 투수를 데려온다 해도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7. 넥센 히어로즈 : D
삼성에서 넥센으로 유니폼을 갈아 입은 브랜든 나이트(10선발 60.1이닝 1승 6패 4.33)는 제구력 불안 때문에 만족스런 피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타선의 지원을 얻지 못하면서, 좋은 피칭을 하고도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운한 투수이긴 하지만, 올 시즌 외국인 투수의 전반적인 수준을 감안하면 평균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단 둘뿐인 외국인 타자 중 한 명인 코리 알드리지(5홈런 26타점 .240/.330/.400)의 활약 역시 미진하기 그지 없다. 가끔 보여주는 홈런포와 평소 타구의 질 자체가 워낙 훌륭해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은 ‘용병’으로 낙제 수준이다. 이왕 좌타거포를 데려올 생각이었다면, 작년까지 롯데에서 뛰었던 가르시아를 왜 잡지 않았던 것일까?
8. 한화 이글스 : F
성공 확률이 매우 낮아 보였던 훌리오 데폴라(17경기 5선발 44.1이닝 1승 3패 5.48)와의 재계약은 역시나 실패로 돌아갔다. 애당초 데폴라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것부터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새로 영입한 오넬리 페레즈(19경기 22.1이닝 4승 1패 6세 6.04) 역시 벌써 5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만 봐도 그가 안정감과는 거리가 먼 투수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조금씩 나아지는 듯한 모습이라 퇴출은 면했지만, 언제 한국을 떠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투수다.
데폴라를 포기하고 카림 가르시아를 데려오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해도, 이 결정이 올 시즌 한화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한 수’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까지는 한화가 외국인 선수들의 도움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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