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끝난 ‘제65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겸 주말리그 왕중왕전)’는 서울대표 충암고등학교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충암고 에이스 변진수가 5연속 완투승을 거두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가운데, 추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이 예상되는 선수들이 대거 두각을 나타내는 등 크고 작은 뉴스거리가 풍성했다. 특히, 결승전이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프로 무대를 꿈꾸는 유망주들에게 큰 꿈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만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었다. 주말리그 왕중왕전의 일환으로도 펼쳐진 이번 대회는 고교야구가 얼마나 ‘찬밥 신세’에 머물러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아쉬운 현실의 단편이기도 했다. 고교야구 최강자를 가리는 축제에서 이런 씁쓸함을 느껴야 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주인공이 되지 못한 축제의 당사자들
야구를 즐기는 이들에게 ‘야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문(愚問)이다.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구를 직접 하는 선수, 이를 지켜보는 팬들, 그리고 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안팎으로 노력하는 이들 모두가 야구의 주인공이다.’라는 현답(賢答)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교야구는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야구에 밀려 주인공이 ‘조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먼저 구장 사용 문제를 들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교/대학야구의 전국대회가 열릴 경우,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프로구단 넥센의 경기를 원정으로 배치하거나, 제주도 홈 경기로 개최했었다. 고교야구에 대한 배려였고, 좀처럼 야구를 접할 기회가 없던 제주도 팬들에게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도 뜻 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에는 그러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황금사자기 대회가 한창이던 5월 14일과 15일, 그리고 28일과 29일은 대화가 열리는 목동구장에서 넥센의 홈경기도 동시에 배정되어 있었다. 물론 각 요일마다 두 경기씩만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황만 따라준다면 오후 3시 이내에 경기를 마칠 수도 있었다. KBO 역시 이를 고려하여 해당 경기에 대해서는 주말임에도 프로야구 경기를 오후 6시 30분에 배치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산은 틀어지고 말았다. 연장 승부치기라는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KBO는 야구 경기가 반드시 정규이닝 안에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 19일과 28, 29일의 일정은 모두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급하게 몸을 풀어야 하는 넥센 선수들과 경기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그라운드를 빠져 나와야 하는 고교야구 선수들까지, 모두가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29일에 벌어진 전대미문의 ‘해프닝’에 대해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제2경기가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도 결판이 나지 않자, 대회 본부에서 ‘서스펜디드(일시 중단) 시합’을 선언한 것이다.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되는 프로야구 일정을 때문이었고, 이에 당사자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규방송 관계로 프로야구 일정을 여기서 마친다.’라는 공중파의 TV 중계만도 못한 처사였다.
더 아쉬운 것은 주말리그 시행으로 인하여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규모의 대회가 대거 축소됐음에도 불구, 목동구장 사용에 대해 KBO와 대한야구협회(이하 KBA)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설이 썩 뛰어나지 않은 목동구장에서 왜 굳이 고교와 프로야구 일정을 동시에 배정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앞으로 벌어질 청룡기 고교야구(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일정 역시 프로야구와 일부분 겹친다. 지금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또 다시 ‘프로야구 일정으로 인하여 고교야구는 여기서 마칩니다.’라는 황당한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여름방학 중 실시하는 대통령배 고교야구 역시 마찬가지인데, 결승이 예정된 8월 27일에는 넥센과 롯데의 목동경기가 내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KBA는 대회 장소를 목동구장으로 정했다.
▲ 수익이 안 맞는다고 중계방송 안 해?
야구장 문제와 함께 고교야구 중계와 관련된 해결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되짚어 보아야 한다. KBA에서 ‘인터넷 생중계’라는 대안을 내놓을 때부터 예상된 일이긴 했지만, 결국 결승전까지 TV 중계에서 외면되고 말았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수익이 안 맞는 고교야구 중계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적자를 떠안고 중계방송을 한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한국야구의 ‘형님’격인 KBO나 아마야구의 수장인 KBA가 방송사를 움직일 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프로야구와 달리 고교야구는 어른들의 ‘투자’가 필요한 종목이다. 야구부에 거액의 예산을 투자하는 학교의 입장에서도 케이블 TV로나마 자신의 학교가 비춰지게 된다면, 큰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일선 지도자들이 고교야구 무중계에 서운함을 드러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KBA가 공약으로 내 건 인터넷 생중계가 100% 지켜진 것도 아니다. 결국 대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문자 중계’에 그쳤기 때문이다.
결국 KBO와 KBA는 이번 황금사자기 대회를 통하여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실망스런 행보를 보였다.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향후 주말리그 시행 역시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행된다는 사실이다. 11일부터 시작되는 후반기 고교야구 리그전 역시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글, 사진 = 유진 김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