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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김광현의 벌투와 야신의 비정함

by 카이져 김홍석 2011. 6. 24.



김광현이 벌을 섰다
. 그것도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게다가 벌을 서는 장소는 마운드 위였다. 단순한 의미의 벌이 아니었다.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만들기 위한 벌이었다.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정말 비정했다. SK의 마지막 수비였던 8회말이 끝나기 전까지 불펜에서는 아무도 몸을 풀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 홀로 외롭게 서 있던 김광현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라 했고, 무려 147구를 던지게 함으로써 그것을 실행시켰다.

 

23일 경기에서 7회까지 이미 125구를 던졌던 김광현이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은 한 사람의 야구팬으로서 정말 소름이 돋는 장면이었다. 단순히 그것이 상식을 크게 벗어난 기용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김성근 감독의 비정함과 냉혹함, 그리고 SK 야구의 무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회를 무사히 넘긴 김광현은 팀이 2-0으로 이기고 있던 3회말 2아웃 이후 김상현에게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했다. 그리고 5회말, 김상현에게 또 다시 2아웃 이후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경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KIA 쪽으로 넘겨주고 말았다.

 

사실 첫 번째 교체 타이밍은 5회말이었다. 김광현은 2아웃을 잡아 놓은 후 김선빈과 이범호에게 안타와 볼넷을 허용했다. 평소의 김성근 감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투수교체라는 칼을 빼 든다. 그것이 SK 특유의 투수교체 타이밍이다. 설령 송은범 정도의 투수라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가차 없이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한다. 어쩌면 2아웃 이후에 그런 위기를 자초하는 투수는 마운드를 지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3년 동안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되었던 단 한 명의 투수가 바로 김광현이다. 그가 바로 ‘SK의 에이스였기 때문.

 

김광현이기 때문에 믿었고, 김광현이기 때문에 그 위기는 넘겼어야 했다. 그러나 김광현은 감독과 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결국 김성근 감독은 뿔이 났다. 앞선 18 LG전에서도 5회를 채우지 못하고 6실점하며 무너졌던 김광현이, SK의 에이스가 2경기 연속 무너지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부터 김광현의 벌투는 시작되었다. 5회를 마친 시점에서 이미 투구수는 91개에 달했고 무려 6점이나 허용한 상황. 그렇다면 이젠 김성근 감독이 아니라 프로야구의 그 어떤 팀이라 해도 이 시점에서는 선발투수를 교체하는 것이 상식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달랐다.

 

6회에 또 다시 김광현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놀라웠다. 선두타자 김주형에게 또 다시 홈런을 허용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미동조차 없었다. 불펜은 텅 비어 있었고, 그때부터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김광현은 7회에도 한 점을 내줬고, 그렇게 이미 125구를 던진 상황에서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김광현의 147벌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당연히 이것은 김광현의 프로 데뷔 이후 최다 투구수 기록이다. 김성근 감독은 에이스에게 자신의 경기를 끝까지 책임질 것을 강요했고, 김광현은 14개의 안타(3홈런)를 얻어맞는 와중에도 외롭게 마운드를 지키면서 결국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끝냈다. 김광현이 마지막까지 특유의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를 지키는 모습은 한 편의 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듯했다.

 

김광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스태미너가 좋은 투수다. 류현진에 비해 호리호리한 체격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대화 감독이 류현진을 6일마다 등판시켜서 120구씩 던지게 했다면,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을 꾸준히 5일마다 등판시켜서 110구씩 던지도록 조련해왔다.

 

이번 경기도 김광현에겐 5일 만의 경기였다. 물론 5일 전 경기에서 60구밖에 던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147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개수다.

 

노히트노런이나 퍼펙트를 노리는 경기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이미 패배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의 벌투임이 확실해 보였다. 이기고 있을 때는 피로감도 덜한 법이지만, 이처럼 패전의 책임을 홀로 지고 던져야 하는 경우라면 피로도 두 배 이상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에게 에이스로서의 자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에이스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사실 김광현은 그 동안 SK의 막강 불펜의 보호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유독 김성근 감독도 김광현만큼은 적절한 선에서 보호를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보호를 받을 단계가 지난 것도 사실이다. 김광현은 류현진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NO.2의 에이스 투수이며, 그렇다면 그 위치로서의 자각과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부터 그러한 점을 계속 강종해왔다. 항상 김광현을 향해 김광현은 아직 에이스가 아니다라던가 에이스가 그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더 큰 역할을 요구했고, 그렇게 성장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광현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류현진이 날이 갈수록 에이스로서의 관록을 갖추며 안정감 있는 피칭을 하는 것에 비해, 김광현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었다.

 

이번 경기를 통해 과연 김광현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마냥 팀의 후배가 아닌, 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책임져야 하는 에이스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더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에이스라 불리는 이가 가져야만 하는 책임감이고, 자부심이이며, 존재의 의미다.

 

147여기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일단은 그냥 두고 보려 한다. 자주 있던 일도 아니고, 단 한 번의 무리한 투구로 인해 망가질 정도로 김광현이 허약하지 않다는 것을 믿기에.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지시한 이번 벌투가 단순히 분노의 발로가 아닌 교육의 일환임을 믿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SK 와이번스, 기록제공=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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