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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한국형 세리머니 문화가 필요하다!

by 카이져 김홍석 2011. 8. 18.

이만수(전 삼성)는 현역 시절 눈에 띄는 세리머니로 자주 눈길을 끌었다. 프로선수들의 적극적인 개성 표현이 서투르던 80년대 시절, 이만수는 홈런은 물론이고 안타 하나를 치고 나와서도 두 팔을 치켜들고 환호를 지르는 등 독특한 세리머니로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했다. 심지어는 거포형 타자인 그가 아웃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루를 시도하다가 횡사하기도 했는데, 이만수는 이를 두고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하여라고 설명했다.

 

튀는 행동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다. 이만수는 현역 시절 가장 많은 빈볼을 당한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과도한 세리머니로 인하여 상대팀 투수를 자극했다가응징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보통 야구에서 홈런을 뽑아낸 타자가 기쁜 감정을 표출하거나 천천히 걷는 것은 상대 투수에게는 조롱이나 도발의 의미도 인식되기 쉽다. 홈런 세리머니를 한다고 해도 일단 베이스를 다 돌고 난 뒤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감정표현에 직설적인데다 팬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겼던 이만수는 홈런이나 안타를 치고 좋은데도 마음대로 좋아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만수를 걱정했던 김성근 감독은 이만수가 누상에 나가 두 팔을 벌리는 시늉만해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팬들은 그런 이만수의 솔직함과 쇼맨십을 사랑했다.

 

이러한 야구의 세리머니 문화는 요즘도 종종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8 2일 잠실 KIA전에서 두산 양의지는 홈런을 친 후 잠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1루를 돌기 시작했는데, 당시 마운드에 있던 KIA 투수 트레비스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상대 투수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트래비스의 행동에 대해 국내 야구인들은 대체로트래비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다소 지나치게 민감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트래비스와 같은 외국인 선수들은 대체로 트래비스가 충분히 그럴만했다고 공감하는 반응이 많았다.

 

이것은 아무래도 야구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 야구문화가 우리보다 자유분방할 것 같지만, 의외로 선수들의 감정표현이나 세리머니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훨씬 보수적이고 엄격한 면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홈런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한 외국인 선수는미국에서는 절대적으로 금기시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홈런을 친 직후 베이스를 돌면서 기쁨을 표현하는 동작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상대를 비웃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아주 작은 동작이나 짧은 환호라고 할지라도 그런 행동(세리머니)을 하고 나면 다음 타석에서 곧장 보복성 빈볼이 날아오기 십상이다. 심지어 같은 팀 동료들이라도 옹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세리머니가 허용되는 공간은 경기 중에는 덕아웃에 한정되어있다. 가령 타자가 홈런을 치거나 베이스를 일단 빨리 다 돌고, 투수가 삼진을 잡더라도 이닝이 끝난 뒤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주장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그라운드 안에서 세리머니를 하기도 있지만, 여기에도 원정팀의 경우에는 우승이나 퍼펙트게임 같은 경우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남의 홈에서 과도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정해진 규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문화적인 관점의 차이일 뿐,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다. 오히려 그 동안 국내에서는세리머니의 성격이나 범위에 대하여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생각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최근 선수들은 감정표현에 점점 적극적인 세대들이다. 타자들은 홈런을 친 직후 베이스를 돌면서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환호하는가 하면, 투수들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삼진을 잡거나 할 경우, 주먹을 불끈 쥐며 세리머니를 펼친다. 예전에는 경기가 끝날을 때나 덕아웃에 들어갔을 때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그라운드에서의 암묵적 룰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감정표현이 자유분방해지고 있다.

 

지난해 화두로 떠오른 끝내기 승리 이후 물 세리머니 문제만 해도 몇몇 원로 야구인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난장판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적당히 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근데 물을 온통 뒤집어씌우고, 배트로 헬멧을 때리고, 대상이 된 선수는 도망가고... 세리머니도 어느 정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 분위기에 걸맞게 젊은 선수들의 과감하고 솔직한 감정표현이 오히려 팬들과의 교감이나 야구에서 볼거리를 높이는데 이바지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이만수의 세리머니를 금지시키기도 했던 김성근 SK 감독은물론 당하는 쪽은 얄밉지만 보는 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부분도 있다고 인정하며 오히려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스타 선수들이 안타나 홈런을 치고 난 뒤 누상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것 같은 행동이 분위기를 띄우고 팬들을 즐겁게 한다. 적당한 세리머니는 팬들과 선수 모두에게 힘이 된다고 평가했다.

 

어느 쪽이든 정답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에는 한국야구만의 세리머니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세리머니는 선수와 팬들 사이의 교감이기도 하다. 지난해 끝내기 세리머니 문화를 자제하라는 KBO의 지침이 각 구단에 내려지자 팬들 사이에서는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현장에서도 곱지 않은 목소리가 나온 일이 있었다. 이처럼 무조건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상대를 악의적으로 자극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세리머니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시각보다는 어떤 것이 더 한국야구의 색깔에 부합하는 문화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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