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를 보는 재미 중 하나에는 새로운 선수들의 활약도 있다. 지명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유망주가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리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활약하는 경우도 있다.
올 시즌에도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해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치열한 신인왕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삼성의 배영섭과 LG의 임찬규도 있고, KIA에 부족했던 좌완 셋업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는 심동섭의 활약도 눈에 띈다.
신인왕 수상 자격은 없지만, 예년과 다른 성장세를 보이며 주축 선수로 자리 잡은 선수들도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장세를 보인 선수를 MIP(Most Improved Player)라고 한다. KBO에서 공식적으로 수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업에 그쳤던 선수들이 주전으로 발돋움했다는 데에서 신인왕보다 더 극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 시즌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MIP는 누구일까?
▲ 박현준, 사라진 사이드암 선발투수의 명맥을 잇는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이강철, 한희민 등 잠수함 투수들도 선발로 자주 등판했다. 하지만 최근 타자들의 기량 향상과 왼손 타자들의 득세로 좌타자에 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는 언더핸드, 사이드암 선발 투수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롯데 이재곤이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8승 3패 4.14의 평균자책으로 사라진 사이드암 선발 투수의 명맥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올해는 선발이 아닌 패전처리로 전락하여 평균자책 5.56의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작년 이재곤보다 더욱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사이드암 투수가 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LG의 박현준이다. 지난 시즌 SK에서 LG로 트레이드된 박현준은 이후 LG 소속으로 9경기에 선발로 나섰다(SK 소속으로 선발등판 2회, 구원등판 6회). 박현준은 선발 등판한 아홉 경기에서 7경기를 5이닝 이상 투구했으며 마지막 선발 등판 두 번에는 각 6 1/3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비록 퀄리티스타트는 마지막 선발 등판 경기였던 9월 23일 SK전에서 6 1/3이닝을 3자책으로 막은 경기가 유일했지만,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올해 박현준은 대학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로 활약했던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리며, 다승 공동 2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 시즌 스물 세 번의 선발 등판에서 열 한 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으며, 5월 3일 두산전에서는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일 경기에서도 두산을 상대로 9이닝 3자책의 투구를 하며 서울 라이벌 두산의 천적으로 군림하고 있다(두산 상대 2승 무패 평균자책 1.48).
풀타임 선발이 처음인 탓인지 후반기에는 주춤하고 있지만, 5월까지만 하더라도 박현준은 11경기에서 7승 2패 평균자책 3.29의 호투를 보이며 유력한 다승왕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 잦은 등판으로 인해 오른쪽 어깨 회전근 통증을 호소하며 잠시 2군에 내려가기도 했지만, 박현준에게는 올해의 풀타임 선발 경험이 내년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양훈, 고원준 마운드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라
마운드에서 박현준의 성장세가 가장 눈부시지만, 그에 못지않은 투수들이 한화의 양훈과 롯데의 고원준이다. 한 때 오승환, 윤석민, 정근우 앞 순위에 뽑혔던 탓에 팬들로부터 원성아닌 원성을 샀던 양훈이지만, 아직은 자신의 뒷 순번에 뽑힌 선수들의 활약에는 못 미쳐도 올해의 발전은 내년에 대한 기대를 걸게 한다.
올 시즌 현재까지 양훈이 기록하고 있는 성적은 20경기 선발 3승 9패 평균자책 4.58. 소속팀의 전력이 약한 탓에 많은 승수는 쌓지 못하고 있지만 규정이닝을 충족하고 있는 열여덟 명의 투수들 가운데 한 명이고, 제구가 잘 되는 날은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경기가 완봉승을 거둔 5월 28일 두산戰, 8 2/3이닝을 투구하며 완봉 직전까지 간 6월 9일 LG戰, 10이닝 동안 1점만을 준 7월 5일 LG戰, 그리고 SK를 상대로 8이닝 동안 한 점도 주지 않은 7월 17일 경기가 있다.
선발 경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해 좋은 날과 좋지 못한 날의 기록 편차가 큰 것이 문제이지만, 압도적인 피칭을 보인 네 경기의 투구만으로도 내년에 대한 양훈의 기대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걱정스러운 부분이지만, 올해의 성장세를 내년에도 이어갈 수 있다면, 다음 아시안경기까지 기다려볼 법하다. 양훈이 윤석민, 오승환, 정근우 등 자신과 같은 해에 지명된 선수들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여부는 내년에 드러날 것이다.
고원준에게 MIP는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원준은 작년에 이미 규정이닝에 불과 2이닝이 부족한 131이닝을 투구하며 4.12의 평균자책을 기록한 바 있다. 자타공인 최강팀 SK를 상대로 8회 원아웃까지 노히트 경기를 했을 정도로 고원준은 이미 작년에 팬들로부터 크게 주목 받은 투수 유망주의 블루칩이었다. 롯데로 이적한 올 해의 성적은 작년과 거의 흡사한 7승 6패 평균자책 3.96, 하지만 팀을 옮겨 잦은 보직 변경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잃지 않았다는 데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다만, KIA전에만 4승을 거둬, 자신이 올해 얻은 7승 가운데 반 이상을 획득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정팀에만 강한 모습은 개선해야할 것이다. 특히 KIA를 제외한 순위 경쟁팀인 삼성(3경기 평균자책 8.00), SK(4경기 평균자책 5.75), LG(5경기 평균자책 7.36)戰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은 내년에 고원준이 팀의 에이스로 뛰어 오르기 위해서 갖춰야할 필수요건이다.
박현준, 고원준, 양훈 외에도 롯데의 마무리로 혜성 같이 등장한 김사율(48경기 평균자책 3.58, 14세이브)과 추격조로 주로 등장하며 6개의 홀드르 기록한 한희(32경기 평균자책 2.42)의 성장세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김사율이 포스트시즌까지도 롯데의 뒷문을 단단히 틀어막아준다면, 박현준과 함께 올 시즌 가장 뛰어난 MIP 투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 타자 MIP, 젊은 유격수 두 명의 활약
타자 쪽에서도 큰 성장세를 보여준 선수들이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선수는 팀의 주전 유격수로 새롭게 발돋움한 삼성의 김상수와 KIA의 김선빈이 있다. 국내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힌 박진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김상수는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더니 올해 초반에 슬럼프를 극복하고 현재 3할에 육박하는 .295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22개의 도루(성공율 75.9%)를 기록하며 팀의 기동력에도 그 힘을 보태고 있다.
극적인 면만 따지면 김선빈이 더욱 눈에 띈다. 김상수는 연고 팀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여 입단 시부터 기대를 받았지만, 김선빈은 2차 6라운드 전체 43순위에 KIA의 지명을 받아 주목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프로필상 165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화순고를 투/타/수에서 맹활약하며 팬들에게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선수였지만, 체격이 작은 탓에 성장세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가 김선빈이다.
하지만 김선빈은 올 시즌 현재 .299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4할에 육박하는 출루율(.391)과 19개의 도루(성공율 67.9%)를 기록하며 KIA가 8개 구단에서 가장 막강한 테이블세터진을 구성하는데 기여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약점으로 지적 받은 수비력도 경험이 쌓이면서 한층 좋아졌으며, 이제는 뜬공 처리에도 문제를 겪지 않고 있다. 알드리지의 타구에 맞아 한 달 이상 결장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복귀 이후 .325의 맹타를 휘두르며 부상 후유증은 말끔히 털어버린 모습이다. 김선빈은 89년생, 김상수는 90년생이다. 이들의 미래는 앞으로도 창창하다. 올해 이후에도 이들이 벌일 라이벌 경쟁은 프로야구의 주요 흥밋거리가 될 것이다.
▲ 손아섭, 강력한 롯데 타선의 중심이 되다.
공격력만 놓고 보면, 김상수, 김선빈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가 롯데의 붙박이 3번 타자 손아섭이다. 홍성흔이 초반 부진한 틈을 타 3번 타자 자리를 꿰찬 손아섭은 올 시즌 현재까지 .320의 타율로 타격 부문 6위, 70타점으로 타점 부문 6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규정타석을 충족한 외야수들 가운데 OPS도 세 번째로 좋다.
손아섭은 작년에도 .306의 타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인 선수지만, 올해 공/수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며 내년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하는 롯데 팬들이 많다. 타석에서 적극적인 스윙도 No Fear 롯데 타선을 상징한다. 하지만 높은 타율에도 불구, 볼넷이 34개 밖에 되지 않는 점은 손아섭이 개선해야할 부분이다.
이대호가 올 시즌 이후 FA 자격을 획득함에 따라 불확실성을 띄게 될 내년의 롯데 타선이기에 손아섭의 올해 활약은 그만큼 반갑다. 손아섭이 올해의 성장세를 내년에도 이어간다면, 롯데 팬들은 이대호가 떠난다해도 그에 대한 그리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 Lenore 신희진 [사진제공=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