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여왕 갈매기’ 정대현, MLB를 포기해야 했던 이유

by 카이져 김홍석 2011. 12. 14.



올 시즌 FA 투수 중 최대어로 꼽혔던 정대현의 최종 행선지는 메이저리그 볼티모어가 아닌 대한민국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였다. ‘여왕벌에서 이제는 여왕 갈매기가 된 셈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롯데 팬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으며, 반대로 SK 관계자와 팬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대현은 13일 오후 2시경,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2시간 후인 오후 4시경, 롯데 구단은 정대현과 4년간 36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과연 이 2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밀히 말하자면, 2시간 사이에 롯데와 정대현의 계약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12일 오후 11시경, 이문한 롯데 운영부장이 인천에서 정대현과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 계약은 이뤄진 상태였고, 그 후 정대현 측과 롯데 구단 측이 차례대로 제스쳐를 취한 것이다.

 

이를 두고 또 일부 팬들은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며 각종 음모론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SK 팬들 중에는 정대현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정대현의 진심이 담긴 메일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정대현 측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그 동안 수많은 보도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접했지만, 이번처럼 한 선수의 진심이 담긴 솔직한 심경을 그대로 표현한 것은 본 적이 없다. 정대현은 지난 7일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한 통의 메일을 기자들에게 발송했고, 그리고 이번 13일에 두 번째 메일을 보내왔다. 일단 그 두 메일의 전문을 공개한다.

 

정대현의 진심이 느껴지는 두 통의 메일

 

(첫 번째 메일 – 12 7일 오후 5시경)

안녕하십니까
. 정대현입니다.

먼저 죄송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 미리 연락도 못 드리고 이렇게 불쑥 메일로 먼저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그 동안 언론 관계자 여러분과 직접 소통하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탓에 직접 제 생각을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첫 보도 후 볼티모어 구단에서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었구요.

모든 분들의 전화를 다 받고 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어쩔 수 없이 시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됐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메일을 통해 제 생각과 상황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까지 상황은
사인 직전에 메디컬 부분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한국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 구단에서한국에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왔다. 이 부분만 해결되면 계약서에 최종 사인하게 될 것이다. 최대한 빨리 검진을 받고, 검사결과를 볼티모어 측에 전달할 생각이다. 볼티모어가 제시한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가 전부입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선 있는 그대로 메일을 통해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두 번째 메일 – 12 13일 오후 2시경)

안녕하십니까
. 정대현입니다.

먼저 제 거취에 대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저는 그 동안 추진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13,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시간으로 13일 오전, 볼티모어 구단에 제 뜻을 전달했습니다. 이제 한국 팀 중 제가 뛸 팀을 정하게 됐습니다.

이유가 많이 궁금하실 겁니다
. 제가 설명드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모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미국에 건너간 뒤 계약이 지연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추수감사절이 끼어 있었던 탓에 전체적으로 일정이 미뤄진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 두 번째로는 메디컬 체크에서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한국에서 알려진 바와는 다릅니다. 무릎이나 어깨, 팔꿈치에는 전혀 이상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다만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치료 방법에서 이견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 메이저리그 룰이 있어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처음 제가 볼티모어와 협상 과정에서 구단의 제시액을 밝힌 것은 저를 둘러싼 루머 기사들 때문이었습니다
. 스플릿 제안 등 그릇된 내용이 알려져선 안 된다는 생각에 덜컥 협상 내용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구단이 제 불찰 때문에 매우 곤란을 겪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제가 입을 닫게 된 이유입니다. 더 이상 볼티모어 구단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메이저리그의 룰을 떠나 인간으로서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볼티모어 구단이 자세한 내용을 밝혀주지 않기를 바란 만큼 그 약속은 꼭 지키려 합니다.

볼티모어 구단은 진정으로 저를 대해주었습니다
. 미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 제게 베푼 호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래서 메이저리그구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됐습니다. 특히 메디컬 체크에서 작은 문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계약 내용을 수정하거나 연봉을 깎자는 제안을 하지 않고 기다려준다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에이전트 역시 저와 함께 고민하고 걱정해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언젠가는 꼭 갚으려 합니다.

다만 좀 전에 밝힌 대로
치료 및 제반 문제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계약까지 이르지 못하게 됐습니다. 마음 같아선 볼티모어 구단이 제게 했던 제안 등 있었던 일을 모두 공개하며 더욱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계약룰에 어긋난다며 공개를 원치 않았기에 끝까지 가슴에 묻고 가려 합니다.

물론 미국에 막상 건너가보니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다는 것도 느끼게 됐습니다
.

아내가 미국에 집과 환경 등을 알아보러 왔었는데 아이 교육과 생활 환경 등 아내가 현실적으로 느낀 벽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습니다
. 교육과 살 곳을 보러 왔던 아내는 저와 가족이 같은 지역에서 지낼 수 없고 떨어져 지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듣고 미국행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제 진심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또 한가지.

절대로 한국 구단의 오퍼 때문에 흔들린 것은 아닙니다
.
일찌감치 미국행을 선언한 탓에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구체적인 제안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남게 되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저도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미국행 추진이 몸값을 올리려는 액션이었다면 그 전에 뭔가 제안을 받아둔 뒤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늦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저 스스로도 그 정도 능력이 있는 선수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국 프로야구 출신 첫 직행 메이저리거가 되는 꿈을 꾸며 행복했습니다
. 이제 더 이상 꿈 꿀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또 거의 제 손에 닿았었던 일이기에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기대해주신 야구팬 여러분
, 그리고 끝까지 제 결정을 기다려준 볼티모어 구단에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제 진심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못 다 이룬 꿈을 이룬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메이저리그 이상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남은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MLB를 포기해야 했던 이유

 

첫 번째 메일과 두 번째 메일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미국 현지에서의 메디컬 체크에서 이상이 발견되는 바람에 계약에 이르지 못했고, 그에 따라 한국에서 검사를 받아보기 위해 귀국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그에 대한 치료 및 제반 문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 두 메일의 주요 골자다.

 

물론, 두 번째 메일에서 정대현이 지금부터 새롭게 몸 담을 구단을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 팀 중 제가 뛸 팀을 정하게 됐습니다.”라는 문장을 꼭 지금부터 찾아보겠다는 뜻으로만 해석한다면 그것도 비약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이미 정해둔 구단이 있습니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미 롯데와의 계약이 확정된 상태에서 제가 한국에 남게 되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저도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정대현 측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정대현이 귀국한 후 그에게 관심이 있었던 구단들은 모두가 움직임을 보였다. SK KIA도 정대현을 붙잡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그 경쟁의 승자가 롯데였던 것뿐이다.

 

무엇보다 저 메일을 통해 정대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롯데와의 계약이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왜 자신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볼티모어 측에 최종적으로 통보한 것이 13일 오전임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롯데와의 계약이 체결되었느냐 아니냐는 이 메일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그 소식을 전하는 것은 정대현이 아닌 롯데 구단의 역할이다.

 

정대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롯데가 일찍부터 정대현에게 접촉을 시도하긴 했어도, 진지하게 계약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은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7일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정대현은 일찌감치 MLB 진출을 선언하는 바람에 각 구단의 오퍼를 들어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언론들도 그의 정확한 소식을 알지 못해 각종 루머를 양산했고, 그로 인해 정대현이 볼티모어의 제시액을 공개하는 실수 아닌 실수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국내로 돌아온 정대현이 다시 한 번 검진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쩌면 이미 귀국이 결정된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사실 이때쯤 볼티모어가 다시 우에하라를 노린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필자를 비롯한 몇몇은 이미 정대현과의 계약이 틀어졌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메디컬 체크에서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 결심 속에는 먼 타지에서 생활하며 느껴야 할 가족들의 고충을 이해한 가장으로서의 결정도 포함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국내 프로야구 출신 선수로 최초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MLB로 직행할 수도 있었던 정대현. 그의 유턴 소식에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오래 전부터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MLB에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국내에서 뛰던 선수가 MLB로 직행한 후 성공신화를 써내려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롯데에 정착하게 된 정대현. 일생일대의 큰 도전은 아쉽게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같은 국내 프로야구라도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것도 그에겐 적지 않은 도전인 셈이다. 롯데에서 시작될 정대현의 2의 야구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내년시즌이 기대된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SK 와이번스]

 

 
P.S.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언론을 통해 걸러지지 않은’ 정대현의 입장을 한 번쯤은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메일 아래의 내용은 단지 필자의 사견이 포함된 사족일 뿐,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블로거는 독자 여러분의 추천(View On)을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