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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선동열도 넘지 못한 일본의 라이벌 ‘대마신‘ 사사키

by 카이져 김홍석 2012. 5. 24.

‘국보급 투수로 불렸던 선동열(49) KIA 감독은 현역 시절 라이벌이라고 할만한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독보적인 투수였다. 국내에서는 선발 시절무쇠팔최동원(롯데)과의 용호상박 명승부가 자주 회자되곤 한다. 두 선수는 세 차례 선발 맞대결을 펼쳐 1 1 1패의 호각지세를 이뤘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선수의 전성기가 일치했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선동열의 숨겨진 라이벌은 국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선동열이 마무리로 전향한 90년대 이후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또 다른 숙명의 라이벌을 만나게 된다. 바로대마신으로 불리는 일본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44. TBS 해설위원).

 

마무리 투수에게 있어서 최고의 찬사란그 선수가 몸을 풀기 시작하면 상대 선수들이 사실상 경기를 포기한다.’는 게 아닐까. 국내에서 마무리 시절의 선동열이나 지금의 오승환이 그러했듯, 일본에서는 사사키가 그러한 존재였다. 전매특허인 포크볼을 앞세워 일본을 물론 메이저리그까지 호령하며 세계적인 마무리 투수로 인정받았다.

 

사사키는 1990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전신인 다이요 웨일스에 입단한 뒤 1995년부터 4년간 연속 구원 1위를 차지하며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다. 1991 8 28일 히로시마전에서는 9회에 ‘3타자 연속 3구 삼진을 달성하기도 했다.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체구와 눈빛,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으로 인하여 일본에서 마무리 투수의 정신적-육체적 조건을 완벽하게 겸비한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1996년 주니치에서 입단하여 99년까지 일본에서 활약한 선동열과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구원왕 대결을 펼쳤다. 두 선수의 대결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바로 1997년이다. 일본 진출 첫해였던 96년 당시 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에 그치며 극도의 부진과 2군행으로 심적인 고통을 겪으며 절치부심했던 선동열은, 이듬해인 97년 주니치의 주전 마무리이자 리그 최고의 소방수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선동열과 사사키는 나란히 38세이브를 올려 센트럴리그 공동 1위에 올랐다. 선동열이 일본 진출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시즌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원승(3)에서 앞선 사사키가 1승에 그친 선동열을 제치고 구원왕 타이틀을 가져갔다.

 

선동열은 당시의 추억을 이렇게 회고한다. “마무리 투수는 결국 팀 성적에 좌우된다.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좋았고 내가 세이브를 추가할 기회도 많았다. 그런데 여름 들어서 팀이 부진에 빠지며 등판 기회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그 동안 사사키가 엄청난 속도로 추격해왔다. 시즌 중반까지 내가 사사키 6~7세이브로 앞섰는데 8월 이후에는 내가 3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14세이브를 올리며 추월해버리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1998년에는 두 선수의 격차가 벌어졌다. 무려 45세이브를 기록한 사사키가 29세이브에 그친 선동열을 누르고 또 한번 구원왕에 올랐다. 선동열이 유일하게 사사키를 제친 것은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년이었다. 선동열이 그 해 28세이브를 올린 반면, 부상으로 고생한 사사키는 19세이브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구원왕 타이틀은 선동열의 몫이 아니었다. 야쿠르트 소속이던 다카쓰 신고가 사사키와 선동열을 제치고 구원왕에 이름을 올렸다. 선동열은 일본 진출 4시즌 동안 일본에서 98세이브를 따냈지만 끝내 구원왕은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최고만을 달렸던 선동열의 야구인생에서 0.2% 아쉬운 대목이다.

 

선동열은 1999년을 끝으로 일본 잔류와 메이저리그 진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사사키는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선동열이 은퇴한 이듬해 사사키는 FA 자격을 얻어 일본을 벗어나 2000년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일본에서 4시즌간 통산 129세이브를 기록하며 특급 마무리로 활약했다. 비슷한 시기에 보스턴의 오퍼를 받기도 했던 선동열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사사키의 주무기인 포크볼은 메이저리그에서는 빠른 구속 때문에 종종 스플리터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사사키는 전성기 시절 150km를 육박하는 직구와 스플리터에 가까운 포크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강타자들을 제압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03시즌까지 활약했고, 2004년 일본 요코하마로 복귀한 이후 이듬해 은퇴했다. 일본에서의 성적은 통산 252세이브, 지난해 LG 트윈스의 투수 인스트릭터로 특별 초청을 받기도 했고, 현재는 TBS와 닛칸스포츠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사키는 720일 한일양국의 은퇴 야구 선수들이 뭉치는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에 선발투수로 출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선동열과의 인연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한국 측은 선동열 KIA 감독이 현재 선발로서 유력한 상황이다. 10년이 넘을 세월을 거쳐 재회하게 될 두 양국 레전드 투수의 만남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SI.com,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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