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최악의 팀이었던 KIA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5월 들어 27일까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뛰어난 6할의 승률(12승 2무 8패)을 올리고 있다. 3할7푼5리의 성적을 기록했던 4월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인 셈이다. 4월에는 팀타율(.218)과 팀평균자책(5.59)이 모두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좋지 못했지만, 5월에는 팀타율(.289)과 팀평균자책(3.32)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났다.
▲ 상승세의 힘, 불펜의 안정화
5월 한 달 KIA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3.76으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좋았지만, 퀄리티스타트는 세 번째로 적었다. 선발투수들의 평균 소화이닝도 SK(4.91이닝) 다음으로 낮은 5.32이닝에 불과했다. 선발투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 못했음에도 KIA의 5월 평균자책이 리그에서 가장 낮은 이유는 불펜진의 활약 덕분이다. 5월 한 달 동안 KIA 불펜진은 2.69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리그에서 2점대 불펜 평균자책을 기록한 팀은 KIA가 유일하다. 유원상과 봉중근이 맹활약하고 있는 LG(3.04)가 KIA의 뒤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불펜 평균자책을 제외하면 KIA 불펜진의 나머지 기록들은 ‘최고’라고 보긴 어렵다. 먼저, KIA 불펜진의 5월 한 달간 이닝당 출루허용(WHIP)은 1.37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LG(1.05), SK(1.24) 다음으로 좋은 것이며, 리그평균인 1.37과 똑같다.
2할6푼1리를 기록하고 있는 피안타율은 LG(.225), 두산(.230), SK(.247) 다음인 네 번째로 좋은 기록이며 리그 평균보다 나쁘다. 피OPS는 중간에도 못 미치고 있다. 5월의 KIA 불펜진보다 피OPS가 나쁜 팀은 삼성(.733), 롯데(.787), 한화(.806)가 있다. 즉, 5월의 KIA 불펜투수들은 적지 않은 주자를 내보냈고, 적지 않게 안타를 맞았음에도 실점을 최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 주자는 많이 내보내는 데 실점이 적은 이유는?
5월 KIA 불펜투수들의 기출루주자 실점율은 21.3%로 리그에서 가장 낮다. 한화 다음으로 많은 61명의 기출루주자를 두고 불펜투수들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실점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 KIA가 연승을 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기록은 KIA 불펜투수들의 5월 한달간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기록한 성적이다.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KIA 불펜투수들은 피안타율 .155, 피OPS .553을 기록했다. 이는 리그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난 기록이다.
<5.1~27, 8개 구단 불펜진 주요 기록>
작년과 비교할 때, KIA 불펜진의 가장 달라진 점이 ‘루상에 주자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 KIA 불펜투수들은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294의 피안타율과 .870의 피OPS를 기록했다. 이는 당연 리그에서 가장 좋지 못한 기록이었다. 불펜투수들은 마운드에 올라오면 자신 있게 승부 하지 못했으며, 볼카운트가 불리해져 스트라이크를 넣기 급급하다가 장타를 얻어맞기 일쑤였다.
선동열 KIA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투수들에게 ‘도망가는 피칭을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던지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선감독의 지론이 드디어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최악의 시기를 보낸 4월까지만 해도 KIA 불펜투수들은 득점권에서 .351의 피안타율과 .953의 피OPS를 기록해 투수운용에 뛰어나다는 선동열 감독이 부임해도 달라진 것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선수 파악이 끝난 5월에는 불펜투수들이 선감독의 지론대로 승부처에서 흔들리지 않는 투구를 하고 있다.
▲ 불펜투수들 개개인의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여기에 투수들에 맞는 기용법도 선감독의 투수 운용에서 돋보이는 부분이다. 5월 한 달 실점을 최소화하고 있는 KIA 불펜진이지만, 불펜투수들 개개인의 성적을 들여다보면 22경기 가운데 10경기에 등판해 1.89의 평균자책과 2할3리의 피안타율, 11.1%의 기출루주자 실점율에 빛나는 박지훈 정도를 제외하면 뛰어난 피칭을 하는 투수는 눈에 띠지 않는다.
2009년 0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한 유동훈은 5월 한 달간 .385의 피안타율을 기록하면서 좋지 못했고, 한기주가 합류하면서 불펜진이 단단해지긴 했지만, 한기주는 4경기에 등판해서 4 2/3이닝만을 투구했을 뿐이다. 한기주와 박지훈을 제외하면 리그 평균 수준인 .719 이하의 피OPS를 기록하고 있는 불펜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5월 불펜진의 평균자책이 3점이 되지 않는 사실에서 선감독의 뛰어난 투수운용을 엿볼 수 있다.
유동훈은 우타자 상대로는 .250의 피안타율로 준수했지만, 좌타자 상대로는 .455의 피안타율로 재앙수준이다. 같은 사이드암인 신인투수 홍성민도 우타자는 .231의 피안타율로 막았지만, 좌타자 상대로는 .333의 피안타율로 좋지 못하다. 반면, 왼손투수 진해수는 좌타자는 피안타율 .231, 피OPS .552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막았지만, 우타자 상대로는 5할이 넘는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퇴출이 확정됐지만, 5월에 8경기에 등판해 10 1/3이닝을 불펜에서 던진 라미레즈 역시 우타자를 상대로는 .375의 피안타율, 좌타자 상대로는 .286의 피안타율로 막았다.
현재 KIA 불펜에는 박지훈 정도를 제외하면 좌/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완벽하게 한 이닝을 막아주는 투수가 드물다. 결국, 선동열 감독이 좌타자에 약한 유동훈, 홍성민 그리고 우타자에 약한 진해수를 적절하게 조합해서 실점을 최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현역시절에는 국보급 투수로 이름을 날렸고, 삼성 재임시절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투수운용으로 성공을 거둔 선동열 감독이기에 가능한 투수운용이라 평할 수 있다.
▲ 선동열 KIA 감독, 고향팀에도 막강 불펜진 구축할까?
하지만 시즌은 아직 많이 남았다. 위에서 언급한 좋은 기록들이라는 것도 5월 1일부터 27일까지 22경기만을 치른 성적에 불과하다. 특정한 선수가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기록하다가도 시즌 말미에는 성적을 전부 까먹는 현상은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여기에 KIA 불펜진을 이끌고 있는 선수가 대졸신인투수 ‘박지훈’이라는 것도 불안요소다. 신인선수의 가장 큰 약점이, 단 한 번도 프로에서 풀시즌을 치러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선동열 감독은 박지훈에게 부하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적절한 휴식일을 보장하고 있지만, 급한 상황이 오면 특정 투수에게 부하가 걸릴 위험도 있다. 지금처럼 여러 투수들을 기용하면서 전력을 파악하는 것은 시즌 초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지훈 뿐 아니라 다른 불펜투수들이 뒷받침해줘야 선감독이 의도하는 완벽한 구원진이 탄생할 수 있다.
열쇠는 손영민과 심동섭이 쥐고 있다. 손영민은 지난 시즌 KIA 불펜을 홀로 떠안은 선수였고, 심동섭 역시 지난해 후반기 23경기에 등판해서 평균자책 0.70을 자랑했던 핵심 좌완투수였다. 이 두 명의 선수는 현재 2군에 내려가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다. 손영민이 혹사로 이탈하기 전인 작년 전반기의 투구(42경기 평균자책 2.56, 피안타율 .208)를 재현하고, 심동섭이 작년 후반기의 투구를 재현하면 KIA는 박지훈의 부담을 덜어주고 더욱 단단한 구원진을 구축할 수 있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앤서니, 양현종, 김진우 중 한 명이 불펜에 합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선동열 감독이 의도하는 ‘지키는 야구’가 가능해진다. 5월은 그런 점에서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가 위력을 보이기 시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투수들이 위기 상황에도 쫄지 않고 자신 있게 투구를 한다면, KIA팬들은 지난 2시즌 동안 자신들을 괴롭혀온 9시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Lenore 신희진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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