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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 현역 최고의 스위치 타자는?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8.

우투수는 좌타자에게 약하고 좌투수는 우타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야구의 상식이다. 때문에 야구선수들 중에는 상대 투수에 따라 좌우타석을 모두 사용하는 스위치 타자도 존재한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위치 타자라면 미키 맨틀(536홈런 1509타점)이 첫 손에 꼽힌다. 504홈런 1917타점에 빛나는 에디 머레이도 역사에 길이 남을 스위치 타자임에 틀림없지만, MVP 수상 한 번 없이 비교적 길고 가늘게 선수생활을 한 머레이보다는 화려했던 선수생활 동안 3번의 MVP를 차지한 양키스의 레전드인 맨틀이 한 수 위로 평가되고 있다.


500홈런을 기록한 선수들 중 스위치 타자는 이 둘 뿐이며, 이들을 제외한다면 400개 이상의 홈런을 때린 선수도 없는 실정이다. 스위치 타자로 성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현역 선수들 중에도 드물게 스위치 타자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남달리 특출 난 재능을 가진 3명은 저 위대한 맨틀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 치퍼 존스(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앞으로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현재까지 쌓아온 것만으로 평가를 한다면, 현역 최고의 스위치 타자는 ‘애틀란타의 캡틴’ 치퍼 존스다. 1990년도 전미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애틀란타의 선택을 받았던 치퍼는 그 이후로 줄곧 브레이브스맨으로만 활약하고 있다.


1995년부터 풀타임으로 뛴 13년의 선수생활동안 386홈런 1299타점 1296득점의 빼어난 활약, 거기에 .307/.403/.546(타율/출루율/장타율)으로 이어지는 비율 스탯은 그의 뛰어남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강타자로서는 드물게 삼진(1081개)보다도 더 많은 볼넷(1152개)을 얻어낸 선수 중 한명이기도 하다. 치퍼만큼 정교함과 선구안 그리고 막강한 파워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스위치 타자는 역대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우투수를 상대했을 때(.308/.408/.560)와 좌투수를 상대했을 때(.305/.391/.507)의 성적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스위치 타자들이 좌우 타석 가운데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양쪽 모두 3할 이상의 타율과 5할의 장타율을 보여주고 있는 치퍼는 스위치 타자의 교과서나 마찬가지다.


비록 2004년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며 전성기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못하지만, 타석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선수다. 지난해에도 28경기를 결장했지만 비율 스탯(.337/.425/.604)에서 만큼은 커리어 하이 수준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올 시즌 치퍼는 7년 만에 3할-30홈런-100타점의 동시 달성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중반 통산 2000안타 고지를 넘어섰으며, 올 시즌 중에 400홈런을 돌파할 것을 예상되는 36살의 치퍼 존스. 예기치 않은 부상 등으로 갑작스레 은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명예의 전당 행도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단, 1999년 리그 MVP를 수상한 것 외에, 타율-홈런-타점에서 단 하나의 타이틀도 따내지 못했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 랜스 버크만(휴스턴 에스트로스)

랜스 버크만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는 타자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팀 내 선배였던 제프 벡웰에게 이름값에서 밀렸고, 그 이후로는 이적생 로저 클레멘스에게 가려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이제야 자신이 확실한 팀의 중심이 되었지만, 현재의 휴스턴은 그다지 많은 관심을 끌만한 전력이 아니다.


같은 레벨의 다른 타자들에 비해 다소 냉담한 팬들의 반응 속에서도 버크만은 선배 벡웰이 가지고 있던 팀 내 기록을 하나씩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가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몇 년 안에 벡웰이 가지고 있는 ‘휴스턴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는 수식어는 버크만의 것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버크만 역시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치퍼와 마찬가지로 1라운드(전체 16위)에 휴스턴에 지명을 받았다. 2년 만에 마이너리그를 초토화시킨 버크만은 1999년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고, 2001년부터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8년 동안 풀타임으로 활약하면서 통산 259홈런 855타점 782득점 .300/.412/.559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는 타율(.278), 출루율(.386), 장타율(.510)에서 모두 커리어 로우였음에도 불구하고 34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팀 내 기둥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다. 한 달 전 32살이 된 버크만이 제 컨디션만 회복한다면 막강한 휴스턴 타선의 핵심으로서 2006년(45홈런 136타점)과 같은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버크만이 다른 스위치 타자들과 다른 점은 그가 원래 왼손잡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스위치 타자는 오른손잡이가 자신의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치퍼 존스와 미키 맨틀 그리고 이후에 언급할 마크 텍세이라도 모두 그러한 케이스. 하지만 버크만 만큼은 독특하게 좌타자이면서 스위치 타자로 변신한 경우다.


사실 그러한 버크만이기에 우타석에서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좌타석에서는 .310/.422/.602의 어마어마한 배팅 파워를 자랑하지만, 우타석에만 들어서면 .269/.382/.419로 작아진다. 때문에 그는 스위치 타자를 포기하고 좌타석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질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크만은 스위치 타자를 고집하고 있다.


장점 만큼이나 단점이 뚜렷하긴 해도, 버크만이 앞으로 미키 맨틀과 치퍼 존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뛰어난 타자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 마크 텍세이라(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지난해 7월 31일에 결정된 애틀란타와 텍사스 간의 트레이드는, 현역 최고의 스위치 타자 중 두 명을 한 팀에서 뛰도록 만들었다. 테엑세이라가 스위치 타자의 교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치퍼 존스의 애틀란타로 이적하게 된 것은 그 자신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텍세이라도 위의 둘과 마찬가지로 1라운드(2001년 전체 5위) 드래프티 출신이다. 그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텍사스와의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텍세이라에게 950만 달러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안겨주었다. 텍세이라도 그러한 기대에 보답하듯이 단 86경기 만에 마이너리그에서의 검증을 마치고 2003년 화력하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다.


올해 신시네티 레즈의 유망주 제이 브루스가 모든 유망주 랭킹에서 1위를 독식한 것과 마찬가지로, 2003년의 유망주 순위에서 1위에는 항상 텍세이라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첫해 26홈런 84타점으로 가볍게 시동을 건 텍세이라는 2년차이던 2004년 38홈런 112타점, 3년차에는 43홈런 144타점을 기록하며 리그를 뒤흔들 수 있는 타자로 성장했다. 작년까지 4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을 기록 중.


비록 통산 타율(.286)이나 출루율(.371)과 장타율(.539)에서는 위의 두 선수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홈런과 타점 생산 능력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162경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평균 37홈런 120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텍세이라는 치퍼 존스(33홈런 111타점)나 랜스 버크만(35홈런 114타점)에 비해 전혀 모자람이 없다.


텍세이라가 가지고 있는 스위치 타자로서의 최고 강점은 좌-우타석에서 모두 동일한 파워를 과시한다는 점이다. 타율은 좌타석(.276)과 우타석(.311)일 때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지만, 장타율만큼은 좌(.533)-우(.555)의 구별이 크지 않다. 타율 차이를 감안한다면 순수한 파워는 좌타석이 더욱 뛰어나다 할 수 있다. 정교한 우타석과, 홈런포로 무장한 좌타석. 이것이 텍세이라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이제 고작 메이저리그에서 5년을 뛰었을 뿐이지만, 팬과 전문가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더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올해 28살이 된 그의 앞날은 아직도 창창하다. 주위의 기대대로 텍세이라가 600홈런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타자로 성장한다면, ‘역대 최고의 스위치 타자’라는 호칭은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