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MVP 류현진(25, 한화), 2008년 MVP 김광현(24, SK), 그리고 2011년 MVP 윤석민(26, KIA). 지난 몇 년 동안 한국프로야구는 이들 세 명의 젊은 에이스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국내리그뿐 아니라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선발 마운드를 지키며 대표팀의 좋은 성적을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은 이들 신(新) 에이스 3인방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올 시즌,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만한 투수들이 등장했다. 다들 나이는 위의 3명보다 많다. 한 명은 오래도록 방황했고, 한 명은 데뷔 후 9년간 무명으로 지냈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선발투수라는 보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피칭은 아주 강렬하다.
▲ ‘돌아온 호랑이’ 김진우
항상 아쉬움이 느껴지던 선수였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봐도 그토록 좋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장착한 선수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축복받은 신체와 그 체격에 어울리는 구위를 지니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그를 향해 ‘역대 최고 포텐셜’이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데뷔 후 나름대로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며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사생활에서의 잦은 문제와 불성실한 훈련태도가 문제였다. 그의 신체가 지닌 능력은 너무나 엄청났지만, 그 몸을 움직여야 하는 정신적인 면은 성숙되지 않았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기량은 리그 정상급 근처에 위치했고, 그러다 보니 자만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5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을 방황한 후에야 다시 팬들 앞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타이거즈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김진우의 피칭은 예전과 달랐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구위는 여전했고, 한때 잃었던 제구력도 다시 되찾았다. 투수의 제구력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튼튼한 하체에서 나온다. 최근 김진우의 피칭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선수가 지난 겨울 동안 얼마나 많은 훈련을 열심히 소화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전반기만 해도 경기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경기 내용에 비해 실점이 많았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경기력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김진우는 후반기에 등판한 10경기에서 1.46의 놀라운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피안타율이 .181밖에 되지 않으며, 피홈런은 단 하나도 없다. 김진우가 올해 허용한 홈런은 모두 2개, 이는 100이닝 이상 던진 31명 가운데 가장 적은 기록이다. 김진우의 공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진우는 올 시즌 22경기에 등판해 123⅔이닝을 소화하며 9승 5패 평균자책점 3.15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아쉽게도 남은 등판이 한 번일 가능성이 커서 규정이닝(133이닝)을 소화하진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비교적 투구이닝이 많지 않음에도 카스포인트(Cass Point) 랭킹에서 1672점을 획득해 투수 16위에 올라 있다는 건, 그만큼 투구내용이 좋았다는 뜻이다. 그 동안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았던 김진우이기에 올 시즌 무리하지 않는 것도 내년을 위해 나쁘지 않다.
김진우가 지금의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면, 내년 시즌 당장 15승 이상을 거두며 특급 에이스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윤석민이 해외에 진출하지 않고 팀에 잔류한다면, KIA팬들은 윤석민-김진우의 원투펀치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2013년이 행복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 팬들이 이들 원투펀치를 언급할 때 그 순서가 ‘김진우-윤석민’으로 바뀌어 있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 ‘2012년 최고의 신데렐라’ 노경은
노경은은 2003년 두산의 드래프트 1라운드 선수였고, 3억5천만원이란 상당히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하지만 지난 9년 동안 노경은이 프로 1군에서 남긴 성적은 초라하기만 했다. 1군에서 뛰던 날보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았고, 가끔씩 기회를 얻어 1군에 올라왔을 때도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친 적은 매우 드물었다.
다행히 지난해 불펜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엿보이면서 올 시즌 기회를 얻었고, 6월 초 우연찮게 찾아온 선발 등판 기회는 그의 야구 인생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노경은이 선발로 이렇게까지 잘 던질 것이라곤 그에게 기회를 준 김진욱 감독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6월 6일 첫 선발 등판에서 6⅔이닝 3피안타 10탈삼진 1실점의 놀라운 피칭을 보여준 노경은은 그때부터 17번의 선발등판에서 9승 4패 평균자책 2.28이란 매우 훌륭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의 피안타율이 .188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공의 위력이 절정에 달해 있다. 시속 150km가 넘는 빠른 직구와 140km의 슬라이더가 마침내 제구가 되기 시작하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피칭을 연달아 보여주고 있다.
특히 9월의 노경은은 그야말로 ‘언터처블’이다. 4경기에 등판해 2번의 완봉승을 포함 3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4연승, 이닝이터의 면모까지 동시에 보여주며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시즌 성적도 11승 6패 7홀드 평균자책점 2.58을 기록하며 데뷔 후 10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고, 평균자책점 순위에서도 3위에 랭크되어 있다.
현재 노경은은 2,448점을 얻어 카스포인트 랭킹 투수 부문 7위. 그런데 그 중 1,070점이 9월 한달 동안 얻은 점수다. 올 시즌 카스포인트 월간 최고 점수는 지난 5월 최정(SK)이 기록한 945점이었고, 투수 중에는 5월에 790점을 얻은 장원삼(삼성)이 최고였다. 노경은은 올 시즌 처음으로 한달 동안 1,000점 이상 얻은 선수가 됐고, 이대로라면 KBO에서 매달 시상하는 ‘9월의 월간 MVP’를 수상할 확률도 상당히 높다.
단, 개선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지금의 노경은이라면 당장 내년 시즌에 15승 이상을 거두는 특급 투수로의 성장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정확히 2년 전 지금의 노경은과 같은 평가를 받았던 투수가 있다. 바로 삼성의 차우찬이다. 차우찬은 끝내 제구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올 시즌 주저앉고 말았다. 노경은 역시 같은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가 내년에 풀타임 에이스로 거듭나길 원한다면, 여전히 많은 4사구 개수를 반드시 줄여야만 한다.
▲ 알고 보니 선발 체질, 데니 바티스타
한화의 외국인 투수 대니 바티스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31경기에 등판해 213⅓이닝을 던진 경력이 있다. 그러고 그 중 110경기는 구원투수로의 등판이었고, 선발 등판은 21번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21번의 선발등판에서 바티스타가 기록한 성적은 5.82의 평균자책점과 2승 9패라는 초라한 결과였다. 경기당 평균 5이닝도 버티지 못했을 정도로 ‘선발투수’ 바티스타는 형편 없었다. 물론 불펜요원으로도 그다지 쓸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2007년 이후로는 마이너리그든 빅리그든 구원투수로만 뛰었다.
지난해 한국 무대에 첫 선을 보였을 때도 바티스타는 ‘특급 마무리’로 각광받았다. 22경기에서 35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22개의 볼넷을 남발했지만, 그 이상으로 61개라는 탈삼진 개수가 인상적이었다. 피안타율이 워낙 낮은 편이라 볼넷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달랐다. 구원으로 등판한 34경기에서 바티스타의 피안타율은 3할이 넘었고, 30이닝 동안 허용한 29개의 볼넷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시즌 초부터 꾸준히 ‘퇴출설’이 나돌았고, 시속 160km에 달하는 강속구에 매력을 느끼던 팬들 역시 바티스타에 대한 기대를 접기 시작했다. 그러던 7월 27일,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은 마지막 기회를 주는 심정으로 바티스타를 선발로 올렸고, 그 때부터 바티스타의 운명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발로 등판한 9경기에서 바티스타는 2.2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51이닝 동안 .178의 피안타율을 기록하며 62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반면 볼넷은 17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6년만의 선발등판이라며 스스로도 불안해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선발 체질’이었던 것이다. 그의 무시무시한 탈삼진 개수는 이미 내년에는 류현진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다.
바티스타의 카스포인트는 1,440점으로 투수 부문 24위. 그 중 930점이 9번의 선발등판에서 얻은 점수다. 현재 선발 투수 1위인 나이트(넥센)가 29경기에서 2,787점을 얻어 경기당 평균 96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발등판 시 경기당 평균 103점을 기록 중인 바티스타의 피칭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김진우는 류현진에 버금가는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한 힘 있고 안정된 피칭이 장점이며, 노경은의 직구-슬라이더 콤보는 윤석민과 닮아 있다. 그리고 바티스타는 제구력은 불안하지만 위력적인 구위를 바탕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피칭을 하는 것이 김광현과 비슷하다. 이들이 모두 풀타임 선발로 활약하게 된다면, 내년 한국 프로야구의 마운드는 ‘괴물 천하’가 될 지도 모르겠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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