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1만$에서 3천만$까지, MLB 연봉의 새 역사를 쓴 선수들

by 카이져 김홍석 2014. 3. 25.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그 몸값이 가장 높은 선수는 LA 다저스의 특급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26).

 

지난 1월 다저스와 커쇼는 올해부터 시작되는 7년간 21,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초대형 계약에 합의했다.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평균 연봉 3,000만 달러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이로써 커쇼는 2001년부터 무려 13년 간이나 이 부문 1위를 지킨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밀어내고 최고 몸값 선수로 우뚝 섰다.

 

2008년 데뷔한 커쇼는 지난해까지 통산 77 46패 평균자책점 2.60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3년 연속 양대리그 통합 1위에 오르는 등 5년 연속 2점대 이하를 기록 중인 자타공인 최고의 투수다. 2011년 투수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두 번째 수상에 성공했다.

 

14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 속에는 항상 당대 최고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존재했고, 그 기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꾸준히 경신되어 왔다. 커쇼와 같이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으며 연봉의 신기원을 개척한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미국의 스포츠 전문사이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com)>에서는 메이저리그의 기념비적인 계약(Baseball's Milestone Contracts)을 소개하고 있다.

 

사상 첫 1만 달러의 사나이, 호너스 와그너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연봉 1만 달러를 받은 선수는 호너스 와그너다. 8번의 타격왕과 5번의 타점왕에 빛나는 와그너는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인정받는 선수이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 최초의 5(타이 콥, 베이브 루스, 월터 존슨, 크리스 매튜슨)’ 가운데 한 명.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와그너는 1908시즌이 개막하기 전 1만 달러에 연봉계약을 했고, 1917시즌 후 은퇴할 때까지 매년 같은 금액을 받았다. 참고로 당시 미국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은 807달러였다.

 

와그너가 은퇴한 후 리그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베이브 루스는 1922 3월 뉴욕 양키스로부터 52,000달러의 연봉을 받기로 해 5만 달러의 벽을 허물고 최고 연봉 선수가 됐다. 1930년에는 8만 불을 받았는데, 미국 대통령보다 높은 연봉을 받은 스포츠 선수는 루스가 처음이었다.(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의 연봉은 75,000$)

 

최초로 연봉 10만 달러를 돌파한 선수는 행크 그린버그였다. 1947 1월 피츠버그는 2번의 리그 MVP4번의 홈런왕에 빛나는 당대 최고의 거포를 디트로이트로부터 현금 75,000달러에 트레이드 해왔다. 그리고 10만 달러의 연봉 계약을 채결했다. 하지만 전년도 44홈런 127타점을 기록했던 그린버그는 이해 25홈런 74타점의 저조한 성적을 남긴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린버그 이후 최고 선수의 몸값이 20만 달러에 도달한 건 무려 25년이 지나서였다. 주인공은 그린버그의 별병(Hammerin Hank)을 그대로 물려받은 행크 아론이었다. 이미 6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던 아론은 1972년 소속팀 애틀란타로부터 2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았다. 아론이 최고 연봉 선수가 된 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 진짜 충격적인 사건은 3년도 채 지나기 전에 벌어졌다.

 

악의 제국양키스의 등장

 

1974 12월 뉴욕 양키스는 FA 시장에 나온 그해 사이영상 수상자 캣피시 헌터를 붙잡기 위해 5년간 375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투자를 단행했다. 헌터의 평균 연봉은 75만 달러였는데, 당시 연봉이 25만 달러를 넘어가는 선수는 헌터가 유일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4년 연속 20승 이상을 거두며 양키스에 입단한 헌터는 첫해인 75 23승을 거두며 리그 다승왕에 올랐지만,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으며 이후 4년 동안은 40승에 그쳤다.

 

헌터가 계약 종료와 더불어 은퇴했던 1979 11, 사상 처음으로 ‘100만 달러의 사나이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그 이름도 유명한 놀란 라이언.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라이언은 휴스턴과 4년간 450만 달러에 계약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라이언의 계약이 있은 지 1년 만에 양키스가 또 다시 사고를 쳤다. 양키스는 FA 시장에 나온 당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 데이브 윈필드를 붙잡기 위해 10년간 1500만 달러라는 역사적인 계약을 선물했다. 사상 첫 10년짜리 계약이었고, 여기에는 그 이상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나오면 차액을 보전해준다는 엘리베이터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계약 기간 내에 조지 포스터와 커비 퍼킷 등이 차례로 200, 300만 달러의 벽을 허물면서 결과적으로 윈필드의 계약은 10년간 2,300만 달러가 되었다.

 

이후 처음으로 호세 칸세코(90 5 2,350), 로저 클레멘스(91 4 2,150) 등이 각각 400만과 500만 고지를 밟으며 연봉의 새 역사를 썼다. 90년대 중반이 되자 누가 처음으로 ‘1,000만 달러의 사나이가 되느냐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는데, 천재적인 재능과 악동스런 기질을 동시에 타고난 게으른 천재알버트 벨이 그 주인공이 됐다.

 

95년부터 2년 동안 98홈런 274타점을 기록한 벨은 FA가 되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5년간 5,500만 달러에 계약했다. 1,100만 달러의 연봉은 또 다른 최고 선수 켄 그리피 주니어보다도 250만 달러가 많은 액수. 벨의 계약에는 그보다 몸값이 높은 선수가 나오면 FA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2년 후 또 다시 FA가 되어 볼티모어와 5년간 6,500만 달러의 새로운 장기계약을 채결했다. 하지만 벨은 볼티모어에서 2년만 뛴 후 무릎 부상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 이후 3년 동안 4천만 불에 달하는 남은 연봉을 놀면서 받아 먹은 악질적인 먹튀로 역사에 남았다.

 

본격적인 연봉 인플레이션의 시작

 

양키스와 더불어 돈 잘 쓰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구단이 바로 LA 다저스다. 다저스는 1998 12월 그 해 샌디에고를 월드시리즈에 올려 놓았던 케빈 브라운을 FA로 영입하면서 7년간 1500만 달러를 약속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총액이 1억 달러를 넘어가는 계약이었고, 평균 금액 역시 단연 최고였다. 이 계약을 시작으로 하여 메이저리그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연봉 인플레이션 현상이 극에 달했다.

 

2년 후 메이저리그 FA 시장은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카를로스 델가도(4년간 6,800$)와 마이크 햄튼(8 12,100$)이 각각 연평균 액수와 총액에서 브라운의 기록을 넘어 섰고, 매니 라미레즈(8 16,000$)는 그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조연으로 만든 진짜 주인공은 바로 알렉스 로드리게스였다.

 

FA 시장에 나온 로드리게스는 2000 12월 텍사스 레인져스와 10년간 25,200만 달러에 입단 계약, 모든 관계자와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는 북미 스포츠 사상 단일 계약으로는 단연 최대 규모였으며, 선수의 최고 몸값은 단숨에 연평균 2,500, 총액 2억 달러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계약에는 2007시즌 후 FA를 선언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텍사스에서 3년만 뛴 후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던 로드리게스는 이 조항을 발동시켜 2007시즌 후 또 다시 10년간 27,5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로드리게스의 이 두 계약은 지금까지도 총액 기준으로 역대 1,2위를 지키고 있다.

 

원래 이 계약에는 홈런 기록에 따라 총 3,000만 달러의 옵션이 걸려 있었고, 이것을 모두 수령한다면 첫 번째 연평균 3,000만 달러 계약의 주인공도 커쇼가 아닌 로드리게스가 된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스테로이드 파문과 부상으로 인해 앞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339만 달러였고, 2014년 현재 최저 연봉은 50만 달러다. 그만큼 선수들의 연봉은 크게 늘어났고, 총액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한 선수도 무려 50명이나 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최근으로 올수록 몸값을 하지 못하고 먹튀로 전락한 고액 연봉자들이 많다는 것은 식을 줄 모르는 연봉 인플레이션의 씁쓸한 뒷면인지도 모른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S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