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은 올해로 프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팬들에게 첫 선을 보인 이승엽은 일본에서 보낸 8년의 시간을 포함해 올해가 프로 무대에서 보낸 딱 20년째가 된다. 76년생인 이승엽은 올해 한국 나이로 39살, 만 38세다.
올 시즌 삼성이 소화한 92경기에 전부 출장한 이승엽은 현재까지 24홈런 79타점 타율 .296의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홈런 부문 공동 4위와 타점 6위에 올라 있는 리그 최정상급 활약이다. 시즌 초부터 좋은 타격을 보여준 이승엽은 꾸준함과 폭발력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의 방망이가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올 시즌 이승엽의 홈런포는 하나 같이 영양가도 만점이다. 정말 팀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한 한 방을 날려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승엽은 올 시즌 14개의 결승타를 기록했고, 이는 9개 구단 타자들 가운데 단연 1위다.(2위 채태인, 테임즈의 11개)
이승엽이란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이 워낙 대단해 당연한 듯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불혹을 앞둔 나이에 이처럼 대단한 성적을 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이름 앞에 ‘국민타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 시즌 이승엽의 홈런-타점 페이스를 128경기로 환산하면 33.4홈런 109.9타점이 된다. 지금의 타격감을 유지한다면 30홈런-100타점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시절을 포함해 30홈런은 개인 통산 11번째, 100타점은 7번째다. 30홈런은 2007년 이후 7년만이고, 100타점은 2006년 이후 8년만의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30홈런을 때린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30대 후반의 나이에 이와 같은 홈런 파워를 보여준 선수는 국내파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001년 당시 만 36세의 펠릭스 호세가 36홈런을 기록한 것이 최고령 30홈런 기록이다. 토종 선수들 중에는 2003년 33홈런을 기록한 양준혁의 만 34세가 최고다.
그런데 만 38세의 이승엽이 30홈런에 도전하고 있다. 이승엽이기에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본다면 역시 이 선수가 ‘역대 프로야구 NO.1 타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카스포인트 랭킹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 이승엽은 2,646점의 카스포인트를 얻어 타자 부문 7위에 올라 있다. 이승엽 이후로 만 35세 이상의 선수를 찾으려면 24위의 이호준(1,917)까지 내려가야 한다.
흥미로운 건 1위 강정호를 비롯해 6위까지 차지하고 있는 선수들의 나이다. 강정호(3,265점) 87년생, 나성범(3.087점) 89년생, 박병호(3,016점) 86년생, 나바로(2,945점) 87년생, 테임즈(2,860점) 86년생, 서건창(2,706점) 89년생. 이승엽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6명의 선수는 전부 이승엽보다 10살 이상 어리다.
보통 타자의 전성기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건 메이저리그의 경우고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엔 20대 중반부터 후반의 나이에 절정에 이른 기량을 보여주는 사례가 더 많다. 이승엽 스스로도 딱 그 나이 때 전설과도 같은 홈런 기록을 만들어냈었다. 올 시즌 타자로서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도 다들 만 25~28세의 선수들이다.
지난 2012년 9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온 이승엽이 3할 타율과 더불어 21홈런 85타점을 기록했을 때만 해도 ‘역시 이승엽’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저조한 타율과 더불어 13홈런에 그치자 ‘이승엽도 나이는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적에 만족하지 못한 이승엽은 절치부심 올 시즌을 준비했고, 열 살 이상 어린 타자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수준의 놀라운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승엽의 모든 발자취는 ‘역사’다. 한-일 통산 541홈런 1620타점 1482타점의 기록은 다른 선수들은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대기록이다. 내년부터 경기 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는 만큼 이승엽이 보유하고 있는 단일 시즌 최다 홈런(56개), 타점(144개) 기록에도 도전할 선수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승엽이 보유한 통산 기록에 도전할 선수는 최소 10년 동안은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최고령 30홈런’이란 타이틀은 이미 전설이 된 그에게 또 하나의 명예로운 훈장이 될 전망이다. 한 메이저리그 팬이 “나는 피카소의 그림을 본 적은 없지만 그렉 매덕스의 피칭은 봤다”는 말로 매덕스의 위대함을 칭찬했다고 한다. 이승엽의 선수시절 모습을 실제로 봤다는 건 지금의 야구 팬들이 십 수년 후 분명 자식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 틀림 없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