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성공 이후 90년대 중-후반부터 수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초창기엔 아마추어 선수들이 졸업과 동시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프로에서 충분한 경력을 쌓은 선수들이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번 겨울만 해도 세 명의 한국 프로야구 최정상급 선수들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중 두 명은 꿈을 접어야 했고, 강정호만 500만 2015달러에 단독 협상권을 얻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과 계약 조건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포스팅 입찰금액이 발표되었을 당시만 해도 강정호의 미래는 장밋빛일 것만 같았다. 상대적으로 앞선 두 투수의 조건에 비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정호의 계약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피츠버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내야진이 탄탄한 구단 중에 하나다. 그리고 어지간해선 돈가방을 잘 풀지 않는 팀이기도 하다. 그런 구단이 가장 많은 액수로 포스팅에 참가했다는 것 자체가 강정호에겐 악재일 수밖에 없다.
강정호 입장에서 최고의 시나리오는 적정 수준의 연봉이 보장되는 가운데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는 유격수나 3루수 포지션이 약해 보강이 필요한 구단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다르다. 많은 연봉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입단한다 하더라도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한다.
사실 주전 확보는 계약 이후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계약이 성사되느냐, 즉 피츠버그 구단이 강정호 측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금액을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과거의 전례로 봤을 때 피츠버그 쪽의 조건은 강정호가 원하는 수준과는 많은 격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정호가 2년 후 한국에서 FA가 되는 것이 금액적으로는 더 많을 것이란 관측도 존재한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진출을 논할 때마다 ‘도전’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특히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보장되어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어쩌면 강정호도 이와 같은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류현진의 경우는 ‘도전’보다는 ‘진출’의 의미에 가깝다. 포스팅 금액부터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고, 만족스런 대우 속에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답게 현지에서도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 ‘정복자’의 신분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선수들은 언제나 냉혹한 현실 앞에 직면해야만 했다. 2000년대 중반의 이승엽도 그랬고, 최근의 김광현, 양현종 등도 같은 케이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도전하길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쪽을 택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엔 그들이 이뤄놓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들이 말한 ‘도전’은 더 큰 무대를 향한 것이 아닌 ‘더 많은 돈’을 위한 것이었다. 표현은 마치 ‘도전자’가 된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충분한 대우를 받고 빅리그에 진출하는 ‘정복자’가 되길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류현진처럼 될 순 없었다.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전을 택한 선수들도 있다. 이상훈과 구대성, 그리고 최향남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미국 진출은 모두 전성기를 넘긴 30대 후반이 된 이후였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한 선수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은 누군가가 진정한 도전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타자가 빅리그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강정호에게 거는 기대가 특히 크다. 그러기 위해선 강정호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진짜 도전자의 신분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강정호의 빅리그 진출은 모두가 바라는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만약 예상과 동떨어진 금액이 피츠버그 쪽에서 제시된다면, 강정호는 김광현이 그랬던 것처럼 보장된 미래와 더 큰 무대를 향한 꿈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할 수도 있다.
// 카이져 김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