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역사상 마지막이 될 그렉 매덕스의 350승 전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5. 12.

한국시간으로 5월 11일 저 위대한 ‘마스터’ 그렉 매덕스가 드디어 개인 통산 350번째 승리를 달성했다. 지난 달 14일 349번째 승리를 거둔 이후 5번째 도전 만에 이루어낸 값진 기록이다. 24일 경기에서 매덕스의 승리를 날렸던 트레버 호프만도 이번 경기만큼은 9회를 깔끔하게 막아내며 친구의 승리를 지켜주었다.


▶ (아마도) 역사상 마지막 350승

매덕스의 350승은 역대 9번째. 하지만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10번째 350승은 없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지난해 탐 글래빈이 300승을 달성했을 때부터 “앞으로 또다시 300승 투수가 나타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286승을 거두고 있는 랜디 존슨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 지을 문제는 아니지만, 존슨을 제외하고는 현역 선수 가운데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수는 없다. 300승도 불투명한 상황에, 350승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말이 350승이지 20승씩 17년을 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위대한 기록이다. 최근 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20승 투수는 지난해의 자쉬 베켓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98마일의 강속구를 던져서 삼진을 잡아내는 파워피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팀에서 유망주를 키울 때도 그러한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며 조련한다. 컨트롤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그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팀에서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투자한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을 경우에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선수들도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 통산 200승 이상을 달성한 10명의 현역 투수 가운데 불같은 강속구와 더불어 구위로 승부한 선수는 랜디 존슨과 존 스몰츠(210승), 페드로 마르티네즈(209승)뿐이다. 나머지 7명의 투수들은 구위 보다는 뛰어난 컨트롤과 로케이션으로 살아남았다.


‘피칭’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은 선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200승이라는 고지다. 300승은 말할 것도 없다. 구위로 승부했던 스몰츠는 30대 초반에 선수생활의 위기를 느낄만한 부상에서 겨우겨우 벗어난 경험이 있고, 페드로도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제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직 특이한 케이스인 랜디 존슨만이 40세가 되어서도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였을 뿐이다.


롱런이 기본 전제조건인 300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지금같이 파워피처를 선호하는 경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게 몇 해 반짝하다가 사라진 파워피처가 어디 한 둘이던가?


한국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일본 프로야구에서조차도 이제 300승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5일 선발 로테이션과 투수들의 분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야구에서 300이라는 승수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와도 같은 것. 그렇기에 매덕스의 350승은 더더욱 빛이 난다.


▶ 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의 2000년대

매덕스는 지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다.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을 비롯해 그 시대의 골드 글러브까지도 혼자서 독식했다. 그 10년(1990~1999) 동안 매덕스는 2394.2이닝을 던졌고 2.54의 방어율로 176승(클레멘스 152승)을 거뒀다. 그 누가 뭐래도 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는 매덕스다.


하지만 21세기는 더 이상 매덕스의 시대가 아니었다.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2점대를 유지하던 통산 방어율은 어느새 3점대로 진입했고, 지난 4년 동안은 매년 4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오히려 200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라면 매덕스의 뒤를 이어 4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한 랜디 존슨과 요한 산타나, 로이 오스왈트 등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에 들어선 후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는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그 대답 역시도 그렉 매덕스다. 2000년 이후로 129승을 거둔 매덕스는 팀 허드슨과 더불어 이 부문 공동 선두. 허드슨이 올해 5승 거두며 3승에 그치고 있는 매덕스를 앞섰기에 동률이 되었을 뿐, 지난해까지만 해도 단독 1위를 지켰었다.(랜디 존슨 126승)


‘승’이라는 스탯이 투수의 능력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항목은 아니지만, 두 시대(여기서는 decade의 뜻)를 걸쳐서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엽기적이다. 만약 내년까지 매덕스가 건강하게 뛰어서 허드슨의 추격을 뿌리치고 1위 자리를 지킨다면 두 시대에 걸쳐 다승 선두를 지킨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선수가 된다. 그 유명한 사이 영이나 월터 존슨도 그와 같은 이적을 행하지는 못했다.


▶ 역대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

매덕스는 곧 로저 클레멘스를 따라잡고 역대 8위로 올라설 것이다. 올해 안으로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라이브볼 시대(1920년 이후) 최다승 투수인 워렌 스판의 기록도 가시권에 있다. 자타공인 ‘역대 최고의 투수’ 월터 존슨의 벽이 너무나도 두텁기는 하지만, 매덕스는 그 자리조차도 넘볼 수 있는 유일한 투수다.


많은 이들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강속구 투수 ‘빅 트레인’(월터 존슨의 별명)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그는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자마자 전성기를 마감했던 많은 선수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30대 중반에 막 접어든 나이도 부담이 되긴 했겠지만, 1.55-1.90-2.21-1.27-1.49로 이어지던 방어율이 공인구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3.13-3.51-2.99-3.48로 수직상승했다면 그것은 분명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경기에 사용하는 공 하나가 바뀌면서 전설적인 선수의 전성기도 함께 막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덕스가 데뷔하던 당시는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던 ‘투수들의 시대’의 끝자락이었다. 그 후 메이저리그에는 ‘타자들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스테로이드 시대’가 찾아오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의 흥행을 위해 공격야구를 중시하는 풍토가 리그를 지배하며 수많은 규정이 바뀌기도 했다. 매덕스는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도 훌륭하게 살아남았고, 42살이 된 현재에도 건강하게 뛰고 있다.


그 뿐 아니라 20년 연속 두 자리 승이라는 위대한 금자탑까지도 쌓았다. 샌디 쿠펙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전성기가 아무리 태양처럼 환히 빛났다지만, 20년을 이어온 매덕스의 꾸준함과 비견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매덕스의 전성기 역시도 그들 못지않게 찬란했었다.


때문에 그렉 매덕스의 350승은 현대 야구에 있어 그 어떤 기록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심지어 뒤따를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존재 때문에) 지난해 배리 본즈가 경신한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보다도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내용을 Daum의 해외야구 섹션 메인화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게시판에서도. 필자가 예정에도 없던 매덕스 관련 칼럼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400승이라는 불가능을 향한 도전...

303승을 기록 중인 탐 글래빈의 350승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평가하면서 350승을 거둔 매덕스의 400승 가능성을 점친다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4년 이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과 어떤 면에서 매덕스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인 제이미 모이어(1962년생)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이미 95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 투수가 난무하는 메이저리그에서 85마일도 되지 않는 패스트 볼을 가지고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350승이라는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도전은 끝이 아니다. 로저 클레멘스를 뛰어 넘고 워렌 스판을 지나 라이브볼 시대 최다승 투수가 되는 것이 1차 목표라면, 24승을 추가해 역대 다승 3위에 오르는 것은 2차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최종적인 목표는 400승이 아닐까.


물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매덕스에게는 매 경기가 새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야구팬들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을 환상’을 꿈꾼다. 그 환상이 400승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