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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공포스러웠던 대만전, 승리의 기쁨보다 더 큰 상처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8. 18.
 

흡사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3시간 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치러진 한국과 대만의 경기는 이를 지켜보던 한국 국민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을 느끼기에 충분했기 때문.


다행히 9:8로 간신히 승리하며 5승째를 획득, 최소한 2위를 확보하며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이번 승리는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였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1회에 타자 일순하면서 대거 7득점, 2회에까지 추가점을 뽑은 한국이 8:0으로 앞서나갈 때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7회 콜드승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침체된 방망이는 완벽하게 되살아난 듯 보였고, 봉중근이 완봉 내지 완투승을 거둬준다면 ‘방망이의 부활’‘투수진의 휴식’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듯 했다.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그야말로 금메달을 향한 최상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듯 보였던 것.


하지만 이게 웬걸? 미국전에서도 갑작스런 난조로 점수를 허용하던 봉중근(4.1이닝 6실점)이 대만 타자들에게 난타당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등판한 한기주(2.1이닝 2실점)는 이번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씻어내지 못하고 결국 동점까지 허용. 단숨에 ‘역전패’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뻔 했다. 4승을 거두고 있는 마당에 한 번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투수진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것 자체가 남들이 쉴 때 중국과의 비로 연기된 시합을 치른 한국으로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7회 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강민호가 결승점이 되는 안타를 때려냈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무사 1,3루의 대량 득점 찬스에서 허무하게 무득점으로 물러나는 모습은 또 한 번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날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있던, 그것도 그 중 하나가 홈런이었던 고영민이 번트를 대고 그것이 파울 플라이로 아웃되는 모습은 이 공포스러운 경기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다행히 한기주의 뒤를 이어 등판한 권혁(0.2이닝)과 윤석민(1.2이닝)이 남은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내면서 승리를 따냈기에 망정이지, 그 둘 중 한명이 무너지면서 패배하기라도 했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악몽이 될 뻔했다.


▷ 상처뿐인 영광

우리나라 대표팀은 이날 경기를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첫째, 미국과 대만에 이어 23일 벌어지는 결승전(또는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 있던 봉중근이 두 경기 연속 5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점이다. 두 경기 합계 8.2이닝 14안타 9실점. 지금 봉중근이 보여주는 컨디션으로는 쿠바-일본-미국 중 한 팀이 될 23일 경기에서 믿고 선발로 등판시킬 수 없다. 한국은 좋던 싫던 22일의 준결승과 23일의 결승전(또는 동메달 결정전)은 김광현과 류현진이라는 카드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상대가 이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불리하다.


둘째, 불펜의 소모가 극심했다. 휴식일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는 한국은 불펜의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오승환의 컨디션은 아직 완전하지 않고 한기주는 더 이상의 기용이 가능할지가 의문인 상태. 문제는 남은 쿠바전과 네덜란드전이다. 쿠바전에는 송승준이 등판하면 된다. 하지만 류현진을 준결승 이후까지 남겨두기 위해서는 20일 네덜란드전에는 17일 중국전에서 4.1이닝을 던진 장원삼이 이틀만 쉬고 다시 출격할 수밖에 없다.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사실. 윤석민이 롱릴리프로 등판해 긴 이닝을 소화해줘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큰데, 지금의 피로는 큰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특히 쿠바전에서 송승준이 적어도 7회 이상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총체적인 투수운용의 난국이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타자들의 타격 리듬이 흐트러졌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1회에는 놀라운 타격감을 선보였던 타자들은 2회 이후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경기 초반에 큰 타구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후의 타석에서는 집중력과 정교한 맛이 사라져 버렸고, 주루플레이에서의 미숙함과 수비에서의 잔실수가 거듭됐다. 2회의 이승엽이 무리한 홈 쇄도로 아웃되더니, 8회에는 고영민의 번트 실패까지. 이대호의 타격감이 절정에 달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럽지만,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쿠바는 물론 4강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대표팀은 든든한 안방마님 진갑용을 다리 부상으로 잃었다. 대신 투입된 강민호가 결승타를 때려내긴 했지만, 두 명의 포수를 융통성 있게 기용하는 것과 한 명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그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힘들게 이기긴 했지만 미국과 일본전의 승리는 명승부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캐나다와 중국을 상대로 1:0의 힘겨운 승리를 거둔 것은 우리 타자들의 부진 탓도 있지만, 상대 투수의 호투를 인정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만전과 같은 경기 양상은 곤란하다. 이런 유형의 경기는 팀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


▷ 높아진 기대치를 극복하라

5승 무패. 계속 되는 승리로 인해 야구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는 자꾸 높아져 가고 있다. 당초 목표는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을 따는 것이었지만, 연습경기에서 쿠바에 1승 1패로 대등한 승부를 펼친데 이어 본선에서 이토록 연승 가도를 달리자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당장 다음 런던 올림픽부터 야구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가 된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가 한국 대표팀에 찾아왔다. 그렇다면 프로인 대표 선수들의 자존심을 불살라서라도 그것을 쟁취하러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든 국민들은 박수쳐 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엄격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얻은 열매야말로 진정 값진 것이기 때문.


승리를 향한 한국 야구 대표팀의 열정이 23일 경기가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더불어 대만전의 상처도 내일(19일) 벌어질 쿠바와의 경기를 통해 모두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올림픽 예선 풀리그 결과 및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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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토너먼트 일정>
22일 오전 11:30 준결승(예선 1-4위)
22일 오후 07:00 준결승(예선 2-3위)
23일 오전 11:30 동메달 결정전
23일 오후 07:00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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