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는 강하다. 83승 43패 .659라는 승률로 2위를 무려 13경기차로 따돌리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그들은 ‘역대 최고’를 논할 만한 과거의 그 어떤 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예상’이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정규시즌에서 13경기나 뒤진 팀의 승리를 감히 ‘예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적’과 ‘드라마’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러한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 13경기 차의 의미?
올해를 포함한 역대 포스트시즌 결과를 살펴본 결과 3,4위가 맞붙은 준플레이오프(3위 8승 9패)와 그 승자가 2위와 맞붙는 플레이오프(2위 9승 9패)에서는 순위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만은 달랐다. 단일리그 제도 하에 펼쳐진 17번의 한국시리즈에서 1위 팀이 고배를 마신 것은 단 3번(89,92년 빙그레, 01년 삼성). 쉽게 말해 “1위 팀이 오래 쉬었기 때문에 경기감각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말은 완전한 헛소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두산은 지난 2001년 삼성을 상대로 그러한 기적을 일으킨 팀 중에 하나다.(나머지는 89년 해태와 92년 롯데)
그렇다면 정규시즌에서 10경기 이상 차이가 난 팀들이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었을 때의 결과는 어떨까? 단일리그 제도 하에서 벌어진 포스트시즌 시리즈 중에는 그러한 경우가 모두 9번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오히려 10경기 차 이상으로 뒤졌던 팀들이 5번으로 더 많은 승리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2001년 두산이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삼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양 팀의 승차는 올해보다 더한 13.5경기였다.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부담 없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시리즈에서 1위 팀이 패한 3번 중 2번은 이처럼 양 팀의 승차가 10경기차 이상으로 벌어져 ‘일방적인 시리즈’가 예상되던 시리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산 역시 마음을 비우고 도전한다면 SK를 꺾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체 성적은 크게 뒤졌지만, 상대 전적은 8승 10패로 거의 대등했다.
▶ 선발 싸움은 두산의 완패, 하지만...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선발 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광현(16승 4패 2.39)을 필두로 채병룡(10승 2패 2.70) - 레이번(5승 3패 3.30) - 송은범(8승 6패 3.77)으로 이어지는 SK의 선발 로테이션은 무서우리만치 강하다. 랜들과 이혜천 정도가 고작인 두산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와이번스의 선발진이 무조건 최고라는 뜻은 아니다. 선발투수들의 평균자책점 합계가 3.36-4.51로 두산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앞서 있음에도, 투구 이닝은 634.1-635로 별 차이 없이 오히려 두산이 앞선다. 그것은 평균 투구이닝이 정확하게 ‘6이닝’인 김광현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발 투수의 경기당 평균 투구이닝이 겨우 5이닝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발진이니 뭐니 해도 포스트시즌의 특성을 감안하면 그들이 마운드 위에 버틸 수 있는 것은 4~5이닝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SK 선발 투수들이 평균적으로 5회까지 2실점으로 버틴다고 보면, 두산 선발은 4회까지 2실점으로 버틸 것이라 보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경기의 중반 이후를 책임질 허리싸움. 경기 양상은 플레이오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 두산에는 최고의 ‘믿을맨’ 트리오가 있다
구원투수들이 39승 17패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한 SK 와이번스와 31승 17패 3.10을 기록한 두산. 두 팀 모두 허리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는 팀들이다. SK는 시즌 내내 그러한 모습을 보여 왔고, 두산은 또 하나의 만만찮은 계투진을 보유한 삼성을 플레이오프에서 꺾으면서 그 강함을 입증했다.
SK는 정대현(4승 3패 20세이브 2.67)과 정우람(9승 2패 25홀드 5세이브 2.09)이라는 쌍두마차에 김원형(12승 6패 3.15), 윤길현(2.90), 조웅천(2.68) 등이 버티고 있다. 아마도 승리하는 경기에서 등판할 투수는 이 정도일 것이다.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손색이 없다.
하지만 두산에는 막강 불펜 트리오가 있다. 플레이오프에서만 혼자 3승을 챙긴 정재훈(9.1이닝 4실점)을 비롯해 이재우(10이닝 2실점)와 임태훈(6이닝 무실점)은 뛰어난 구위를 바탕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1이닝이 아니라 2이닝 이상씩을 막아줄 수 있는 투수들이라는 점에서 선발 투수가 4회까지만 버텨준다면 나머지 5이닝을 책임지고 팀의 승리를 지켜줄 수 있는 믿을만한 선수들이다.
4이닝을 책임질 SK 불펜과 5이닝을 책임져야 하는 두산 불펜. 언뜻 보면 투수들의 피로도에서 두산이 더 심할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두산은 SK에 비해 한 명 많은 12명의 투수를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결국 4선발 체제인 SK의 구원투수가 7명인데 비해, 3선발 체제인 두산의 구원투수는 9명이 된다. 두산이 취할 것(이기는 시합)은 취하고 버릴 것(패색이 짙은 시합)을 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면, 불펜의 피로도는 오히려 SK가 더욱 심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지휘관은 ‘개근상’야구를 추구하는 김성근 감독이 아니던가.
▶ 타격은 박빙, 하지만 컨디션은 두산!
정규시즌에서 647득점으로 1위를 기록한 두산과 632점으로 2위에 오른 SK는 득점력 면에서는 별 다른 차이가 없다. 한쪽은 자율에 의한, 다른 한 쪽은 작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기동력의 야구를 추구한다는 점은 똑같다.
‘정근우(73득점 40도루 .314)-박재상(21도루 .274) vs 이종욱(98득점 47도루 .301)-오재원(28도루 .248)’의 테이블세터진 대결은 이번 한국시리즈 최고의 화두다. ‘어떤 팀이 더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해 상대 투수를 흔들어 놓을 것인가?’가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아무래도 이미 플레이오프에서 가공할 위력을 과시한 두산이 조금 더 유리하다.
29타수 15안타 3타점 6득점 3도루로 시리즈 MVP를 차지한 이종욱과 25타수 11안타 5타점 9득점 2도루로 영양가 면에서 오히려 이종욱을 능가한 오재원이 형성하는 테이블 세터진은 상대 김성근 감독도 두려움을 표현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특히 정근우가 무려 20번의 도루 실패를 기록하는 등 도루 성공률이 67.8%에 불과한 SK에 비해 두산의 콤비는 83.3%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일단 테이블 세터진 싸움에서는 두산이 다소 앞서 있다.
또한 두산은 김현수(9홈런 89타점 .357)-김동주(18홈런 104타점 .309)-홍성흔(8홈런 63타점 .331)으로 이어지는 막강 중심타선의 화력에서도 박재홍(19홈런 72타점 .318)과 최정(12홈런 61타점 .328) 등이 버틴 SK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플레이오프 막판 하나 같이 타격감이 살아나며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정규시즌 SK전에서 68타수 26안타(.382) 16타점을 기록한 김현수과 49타수 21안타(.429)로 맹타를 휘두른 홍성흔은 이번 시리즈 기간 동안 가장 주목해서 지켜봐야할 선수다.
기본적인 득점력에서 다소나마 앞서 있는 팀이 지금 현재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면 상대로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두산이 타고 있는 이 기세를 과연 김광현을 비롯한 SK 투수들이 막아낼 수 있을까?
▶ 수비 및 스트라이크 존
SK는 정규시즌 동안 102개의 실책을 범하며 8개 구단 가운데 최다를 기록했다. 반면 두산은 90개로 그보다 적었고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났듯이 내-외야에서 탄탄한 수비능력을 보유한 팀이다. 유격수 나주환(17개)을 비롯해 2루수 정근우(15개), 3루수 최정(14개)이 지킬 SK의 내야진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SK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이 낮았던 것도 이들의 공(?)이 컸다.
발 빠른 팀을 상대로 하는 입장에서 내야진이 불안하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 요소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단기전은 실책 한 번에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어쩌면 이 수비야 말로 이번 한국시리즈 승패의 행방을 가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커다란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스트라이크 존이다. 점점 넓히겠다고 공언을 했지만, 유독 이번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심판들은 볼 판정에 인색했다. 롯데와 삼성은 물론, 정규시즌동안 379개의 볼넷만을 허용해 8개 구단 가운데 최소를 기록했던 두산조차도 이번 플레이오프 6경기에서 무려 35개의 4사구를 남발하며 애를 먹어야만 했다.
두산에 비해 많은 볼넷을 허용한 SK(448개)의 투수들이 더욱 고생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바다. 어쩌면 SK 코칭스태프의 가장 큰 고민은 두산 타자들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바로 심판에 대한 연구일 지도 모른다. 지금의 스트라이크 존은 1차전 선발 투수인 김광현이 볼넷으로 자멸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 김성근이 ‘야신’이면 한국 야구의 미래는?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는 확실히 강하다. 단기전뿐만이 아니라 장기전에서도 강하다는 것이 지난해와 올해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야구의 신’이라는 호칭을 허락해도 되는 것일까?
‘이기는 야구’가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이기게 만들고, 우승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기에 SK의 팬들에게는 인정받고 사랑받는 감독이 되었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야구팬들에게는 ‘짜증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감독이 바로 김성근이다. 그의 야구는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끊임없는 과거로의 답습이자 ‘혹사’ 논란 속에서 선수를 희생시키는 야구다.
최고의 선발진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신뢰하지 않아 매 경기마다 4명이나 되는 구원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며, 1점 뽑는 데 연연해 3할 타자에게 희생번트(정규시즌 SK 80번-두산 36번)를 강요하는 야구. 이러한 것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지루하고 재미없게 만들 뿐이다. 이런 식이면 방송사에서도 결국 야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경문 감독의 야구는 모든 야구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야구였다. 그의 야구는 미래 지향적이고 선수를 신뢰하는 야구다. 감독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가기 보다는 선수에게 스스로 개척할 것을 요구한다. 선발 투수가 일찍 무너지는 바람에 투수 교체가 제법 빈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플레이오프 시리즈가 유독 재미있었던 것은 ‘타자와 야수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어가는 야구’였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스타일의 야구다.
김성근식의 야구가 ‘최강의 승리방정식’이 되어선 곤란하다. 현재 그가 이끄는 잔인한 챔피언 SK 와이번스를 격파할 유일한 가능성이 있는 팀은 바로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 한편으로는 ‘무모한 도전’이라 불려도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시리즈가 되겠지만, 한국 야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김경문 감독의 두산이 김성근 감독의 SK를 제압해주길 소망하며 두산의 4:3 승리를 믿는다.
// 김홍석(http://mlbspecial.net/)
(P.S. 이 칼럼은 2008시즌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맞이하여 [김홍석의 야구스페셜] 과 [야구라의 뻬이쓰볼] 이 공동으로 기획한 것으로, 각자가 맡은 팀의 장점만을 부각시켜 해당 팀의 승리를 일방적으로 전망하는 새로운 형식의 글이다. 본문 중에는 글의 재미와 흥미를 돋우기 위해 약간의 과장과 거친 표현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