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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WBC문제, 현직 감독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1. 8.


내년 3월에 열리는 제2회 WBC 때문에 한국 야구계에 때 아닌 난리가 났다. 모두가 감독직을 고사하는 가운데, 이사회에서는 일방적으로 김인식 한화 감독을 1회 대회에 이어 이번에도 사령탑으로 내정했다.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했던 김경문 감독과 한국시리즈 우승 팀의 김성근 감독이 거절한 상황에서 결정된 어쩔 수 없는 선택. 물론 4강 진출에 성공해 야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김인식 감독의 능력이야 충분히 인정하지만, 주변 상황이 그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문제다.


감독은 정해졌으나, 코칭스태프는 하나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 김인식 감독은 “내가 원한다면 현직 감독들이라도 코치로 데려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뜻을 밝혔지만, 현역 감독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계속해서 고사의 뜻을 밝힌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코치직 제안을 거절했다고 소문이 난 선동렬, 조범현, 김재박 감독을 향한 야구팬들의 질타와 비난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김인식 감독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지고 있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일 뿐, 현직 감독들에게 책임을 물을만한 일은 아니다. 코치직을 거절하는 현직 감독들의 선택도 충분히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 박찬호의 상황 = 현직 감독들의 상황

1회 대회와 작년 올림픽 1차 예선에 참가했던 박찬호는 2회 대회 참가가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내년 시즌 붙박이 선발투수로 재기하기 위해서는 스프링캠프에서 빠질 수 없다는 이유다. 지난해 올림픽 1차 예선 참가 당시의 박찬호는 ‘정의’라는 단어까지 사용해가며 예선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최근의 인터뷰에서 말을 바꾼 것이다.


엄청난 연봉 때문에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성적과 관계없이) 선발투수가 보장되어 있었던 2006년 1회 대회나, 잃을 것이 없기에 홀가분한 맘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2007년 올림픽 1차 예선 때와는 달리 내년 3월에 열리는 WBC는 그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 따라서 박찬호로서는 국가대표직을 고사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겠다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그 동안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대부분의 팬들도 이를 충분히 이해해주고 있다.


사실 선동렬 감독을 비롯한 나머지 감독들의 심정도 이와 같다. 그들 역시도 내년 시즌 자신의 소속팀의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3월에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고용주는 KBO가 아닌 각 구단이다. 팀 성적에 따라 자리보전이 어려울 수도 있는 한국 프로팀의 감독들이 선뜻 나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박찬호를 이해한다면, 현직 감독들의 심정도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한다.


김인식 감독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지만, 만약 김성근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추대되어 김인식 감독을 코치로 지명했다면, 흔쾌히 받아들였을까? 기분 좋게 수락했을 수도 있지만, 건강을 이유로 고사하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김인식 감독도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것일 뿐, 자신이 맡겠다고 자원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상황도 좋지 않고 부담도 크기 때문이겠지만, 김인식 감독이 대표감독으로 선임된 후 가장 먼저 드러낸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 진짜 문제는 감독들이 아니다

문제는 코치직을 거절한 현직 감독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굳이 현역 프로 팀의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해야 하는 지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WBC를 3월에 할 수 밖에 없는 지도 따져봐야 한다.


WBC가 3월에 열리는 것은 실질적으로 대회를 주관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고집 때문이다. 아무리 3년 만에 열리는 국제대회라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의 시즌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그들만의 자존심(또는 오만). 세계의 야구팬들을 위한 축제라고 말하면서도, 나머지 참가국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


최고의 야구선수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지니긴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를 위한 치밀한 계획이 있을 뿐, 큰 대회로서의 권위나 명분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꼭 보고 싶긴 하지만) 감독들끼리의 의가 상하고 팬들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참가할 가치가 있는 대회인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4년 마다 개최되는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그리고 3년 마다 열리는 WBC를 위해서 전임감독을 둔다는 것은 다소 오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진통을 겪어야 한다면 전임감독 제도를 추진해보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국가대표 전임 감독이 KBO의 기술위원직을 겸임한다면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 한국에서는 이미 빛이 바랜 ‘세계인의 야구축제’

세계에서 통할만한 전력을 보유하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준비부터 차질을 빚고 있는 제2회 WBC. ‘야구팬의 축제’가 되어야할 대회가 삐걱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더군다나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시즌 내내 수고하며 팬들에게 기쁨(때로는 슬픔)을 안겨준 현직 감독들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는 점이 그런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고 있는 하일성 총장의 힘들어 보이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


KBO와 김인식 감독이 지혜를 짜내며 현명한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라 기대하는 한편, ‘올림픽 챔피언의 불참’이라는 초강수로 대회 집행위의 콧대를 한 번쯤 시원하게 꺾어주는 것도 꽤나 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불쾌하기에...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