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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이승호,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 2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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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 이승호,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 1편

▶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다.

2004 시즌을 앞두고 LG는 또 다시 감독 교체라는 초강수를 띄우며 팀 리빌딩에 들어갔다. 당시 선동열씨를 감독으로 영입한다며 큰소리쳤던 LG구단은 기존의 이광환 감독이 ‘선동열만 오면 내 자리를 열어주겠다’고 말한 것을 바탕으로 선동열씨와의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나 선동열씨가 의외로 삼성행을 선택하자 당황한 LG는 이광환 감독 대신 이순철씨를 감독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순철 체제 이후 새로 영입한 투수코치는 이승호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현역시절, 컨트롤의 마법사로 불리웠던 두 사람 - 차명석, 이상군 투수코치가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사실 이승호는 전형적인 파워피처답게 많은 삼진숫자에 비해서 사사구 숫자도 많았다. 이승호 스스로도 '작년에는 삼진을 잡고 싶은 욕심에 많은 공을 던졌고, 이것이 많은 숫자의 볼넷을 기록한 원인이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두 투수코치와의 만남은 그를 '볼 끝이 좋은 왼손투수'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승호는 2003 시즌에 비해 삼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타자를 맞춰 잡는 데에 주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게 된다. 그러다보니 더욱 맘편하게 던질 수 있었고, 맘편하게 던지다 보니 삼진숫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2004 시즌에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당시 두산 에이스 박명환(現 LG)과 방어율/탈삼진 타이틀을 두고 시즌 중반까지 엎치락 뒤치락했던 이승호의 어깨가 다시 한 번 고장이 났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승호는 규정이닝을 끝내 채우지 못했고, 시즌 종료와 함께 토미 존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재기를 위하여 끝없는 노력을 했지만, 이미 이승호는 2003~2004 시즌의 그가 아니었다. 자신있어하던 속구는 145km를 넘기기 어려웠고, 주무기라 불리웠던 슬라이더의 각도 역시 밋밋하게 들어와 연타를 맞기 일쑤였다. 꾸준했던 그에게 지난 4년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LG마운드는 박명환, 봉중근, 옥스프링이 1~3선발을 차지해 버렸고, 나머지 두 자리를 위해 최원호, 심수창 등과 경합을 벌였지만, 그가 주로 있어야 할 곳은 2군이라는 쓸쓸한 무대였다.


▶ 사필귀정 : 야구에 눈을 뜨게 해 준 은사에게로 가다

2008년 시즌이 끝난 이후 1, 2군을 전전했던 그가 거둔 성적표는 24와 1/3이닝을 던지는 동안 승리없이 2패, 방어율 9.28.... 2003년 탈삼진 타이틀 홀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한 성적이었다. 결국 그는 이진영의 LG이적과 함께 보상선수라는 형태로 SK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LG 마운드의 자존심이었던 그가 끝내 보호선수 명단에도 들지 못하고 이적하게 되는 결과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SK의 김성근 감독은 이승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LG 감독 시절, 그를 조련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이승호는 2002년 후반기, 이동현과 함께 LG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추후 2003년도에 ‘타이틀 홀더’가 된 것도 투수조련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의 존재가 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옛 스승을 만났다. 사필귀정인 셈이다.


▶ 이승호의 큰 장점

그에게 더 이상 148~9km에 이르는 포심 페스토볼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어쩌면 ‘사우스포’라는 메리트마저 그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다. 꾸준함이 매력이었던 그는 이미 몇 차례 부상을 당하고도 다시 일어섰던 전례가 있다.


김성근 감독 역시 LG 감독 시절에 이승호의 꾸준함과 성실한 훈련자세를 많이 칭찬한 바 있다. 어지간히 강한 훈련으로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였지만, "내가 그만 공을 던지라고 말리는 선수는 이승호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승호의 꾸준함은 김 감독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과연 옛 스승을 맞은 이승호의 내년 시즌은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필자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이승호의 투구내용은 동명이인의 ‘리틀 이승호’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후년 시즌 이후에는 다시금 재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 두 이승호는 큰 부상으로 오랜기간 공백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선수의 미묘한 차이점은 나이차이 정도라 본다.


올시즌에는 동생 이승호가 성공적인 재기를 마쳤다. 그 재기를 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이 소요된 만큼, 형님 이승호 역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하는 선수이기에 어느 순간 다시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 이승호, 그의 비상을 꿈꾸며....

야구선수들의 유형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스타덤에 오른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일부러라도 팬들에게서 도망치는 경우, 스타덤에 오른 이후로 오히려 더욱 더 팬들에게 다가서는 경우가 있다. 각 유형별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승호는 바로 후자에 속하는 경우다. '저 사람들이 없고서야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몰려드는 팬들에게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일일이 사인해 주는 모습, 사진 찍어주는 모습에서 이승호선수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해 본다.


옛 스승 밑에서 끝까지 자신을 담금질하면, 언젠가 다시 국내 정상급 좌완투수로 공인받게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게 되더라도 야구장 밖에서 보여주는, 팬들을 향한 인간적인 모습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승호의 생일날(아마 2004년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 더불어 팬들과 맥주 한 잔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승호는 겸손한 모습읗 보이며, 끝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렇다. 그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다만 추후 성공을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거친 길을 걷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가 2004 시즌 전에 리틀 이승호와 같이 KBS 스포츠세상, ‘스타 대 스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아프지 않고, 올 시즌 내내 건강한 모습을 유지했으면 좋겠어요.”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이번에는 필자가 이승호에게 건네고 싶다. 팬들은 여전히 그의 2003 시즌을 고대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를 ‘믿는 구석’으로 알고 그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상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각종 타이틀보다 건강을 중시하는 그 - 이승호. 재기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는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원한다.


[사진(C)=MC유진]


// MC유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