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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집중력을 상실한 졸전 끝에 패배, 이건 아니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3. 20.

WBC에 출장한 한국 대표팀이 졸전 끝에 일본에게 6-2로 패했다. 투수들은 무려 15개의 안타를 허용했고, 우리 타자들은 6개를 때려내는 데 그쳤다. 삼진은 11번이나 당했고, 수비에서도 실책이 3개나 있었다. 승리한 일본이 잘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물론 승패에 관계없이 4강 진출은 확정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패하는 팀은 22일, 이긴 팀은 23일에 준결승전을 치르기 때문에, 24일의 결승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합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괜찮다’는 말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느냐면, 그건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절박하지 않았던 시합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 자체가 ‘졸전’이었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와의 전적을 2승 2패로 만든 일본 쪽의 반응은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 스스로에게 있다. 한 번 상실된 집중력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 동안의 국제무대에서 상대팀 혹은 유리한 일정을 위해 ‘져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합에 임한 팀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확실히 기세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본선 풀리그에서의 쿠바전이었다. 당시 김경문 감독은 5연승을 기록 중이던 선수들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여차하면 져준다’는 생각으로 주력 투수가 아닌 송승준을 선발로 기용했다. 하지만 그렇게 경기에 임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며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과시했다.

송승준(6.1이닝 3실점)은 기대 이상의 호투를 선보였고, 타자들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가면서 7-4로 승리, 전승 우승의 확실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전에서는 그 당시의 집중력을 느낄 수 없었다.

올림픽 당시, 일본은 한국의 조1위가 확정된 상황에서, 3,4위가 결정되는 풀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미국과 의욕없는 경기를 펼치다 승부치기 끝에 4-2로 패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쿠바보다는 한국이 편하다’며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 결과는 한국과 미국에게 연거푸 패하면서 동메달조차 따지 못하는 망신을 당했다.

일본전에 임하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7개월 전의 일본을 보는 듯했다. 경기를 하다보면 질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패배는 그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프로 선수에게 ‘져도 되는 시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의 경기는 우리 선수들에게 다소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 플레이로 집중력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는 경기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시합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력 선발 투수를 아끼고 장원삼을 기용하고, 그동안 시합에 출장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기용한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합 내용 자체가 느슨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의 선수기용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로 패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때는 정말 ‘져도 되는 시합’이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내용 자체가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이래서는 그 동안의 연승 분위기로 만들어왔던 집중력이 단숨에 날아 가버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베네수엘라와 22일 오전 10시에 준결승을 치른다. 하지만 그 시합에서 오늘 있었던 일본전의 후유증이 크게 다가올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일각에서는 ‘졌기 때문에 오히려 얻은 것이 많았던 시합’이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나쁜 패턴으로 패했기에 얻은 것 이상으로 잃은 것이 많았던 시합’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준결승에서 베네수엘라에게 패한다면, 그것은 오늘 경기에 대한 대가이리라. 프로 선수가 시합에 임하면서 ‘승리’에 대한 목마름 없이 경기에 몰입하지 못했다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패배라는 두 글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