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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로빈슨 데이'와 '루스 데이', 그리고 '임수혁의 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4. 22.

메이저리그는 야구발전에 공을 세운 원로들이나 불멸의 기록을 세운 은퇴한 모범 신사들을 제대로 대접할 줄 안다. 프로야구 최초로 ‘팜 시스템’을 고안해 낸 브랜치 리키, ‘야구란 무엇인가(The 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를 저술한 레너드 코페트 등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여 그 이름을 기린 것을 비롯하여 ‘사이 영’, ‘테드 윌리엄스’ 등 불멸의 기록을 세운 선수들의 이름을 딴 ‘상(award)’을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사이영 상(Cy Young Award) : 양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
테드 윌리엄스 상(Ted Williams Award) : 올스타전 MVP에게 주어지는 상
행크 아론 상(Hank Aaron Award) : 당해 최고의 타격감을 선보이는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Roberto Clemente Award) : 그 해 가장 많은 선행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

이 외에도 야구계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을 기리는 ‘~데이(Day)’를 만들어 그 뜻을 기리기도 한다. 지난 15일, 미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전 LA 다저스)을 기념하기 위한 ‘재키 로빈슨의 날’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날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든 모든 선수/감독들은 로빈슨의 영구 결번인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이는 미 프로야구에서 인종의 벽을 허문 로빈슨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4월은 ‘재키 로빈슨의 날’과 ‘베이브 루스의 날’이 있는 달

사실 지금 흑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것은 로빈슨이 선수 생활의 시작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미국사회는 여전히 메이저리그라는 현대 야구의 ‘최초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백인 선수와 똑같이 대할 만큼의 너그러움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이라 하여 흑인들이 생활 전반 이용 시설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에 로빈슨 역시 심판들의 ‘보이지 않는 편파 판정’속에서 상당히 어려운 데뷔전을 치러야 했다. 

또한 로빈슨은 ‘경기에 선발로 출장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백인 팬들의 협박과도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 로빈슨은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결국 ‘신인왕’이라는 값진 결과로 나타났다. 이때를 시작으로 각 구단들도 ‘니그로 리그(흑인 선수들만이 뛸 수 있었던 리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즉, 그는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 촉매제였고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메이저리거가 무엇인지 현재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좋은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

‘재키 로빈슨의 날’이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면 ‘베이브 루스의 날’은 미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700홈런을 기록한 베이브 루스를 기리기 위한 날이다. 통산 타율 0.342, 714홈런, 2217 타점 등 선수로서는 믿기지 못할 기록을 남기고 은퇴한 루스는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유소년들을 위한 야구 지도에 나섰다. 이를 안 야구계 원로들은 루스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47년 4월 27일을 기점으로 ‘베이브 루스의 날’을 만들어 그 날 경기의 수익금을 전액 루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이는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한 원로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는 행사였다.

루스 사후에도 이 행사는 멈추지 않았다. 이때부터 매년 4월 27일을 ‘베이브 루스의 날’로 정하여 그 날 경기의 수익금 전액을 유소년 야구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고, 일부는 고아들이나 불치병 아동들에게 전달하는 뜻 깊은 행사로 이어지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임수혁의 날’ 행사 실시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는 ‘임수혁의 날 행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9년 전인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 2루 베이스에서 쓰러진 임수혁 선수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롯데 자이언츠를 필두로 각 구단은 ‘임수혁 돕기 행사’를 꾸준히 진행했으며, 특히 히어로즈는 4월 17일을 시작으로 홈 3연전에서 임수혁 선수 후원 모금 행사인 ‘리멤버 더 히어로(Remember the Hero)’를 실시했다. 매년 4월만 되면 ‘임수혁’을 떠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임수혁의 날’은 ‘베이브 루스의 날’이나 ‘재키 로빈슨의 날’과는 달리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마음 아플 수밖에 없는’ 행사다. 임수혁 선수의 아버지가 마운드에서 시구를 함으로써 팬들과 많은 야구선수들의 성원에 보답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기적적으로 깨어나 시구하는 임수혁’의 모습일 것이다.



2000년 4월 18일을 시작으로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는 임수혁. 그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사진=임수혁 (C) 롯데 자이언츠 제공>

// 유진=http://mlbspecial.net

※ 본 고는 위클리 이닝(http://www.inning.co.kr)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