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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경솔했던 마해영, 책임지지 못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5. 19.
해영 해설위원(이하 해설위원 생략)이 <야구본색>이라는 자서전적인 책을 발간했습니다. 문제는 그 내용의 일부분인데요. 마해영은 자서전을 통해 "현역시절 나는 복용이 엄격히 금지된 스테로이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선수들을 제법 목격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훨씬 복용 비율이 높아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 선수들도 다수 있었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쉽게 유혹에 빠진다.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 우황청심환을 찾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군요.

저도 책을 보기 위해 현재 주문을 해놓은 상황인데요. 좀 더 정확한 내용은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이 참 묘하네요.

이 내용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야구계를 강타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난감한 표정을 하며 이후의 발언을 조심하고 있군요. 참 우습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 얄팍한 상술? or 일종의 양심선언?

그럼 마해영의 이번 자서전의 내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일부에서는 ‘양심선언’이라며 그의 용기있는 고백을 높게 사고 있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책을 많이 팔기 위한 ‘상술’이라며 그 의도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올바른 시각일까요?

전 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마해영의 행보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당장 보여주고 있는 마해영의 행동은 ‘얄팍한 상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군요. 그의 책 속 내용이 ‘용기’로 평가 받기는 조금 무리인 듯 보입니다.

메이저리그의 레전드급 선수였던 호세 칸세코가 ‘약물에 취해’라는 자서전을 발간한 것은 도박과 사업실패로 벌어 놓은 돈을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철저한 상술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다른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칸세코를 무조건적인 ‘나쁜 놈’으로 치부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책 속 내용이 대부분 ‘진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칸세코의 저 자서전은 결과적으로 메이저리그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반성을 하고 자구책을 마련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칸세코는 일종의 ‘필요악’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마해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선수들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혹만 불러일으킨 후 자신의 발은 쏙 뺀 셈입니다. 저 역시도 그의 말(일부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는 내용의)이 사실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밝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가 ‘양심선언’을 하고 싶었다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고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자신이 직접 목격한 선수의 실명을 거론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한국 프로야구를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말이지요. 그렇게 해야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새로운 앞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그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서술했을 뿐입니다. 이후 언론의 인터뷰에서는 “10명 미만이었다”, “과거의 일일뿐”이라는 말로 둘러대고 있습니다. 막상 일이 커지니까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결국 그는 흑막의 실체를 확실하게 까발리기 보다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약물 복용 비율은 매우 적었다. (8개 구단을) 통틀어 한 자릿수”
“거의 다 용병이었다. 특정 선수, 의심을 살 만한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당히 적은 숫자였다”
“용병들이 뭘 먹고 있으면 다가가서 '뭐냐'고 묻기도 하고 그래서 좋다고 하면 호기심에서 한 번 복용하는 식이었다”
“절대 장기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끝까지 실명을 밝히지는 않을 것”

마해영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말들입니다. 딱 봐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건이 커지자 스스로 축소하려는 듯 한 의도가 엿보이죠. 앞서 언급했던 책의 내용과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일종의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그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은 책을 많이 팔기 위해 첨가한 것 뿐, 그는 애당초 ‘양심선언’ 따위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심선언인 척 했지만, 결국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래서야 비겁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며, 스테로이드를 언급한 것이 ‘얄팍한 상술’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변명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 과거의 일이니까 용서해도 된다?

마해영은 인터뷰를 통해 스테로이드 사용이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일’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오물을 뒤집어 쓴 선수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 때문에 도의적인 비난을 받고 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스테로이드 사용이 사라졌다고 해서 과거의 죄를 용서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요긴하게 사용하던 스테로이드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메이저리그에서 문제시 되는 바람에 한국까지 불똥이 튈까봐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늘어가던 홈런 수는 발코 스캔들이 터진 시점부터 급격하게 줄어들며 작년까지 일시적인 ‘투고타저’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금지약물을 사용했음이 확인된 선수는 박명환과 진갑용 두 명입니다. 나머지는 알 수 없지만, 의혹이 가는 선수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과연 그들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정말로 지금 당장은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을까요? 과연? 정말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스테로이드 파동이 일어나자 연방 청문회까지 열렸습니다. 정치권이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요? KBO에서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지만, 아마도 버드 셀릭이 90년대 후반 당시에 보였던 주먹구구식 대응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이왕 조사를 할 요량이면 확실하게 까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크나큰 아픔과 충격으로 다가오더라도, 10년 혹은 20년 후를 내다보는 관점에서는 훨씬 더 이득이 될 테니까요. 아니면 아예 철저하게 묻어버리던지요. 하지만 경솔했던 마해영이 책임지지도 못할 판도라의 상자를 어설프게 열어버린 터라 그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결국 속병을 앓고 ‘이 선수는 아닐 거야’라는 어쩌면 헛될 수도 있는 기대 속에 상처 입고 분노하는 건 야구팬들입니다.


※ 한국은 올림픽에 출전하니까 안전하다?

메이저리그의 약물 파동을 바라보면서 한국의 야구팬들이 비꼬면서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그래서 저 양키놈들이 올림픽 출전을 꺼렸구만. 우리나라는 도핑검사 강한 올림픽에 계속 출전해왔으니 안전하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얼마전 약물 검사에 걸린 매니 라미레즈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지난 5년간 15번의 도핑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마찬가지죠. 메이저리그는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은 1년에 2번 이상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긴 하지만, 당장 현재는 검사를 하지 않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체계적인 조사를 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러한 검사 방법에도 많은 허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3일만 있으면 체내에 있는 스테로이드 성분을 모두 배출 시켜 충분히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도핑 테스트를 통해 금지약물 사용 사실이 알려진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칸세코의 자서전이나 미첼 레포트에 이름이 언급되면서 혐의가 드러난 케이스죠.

올림픽은 정확한 시간이 정해져있고, 검사하는 시기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약물을 사용했다면 얼마든지 검사를 피할 방법이 있다는 뜻이죠.

애당초 ‘올림픽 등 국제대회 출전’은 대표급 선수들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 중 상당수가 WBC에 출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메이저리그의 탑 레벨 선수들이 WBC나 올림픽에 출장하지 않는 것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WBC의 포상금으로 1년치 평균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챙기지만,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에게 그것은 ‘껌 값’에 불과할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