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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현재’는 내다팔고 ‘미래’는 잃어버린 히어로즈

by 카이져 김홍석 2009. 12. 31.

그 동안 복잡하게 얽히던 히어로즈 사태가 일단락 됐다. KBO는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히어로즈의 가입금 문제를 풀어냈고, 그 직후 히어로즈는 3명의 선수를 트레이드했다.

이택근은 LG로, 이현승은 두산으로, 장원삼은 삼성으로 각각 떠났다. 그 대가로 금민철 등 5명의 선수를 받아오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히어로즈가 얻은 것은 현금 55억원이었다. 90년대 말의 쌍방울과 해태에 이어 또 다시 선수를 팔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구단이 팬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메이저리그에는 플로리다 말린스라는 구단이 있다. 돈 안 쓰기로 유명하고, 홈 팬들의 호응이 없기로 유명하며, 툭하면 앞날이 유망한 스타급 선수들을 팔아치우는 구단으로 악명이 높은 팀이다. 30개 팀이 존재하는 메이저리그에는 2569만 달러(약 300억원)에 달하는 사치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뉴욕 양키스 같은 팀이 있는가 하면, 팀 내에 10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고액 연봉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플로리다 같은 팀도 있다.

바로 이 플로리다가 돈을 버는 방법이 ‘선수 내다 팔기’다. 놀랍게도 이 팀은 좋은 선수를 키워내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키워낸 선수의 연봉이 크게 치솟기 시작하면 재빨리 다른 팀으로 팔아버린다.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300만 달러에 육박하는 현재, 플로리다에서 평균 이상을 받는 고액(?) 연봉자는 단 3명에 불과하며, 그들은 툭하면 트레이드설에 휘말리곤 한다.

단, 플로리다가 선수를 파는 주목적은 ‘선수단 연봉을 줄이는 것’이지, ‘현금을 받아오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흑자를 내는 구조이며, 그러한 수익의 일부는 모든 구단에 골고루 나누어진다. 따라서 그 비용인 연봉을 줄이기만 하면 각 구단도 얼마든지 흑자를 낼 수 있다. 플로리다는 팀 내 고액 연봉자를 처분하여 그 차익으로 수익을 만들어내고, 트레이드 때 받아온 유망주를 훌륭히 키워내 몇 년 후의 장사를 준비한다.

바로 이 점이 히어로즈가 플로리다와 다른 점이다. 자체적인 수익으로 충당하든, 메이저리그의 전체 수익 분배금을 통해서든, 플로리다는 흑자를 내는 구단이다. 프렌차이즈 스타는 없지만,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라인업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마이너리그에는 고액 연봉자를 팔면서 받아온 어린 유망주들이 넘쳐난다. 특이한 팀 컬러를 지닌 플로리다가 2003년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과, 지금 현재도 매년 다크호스로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팀은 ‘과거’를 팔아서 ‘현재’의 수익을 내며 ‘미래’를 대비하는 놀라운 팀이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내다 팔고 있는 것은 ‘현재와 미래’다. 수익 발생은커녕 연간 15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프로야구단의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선수를 팔았다. 이것은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기’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히어로즈의 선수 장사에는 ‘미래’가 없다. 특별히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를 대거 영입한 것도 아니고, 내보낸 3명의 선수가 팀의 재정 상태를 좌우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고액 연봉자였던 것도 아니다. 그런 선수들을 현금을 받고 판 이상, 당장 2010시즌의 운영은 가능할 것이다. 한 해만 놓고 본다면 흑자를 낼 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은? 그 이후는?

트레이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현금 트레이드’라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트레이드에 현금이 포함되는 경우는 대부분 ‘먹튀’라 불리는 고액 연봉자를 다른 팀에 보낼 때 그 연봉의 일부를 보조하는 것이다. 선수를 보내고 현금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얹어주면서 필요 없는 선수를 내보내는 방법이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리 메이저리그라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를 현금으로 사거나 파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수천만 안티를 불러 모으는 지름길이며, 그렇게 운영을 하는 구단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각 팀 마다 자체 마이너리그 팀에 수백 명에 달하는 젊고 어린 선수들이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히어로즈의 선수층은 한계가 있다. 이번에는 이택근-이현승-장원삼이 그 대상이었다면, 다음에는 강정호-황재균-황두성이 비슷한 형태로 다른 팀에 팔려가야만 또 다시 현금을 얻어 구단의 운영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럼 그들까지 팔아치운 후에는 더 이상의 답이 없게 된다. 결국 제 살 잘라먹기 식의 구단 운영일 뿐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히어로즈가 추진한 3건의 트레이드는 승인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만 구단 운영이 가능하다는데 어쩌겠는가. 일부 팬들이 ‘대안 없는 비판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지적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히어로즈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다름 아닌 ‘8개 구단 체제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KBO와 나머지 7개 구단은 히어로즈가 발을 빼고, 프로야구가 7개 구단만 남는 상황과 그 파장을 염려하고 있다.

트레이드가 승인된 근본적인 원인도 ‘히어로즈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단 당장의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이 옳다. 현실적으로 저 정도의 주축 선수 3명을 팔아서 운영해야 할 정도로 히어로즈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면, 히어로즈가 자체적으로 자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트레이드는 구단 고유의 권한이다. 가입금 문제가 해결된 이상 이번 3건의 트레이드에 제동을 걸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당 구단이 팀을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자금 사정이 나아져서 자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나 통용될 수 있는 원칙이다.

과연 히어로즈의 구단 운영진은 이 팀의 미래를 어디까지로 내다보고 있을까? 계속해서 구단을 운영할 마음은 있는 것일까? 결코 적지 않은 팬들이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자금과 시간을 확보한 히어로즈가 구단 매각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팬들의 관측이 단지 억측에 불과한 것일까.

대안이 없는 이상 막무가내 식의 비판은 곤란하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을 무조건 용인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임시방편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미지수다.

히어로즈의 이장석 사장은 지난해 ‘메이저리그식 구단 운영’을 도입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현금을 받고 선수를 파는 것은 결코 메이저리그식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도 잃어버렸고 그 대가로 미래도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과연 2~3년 후에도 ‘히어로즈’라는 팀을 볼 수 있을까? 과거에 ‘어쩔 수 현실’이라는 핑계로 벌어졌던 수많은 일의 뒤끝은 대부분 좋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히어로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