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의 '착각'과 팬들을 위하는 마음

by 카이져 김홍석 2010. 2. 5.

박찬호 선수가 아직도 올 시즌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빠르면 12월, 늦어도 1월 중에는 소속 팀을 찾아야 새 시즌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곧 스프링 캠프가 시작될 예정이고, 합류가 늦어지면 질수록 새 팀에서 박찬호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사실 박찬호의 ‘착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박찬호는 FA가 되어 새 팀을 물색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 ‘선발이 가능한 팀’이었죠. 자신의 에이전트인 제프 보리스에게도 그렇게 요구했고, 보리스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그 조건에 맞는 팀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관련된 일이라 이런 단정적인 표현이 좀 망설여지긴 하지만, 사실 메이저리그의 30개 팀 가운데 박찬호에게 선발을 보장해 줄 팀은 단 한 팀도 없습니다. 팀의 단장(GM)이 머리에 총을 맞거나 눈에 흙이라도 들어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지요.

박찬호는 2년 연속 불펜요원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자신을 선발투수로 원하는 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착각’이었던 거죠.

메이저리그에서 직접 뛰고 있는 박찬호 자신이 그런 문제에 관해 가장 잘 알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현장에 있기에 자기 스스로를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마치 이번에 장성호가 ‘25억원의 FA 보상금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을 원하는 팀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FA를 신청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운동만 열심히 하는 그들보다는 오히려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판단이 더욱 정확할 때가 있죠. 이번의 박찬호도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올해로 37살이 된 노장 투수. 메이져리그급 선발투수로 활약한 것은 2001년이 마지막이며, 그 후 5년의 암흑기와 1년의 마이너 시절을 거쳐 불펜투수로 변신하여 가까스로 부활에 성공한 선수.

이것이 그에 대한 좋은 선입견을 배제한 상태에서 박찬호라는 투수에 대한 냉정한 평가입니다. 바로 메이저리그의 각 팀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기도 하지요.

철저한 비즈니스로 이루어지는 메이저리그이기에 이런 수준의 투수에게 ‘선발 보장 계약’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노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난해 필라델피아에서처럼 ‘5선발 경쟁 기회’를 얻는 것 정도죠. 사실 이러한 기회를 주는 것조차도 상당히 이례적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건만으로도 GM의 입장에서는 일단 계약을 한 번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로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박찬호는 이미 지난해 동일한 조건을 얻었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으니까요.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FA 시장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얼어붙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시장이 열리고 곧바로 계약한 선수들은 나쁘지 않은 계약을 할 수 있었지만, 올해로 넘어오면서는 갑자기 시장이 냉각되어 버린 것이죠.

당초 박찬호는 올 시즌 FA 시장에 나온 ‘불펜투수’ 가운데 10위권 이내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레벨의 투수들은 계약기간이 시작되자마자 각 팀들이 다투어 300~400만 달러 수준의 연봉을 약속하고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00만 달러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런 시기에 박찬호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선발을 원한다는 조건만 붙이지 않았다면, 훨씬 이른 시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박찬호는 선발을 향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은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네요. 유능한 에이전트인 제프 보리스 조차도 박찬호의 조건을 관철시키기는 너무나 어려웠나 봅니다.

현 상황은 너무나도 나쁩니다. 각 팀의 올 시즌 구상은 95%이상 끝난 상황이고, 선발 로테이션에 대한 계획은 이미 완료된 시점이죠. 박찬호가 올 시즌 선발로 뛰게 될 가능성은 이제 제로에 가깝습니다. 아니, 구원투수로서라도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선 당장 팀을 찾고 스프링 캠프를 준비해야 합니다. 두 달 전과는 상황과 여건이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의 이 상황은 박찬호의 ‘착각’이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가 그의 착각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박찬호가 선발에 대한 꿈을 가지고 그것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팬들을 위해서’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비난할 수 없을 겁니다.

박찬호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왔죠. “국내 팬들이 경기를 시청하기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5일마다 정기적으로 등판하는 선발투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이죠. 이처럼 박찬호가 선발투수를 고집하는 것은 자신의 꿈과 더불어 팬들을 생각하는 그의 배려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도 박찬호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현재 국내의 메이저리그 팬은 그가 전성기를 달리던 97~01년에 비하면 10%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그가 선발투수가 되어 5일마다 등판한다 하더라도, 시청률은 당시의 2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겁니다.

더 이상 박찬호라는 이름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아니며, 새롭게 야구에 눈을 뜬 10대의 청소년들은 박찬호라는 이름에 대해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10년 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모든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고 말았죠. 박찬호의 경기를 보며 흥분과 감동을 느꼈던 당시의 청소년-청년들은 지금 모두 산업 일선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형편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국내의 야구팬들 중에는 박찬호가 선발로 나서든 말든 간에, 그보다는 매일매일 출장하는 추신수를 보기 원하는 팬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죠.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요. 어쩌면 이러한 점은 박찬호가 가진 또 하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조차도 박찬호가 팬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겁니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박찬호의 모습은 항상 그랬지요. 언제나 팬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 그것이 박찬호였습니다.

혹자들은 선발을 원하는 박찬호를 두고 ‘주제넘다’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뭐, 맞습니다. 주제넘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꿈꾸는 자들의 ‘희망’과 ‘소망’은 항상 ‘주제넘은 것’이 아니던가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희망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두고 ‘꿈’이라 부르는 것이죠.

박찬호는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몰랐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결정했던 1994년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했지요. 1994년 당시 그를 비웃었던 모든 전문가와 팬들은 1997년 박찬호가 14승 투수로 우뚝 서면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거로서의 성공’이라는 상상조차 못한 주제넘은 꿈을 실현시킨 주인공입니다. 착각을 해도, 주제를 몰라도, 그의 본질은 언제나 팬들을 먼저 생각하고 위할 줄 아는 위대한 야구선수이지요. 그렇기에 그의 선택과 꿈을 쉽게 비난하거나 헐뜯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앞으로의 계약 상황이 어떻게 될 지는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최악의 상황만을 피하길 바라며, 올해도 구원투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팀에 안착하길 바랄 뿐입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홍순국의 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