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올스타전에 스타팅멤버로 출장할 ‘올스타 베스트-10’의 투표 결과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팬 투표 결과 Eastern League(동군)의 주전으로 출장할 10명의 선수 가운데 무려 8명이 롯데 선수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현재 1,2위를 달리고 있는 SK와 삼성은 단 한 명도 뽑히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상황을 부채질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결국 또 다시 ‘롯데 vs 나머지 팬들’ 구도의 대결 양상으로 설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올스타 투표는 인기투표다”라는 롯데 팬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고, “그래도 올스타라면 실력이 기본적인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나머지의 의견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그건 오래도록 올스타전이 열릴 때마다 논란이 되어왔던 화두이기도 하죠.
한 팀이 3분의 2이상, 그러니까 7명 이상의 올스타를 싹쓸이한 경우는 2000년대 들어 총 5번 있었습니다. 2002년에 KIA가 8명, 2003년에는 삼성이 9명, 그리고 롯데가 2008년에 9명, 2009년에는 7명, 그리고 올해 8명이죠. 그리고 2008년의 경우는 정수근이 불미스런 사건으로 중간에 자격을 박탈되는 바람에 외야수 부문 4위였던 이종욱이 남은 한 자리를 차지했을 뿐, 실제로는 롯데가 10자리를 모두 싹쓸이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올스타 베스트 10의 특정 팀 편중 문제는 인터넷 투표가 도입된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요. 경기장을 찾아가서 용지에 투표를 하던 시기에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한 팀에서 7명 이상의 올스타가 배출된 경우는 해태(86년, 88년, 90년, 93년 – 각 7명)뿐이었는데, 당시 해태의 압도적인 강함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요.
그럼 올 시즌의 투표는 얼마나 잘못(?)되었으며, 대체 이런 일이 왜 계속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롯데 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일단 투표 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심하게 잘못된 것인지는 한 번 살펴봐야겠지요. 롯데 선수들이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단순한 팬심으로 몰표를 받았는지, 아니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수준인지, 일단 그것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위의 표는 ‘올스타 베스트-10 인기투표’의 결과입니다. 주황색 음영과 굵은 글씨로 표시된 선수들이 바로 올 시즌 팬 투표에 의해 올스타로 뽑힌 선수들이구요, 이름 부분이 검은색 음영으로 처리된 선수들은 성적 면을 놓고 봤을 때 해당 포지션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성적이 비슷한 경우에는 팬 투표 결과를 우선시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군 외야수의 경우 가르시아-김현수-이종욱-박한이의 4명 중 어떤 3명이 되더라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이기에 팬 투표 결과에 따라 박한이를 제외했다는 뜻입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건 동군 투수 부분의 조정훈과 1루수 박종윤, 그리고 유격수 박기혁입니다. 서군 역시 3루수 황재균, 외야수 부문의 이용규와 클락의 경우는 성적과 관계없이 인기에 따라 올스타로 선정된 경우라 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의 올스타 투표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각 팀의 26명 로스터 가운데 11~13명 정도가 투수입니다. 그런데 투수는 한 명만 뽑게 해놓고, 야수는 9명을 뽑습니다. 그러니 롯데처럼 타선이 강한팀이 다수의 올스타를 배출하게 되고, SK나 삼성처럼 투수력이 강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은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성적을 기준으로 한다 해도 삼성의 야수들 중에 올 시즌 올스타에 뽑힐만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고, SK의 경우도 박정권 정도만이 눈에 띌 뿐입니다. 물론 김광현이 투수 부문 후보에서 처음부터 누락되어 있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요.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를 아예 팬 투표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양대 리그를 통틀어 각각 7명씩은 실력과 인기가 비례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애당초 올 시즌 올스타 투표는 롯데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려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타자들이 많았으니까요. 8명의 롯데 선수들 가운데 5명은 성적으로 봐도 충분한 출장 자격이 있습니다.
박기혁의 경우는 WBC 출장에 따른 인지도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서군의 이용규도 동일한 케이스죠. 최근 야구장에는 여성팬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올스타 투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 편이지요. 사실 일부 야구에 정통한(혹은 미친) 팬들을 제외하면 선수들의 성적을 일일이 신경 쓰면서 투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아는 이름을 찍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로 명성을 쌓은 선수들이 유리하고,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물론 박종윤과 조정훈, 황재균과 클락이 올스타로 뽑혔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작 박종윤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선수가 박정권이 아니라 채태인이라는 점, 정성훈이 서군 3루수 가운데 가장 적은 표를 얻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되겠죠. 결국 롯데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팀의 팬들도 대부분 ‘우리팀 선수니까 일단 찍어줘야지’라는 생각으로 투표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성적만으로 올스타를 뽑아야 한다면, 류현진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서군의 나머지 투수 3명이 80만이 넘는 표를 얻었다는 것이 가장 코미디겠죠.
‘롯데 팬의 의식이 문제다’라는 건 잘못된 주장임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8개 구단 팬들의 의식 수준은 거의 비슷하니까요. 문제는 롯데 팬에서 찾을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그걸 개선하려 하지 않느냐를 따져 봐야죠.
8개 구단 팬들의 의식 수준이 비슷하다면, 결국 롯데 선수들이 올스타로 많이 뽑히는 이유는 롯데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결론이죠. 그럼 그게 롯데와 그 팬들의 잘못인가요?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마케팅에 적극적이고 또 ‘잘 하는’ 구단이 바로 롯데입니다. 단순히 부산이라는 대도시를 연고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게 아닙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심각한 암흑기를 보내왔고, 무려 17년 동안이나 우승과 거리가 멀었던 팀이 롯데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그건 최근의 좋은 성적과 더불어 구단의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마케팅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동안 다른 구단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요? 얼마 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홈페이지에는 “추신수가 올스타로 뽑히기 위해선 팬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메인화면을 한동안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말이지요. “왜 우리 팀은 성적이 좋은데도 올스타로 뽑아주지 않냐?”라는 불평을 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구단은 소속 선수들을 위해 저런 적극적인 마케팅을 실시한 적이 있었는가를 놓고 먼저 반성해야 할 겁니다.
SK가 박정권을 올스타로 만들어주기 위해 팬들을 위한 행사 같은 걸 했던가요? 삼성과 두산은 어떻죠? 저런 마케팅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들 스스로의 프로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프로는 8개 구단의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들이죠. 팬들은 프로가 아니라 철저한 아마추어입니다. 감정에 휩쓸려서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프로가 프로답게 마케팅을 해서 인기를 얻어야지, 팬들이 성적을 보고 투표해주길 바란다는 건 멍청한 짓이죠.
최근에는 넥센이 롯데와는 또 다른 컬러로 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야구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는 팬들은 넥센의 행보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야구장 내에서 보여주는 넥센 프런트의 적극적인 마케팅은 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지요. 그리고 그것이 올스타 팬투표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쁜 성적에도 불구하고 3명이나 올스타로 뽑힌 게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장 마케팅에 관심이 없는 구단이 SK와 삼성입니다. 휴대폰 광고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어떻게 야구단 홍보에는 이렇게까지 무관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팀 컬러의 문제도 있죠. SK 구단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성근 감독이고, 삼성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선동열 감독(양준혁 제외)이죠. ‘선수들이 직접 하는 야구’가 아닌 ‘감독의 야구’가 가진 한계가 올스타 투표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뜻입니다.
‘프로야구’는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야구’가 아니라 ‘팬들이 좋아하는 야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걸 망각하고 있는 구단들이 존재하는 한, 그 팀들이 올스타 투표에서 소외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롯데의 올스타 독식은 2008년 이후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바뀌어야 할 건 팬들이 아니라 ‘프로’인 구단과 KBO입니다. 그런데 KBO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매년 ‘역대 최다 투표’를 경신했다며 마냥 기뻐하고 있을 뿐이지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먼저는 동군과 서군의 재편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사실 인천에 연고를 두고 있는 SK가 동군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요. 롯데와 KIA를 같이 묶어도 이러한 편중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겠지만,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올스타 투표 기간의 조정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5월 초에 각 팀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한 번 추천된 후보가 끝까지 바뀌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김광현이나 히메네스 같은 선수들이 아예 선택 받을 권리조차 박탈당해버린 것이지요.
굳이 올스타 투표를 5월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요? 올해의 올스타 전은 7월 24일(토)에 열립니다. 그렇다면 7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간 단기간의 집중적인 투표로 올스타를 뽑아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앞선 3개월 간의 성적을 충분히 공지하고, 그걸 어느 정도 숙지한 팬들이 투표를 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올스타 투표를 일찍 시작해서 좋은 건, 페이지뷰를 늘려 돈을 버는 네이버뿐이니까요.
현 투표 시스템은 투표 화면에서 선수들의 성적을 일괄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선수들의 이름과 더불어 매일매일 업데이트 되는 선수들의 성적을 직접 확인만 할 수 있어도 오로지 팬심에만 의존하는 투표는 최대한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네이버는 올스타 투표 덕에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제공하지 않습니다. KBO에 들어가봐도 올스타 후보 명단을 공지사항을 통한 워드 문서로 확인할 수 있을 뿐, 후보들의 성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집 페이지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지요.
이 외에도 팬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헌데 KBO는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 팀에 올스타가 편중되건 말건, 일단 투표 수가 늘어나니 그게 다 돈으로만 보이는 걸까요? 팬들의 불만이 이렇게 높은데도, 몇 년째 전혀 바뀌는 게 없다면 그걸 어떻게 ‘팬들을 위한 기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팬들 사이의 불필요한 마찰이나 감정 싸움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요. 하지만 KBO와 각 구단들은 그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만 방관하며 팬들 사이의 싸움을 은연중에 부추길 뿐이지요.
문제는 롯데 팬이 아니라 마케팅에 관심 없이 오로지 성적에만 목숨을 건 프로야구의 각 구단들, 그리고 팬들의 목소리에 무관심한 KBO입니다. 그들이 바뀌지 않는 한, 팬들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가고, 박종윤 같은 선수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뻘쭘한 올스타’가 되어 나머지 팬들의 원성을 사게 되겠지요. ‘프로답지 못한’ 구단들과 KBO가 우리나라의 야구 문화 자체를 저질로 만들고 있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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