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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박찬호와 추신수, 그리고 아시안게임과 병역문제

by 카이져 김홍석 2010. 10. 28.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던 첫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15승 투수로 자리 잡았던코리안특급박찬호를 비롯하여 김병현, 서재응, 이병규, 김동주, 진갑용 등 훗날 한국 야구사에 기록될드림팀 1로 선발된 선수들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

 

당시 박찬호의 병역문제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LA 다저스에서의 맹활약으로 서서히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투수로 자리잡아가며 장기계약을 앞두고 있던 박찬호에게 있어 최대의 걸림돌이 바로 군문제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거로서 보여준 국위선양과 경제적 효과 등을 감안하여 그에게 병역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박찬호가 자연스럽게 병역면제를 받으면서 논란은 가라앉았고, 그 뒤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FA 자격을 취득한 후 대박 계약을 이끌어내며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냈다. 그런데 만일 우승하지 못했거나 프로 선수들의 대회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찬호는 현재 미국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아 시즌마다 비자를 받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 만일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박찬호는 과연 전성기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포기하고 군대에 갔을까, 아니면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따는 제2의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만일 그랬다면 국내 여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굳이 유승준이나 백차승의 사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논란이 되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마 박찬호 본인도 당시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병역문제는 언제나 핫이슈다. 특히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들에게 있어서 전성기를 보내야 할 시점에서 당면하게 되는 2년여의 공백은, 당장의 수입은 물론이고 선수 생명에 있어서도 커다란 위험부담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굵직한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프로 선수들의 대표팀 참여와 병역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민감한 화두로 급부상했다.

 

선수들이 합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길밖에 없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야구계에서는올림픽 동메달 이상-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기준으로 대표 선수들에게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으로 2년여의 병역 의무를 대신하며 본업인 야구에 충실할 수 있게 하는 특례를 마련했다. 그것도 국가대표로 선택 받는 몇몇 특급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기회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되면서 그나마 야구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노릴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지난 2006 WBC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일궈냈을 당시 호의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임시 특례가 추진되기는 했지만, 이듬해 곧바로 특별법이 폐지됐다. 그 결과 2009 2회 대회 때는 준우승을 하고도 타종목과의 형평성과 위화감을 거론하는 반대 여론에 밀려 병역혜택은 끝내 불발됐다.

 

따라서 다가오는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현재로선 당분간 야구선수가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할 병역미필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12년 전에 박찬호가 그러했듯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최대핫이슈는 단연 추신수다. 82년생인 추신수는 올해로 만28, 그에게는 이번 아시안게임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는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당시에도 대표팀 발탁이 거론되었으나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재박 감독이 끝내 추신수를 외면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대표팀은 대만에 이어 사회인 야구단으로 구성된 일본에게도 패하는 수모를 당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추신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20홈런-20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추신수의 대표팀 승선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며, 본 대회에서도 주전 우익수 겸 중심타자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대표팀은 그런 추신수를 비롯하여 송은범(SK), 안지만(삼성), 양현종(KIA), 고창성(두산), 최정(SK), 조동찬(삼성), 강정호(넥센), 김강민(SK), 임태훈(두산), 그리고 유일한 아마추어인 김명성(중앙대)까지 총 11명의 병역미필자가 선발되었다. 나머지 13명의 선수들은 올림픽을 통해 혜택을 받았거나 이미 군 문제를 해결한 선수들이다.

 

전반적으로 선발 과정에서부터 병역미필자들을 고려한 것이 눈에 띄나, 근본적으로는 최강의 전력을 꾸리는 데 주력했다. 김광현이 막판에 부상으로 인해 합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이번 대표팀은 4년 전 도하에서 실패를 겪은 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지난 2006년처럼 좋은 멤버를 보유하고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결국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는 다른 국내파 선수들에 비하여 병역면제에 대한 의미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만일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추신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한창 전성기를 달려야 할 시점에서 입대를 하게 된다면 사실상 메이저리거로서의 선수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추신수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현재 추신수는 미국에서 매년 취업비자를 갱신해가면서 뛰고 있는 상태. 추신수의 병역문제를 잘 알고 있는 클리블랜드 구단도 추신수에게 영주권 취득을 권유하고 있다.

 

여기서 영주권은 시민권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영주권은 미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고 한국 국적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추신수가 영주권을 받으면 군복무를 면제 받는 것이 아니라 만35세까지 입영을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메이저리그 생활을 위하여 편의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클리블랜드 구단이 지원한다면 추신수가 영주권을 발급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영주권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추신수가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로 활약하기 위해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시민권을 획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시민권은 말 그대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해 미국인이 되는 것이다. 유승준과 백차승이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은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지금도 한국사회의 일각으로부터는 매국노 취급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병역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다. 추신수가 일단 시민권이 아닌 영주권을 취득한다 할지라도 많은 이들이 그 영주권을시민권으로 가는 전 단계로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추신수가 당장은 그럴 의지가 없다 하더라도, 한번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라면 시민권에 대한 유혹 또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로서 추신수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굉장히 호의적이다. 지난해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추신수의 영주권 취득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90% 이상이 찬성을 표하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 그만큼 국위선양을 해냈고, 대표팀에서도 공헌한 추신수가 다른 또래 선수들과 달리 병역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불운을 안타까워하는 반응이다.

 

그러나 그 설문이 영주권이 아닌 시민권이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정작 추신수가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사회의 전반적인 여론이 온전히 추신수를 옹호하는 분위기로 흐를지는 아직 미지수다. 추신수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인생의 달린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병역문제가 그만큼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올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3시즌을 채운 추신수는 연봉조정 자격을 얻었고, 그 결과 당장 내년 시즌부터는 연봉 대박이 기다리고 있다. 추신수와의 장기계약 여부는 클리블랜드 구단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연 내년에도 추신수가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코리안 메이저리거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확실하게 금메달을 획득하여 모두의 축하와 환영 속에 합법적으로 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고민은 비단 12년 전의 박찬호와 지금 현재의 추신수만이 아닌, 앞으로도 그들의 뒤를 이어 해외무대의 문을 노크하는 모든 유망주들이 한 번씩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선전과 금메달 획득을 기원한다!

 

// 구사일생 이준목[사진=홍순국의 순 스포츠, 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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