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가 새로 영입됐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하는 수식어는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표현이다. 메이저리그는 모든 야구 선수가 바라는 꿈의 무대다. 그런 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라면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는 더 이상 희소성을 갖지 못한다. 올 시즌만 해도 16명의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메이저리그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선수는 SK의 마리오 산티아고뿐이다. 지난해 최고의 외국인 투수였던 더스틴 니퍼트는 두산에 입단하기 직전 시즌까지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기도 했다. 미치 탈봇, 스캇 프록터, 호라시오 라미레즈는 메이저리그를 즐겨 보는 야구팬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이제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는 더 이상 돈 많은 구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외국인 선수가 새로 입단하면 구단과 언론에서는 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기록했는지를 가장 먼저 알려준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간 메이저리그 20승 투수 출신인 호세 리마가 어떤 성적을 올렸고, 알 마틴, 트로이 오리어리, 루벤 마테오, 펠릭스 로드리게스 등이 어떤 성적을 기록했는지를 기억한다.
▲ KIA 라미레즈, 메이저리그 40승 투수 맞아?
그러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외국인 선수의 성공 조건은 그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 제 아무리 메이저리그 경력이 훌륭하더라도 현재의 기량이 그에 못 미치면,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실패만을 맛보고 짐을 싸야 한다. 올 시즌에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나올 수 있으니, KIA의 호라시오 라미레즈(33)가 그 주인공이다.
호라시오 라미레즈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40승(평균자책 4.65)을 거둔 투수다.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한 시즌도 2번이나 된다. 문제는 그가 빅리그에서 마지막으로 10승을 기록한지 7년이 지났다는 사실이고, 최근 4년 동안에는 주로 패전처리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의 전성기는 20대 중반까지가 마지막이었고, 이후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더 이상 주축 투수로 활약하지 못했다. 즉, 라미레즈는 소위 ‘한물간 메이저리거’ 출신인 셈이다.
물론 여전히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간판은 큰 의미가 있다. 2009년 KIA의 우승을 견인한 로페즈와 지난 시즌 MVP 윤석민에 버금가는 투구를 보여준 더스틴 니퍼트 등은 모두 메이저리그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다. 라미레즈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모두 직전 시즌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꽤 많은 피칭을 했었다는 점이다. 통산 성적은 라미레즈에 뒤질지 모르지만, 한국 무대에 뛰어드는 시점에서의 기량은 니퍼트와 로페즈가 더 나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라미레즈가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투구내용은 그를 ‘한물간 메이저리거’가 아니냐며 불안해하던 팬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첫 번째 등판에서는 2이닝 동안 3피안타 2실점했으며, 선발로 나선 두 번째 경기에서도 3회를 넘기지 못하고 7피안타 2볼넷 4실점하는 최악의 피칭을 했다. 아무리 시범경기일 뿐이라지만, 그 정도가 심각하다.
투수의 구위를 가늠하는 지표로 쓰이는 탈삼진 기록을 봐도 그의 공을 상대 타자들이 라미레즈의 공에 쉽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미레즈는 24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단 하나의 삼진도 빼앗지 못했다. 상대 타자들이 라미레즈의 투구를 공략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직구는 140km/h 전후로 형성되었으며, 변화구 컨트롤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두 번째 등판이었던 21일 경기에서는 2회까지 안정된 컨트롤로 잘 막아냈지만, 그것이 오래가진 못했다. 3회말 수비에서만 4개의 안타를 맞았고 폭투와 보크도 기록했다.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들을 한 이닝에 전부 저지른 셈이다.
3회 이후에 급격하게 구위와 제구력이 떨어진다면, 그를 선발 투수로 기용하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라미레즈는 지난 시즌 트리플A에서 거의 불펜 투수로만 활약했다. 과거에는 투수왕국으로 유명했던 애틀랜타 선발진의 한 축을 맡았지만, 최근 4년 동안은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구원투수로만 등판했고, 작년에는 마이너리그에서조차 선발등판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불펜투수가 선발투수로 변신할 때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 완급 조절과 스태미나다. 한 경기에서 100개 이상의 공을 지치지 않고 던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라미레즈가 3번째 이닝에 급격히 흔들린 것이 체력적인 문제라면, 선동열 감독은 라미레즈를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불펜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21일 경기에서 안타는 많이 맞았지만, 왼손 타자에게 맞은 것은 장기영에게 허용한 유격수 앞 내야 안타가 전부였다. 선발로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면 왼손 타자를 잡아내는 원포인트 릴리프로의 기용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라미레즈가 KIA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면, 그 대체자원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윤석민과 서재응은 확실한 선발투수로의 활약이 기대되지만, 양현종이 부상으로 5월 이후에나 복귀할 수 있어 그 기간까지 KIA는 검증된 선발투수 두 명만으로 길고 긴 패넌트레이스를 견뎌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주문이다. 확실한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라미레즈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메이저리그 경력 없는 SK 마리오의 호투
호라시오 라미레즈가 메이저리그 이름값의 허상을 보여주는 사례라면, SK에서 새로 영입한 마리오 산티아고(28)는 메이저리그 출신이 아니더라도 국내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리오는 지금까지 2번의 시범경기 등판에서 아주 좋은 피칭을 선보이며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시범경기 개막 경기에서 SK의 선발투수로 등판한 마리오는 KIA 타선을 상대로 5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 3탈삼진의 호투를 펼쳐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 두 번째 등판이었던 22일 LG전에서도 5회까지 5피안타 1실점 2탈삼진의 좋은 피칭을 한 후, 팀이 2-1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아무리 시범경기일 뿐이라지만, 두 경기에서 보여준 마리오의 투구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산티아고는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올라 선 경험이 없지만, 매 시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5년 루키리그를 시작으로, 2006~2007년 싱글A, 2008~2009년 하이 싱글A, 2010년 더블A 그리고 지난해에는 트리플A로 차근차근 승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량이 꾸준히 발전해온 것이다. 그리고 국내 무대에서도 위력적인 직구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처럼 국내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선수의 성공 기준은 단순히 ‘우수한 메이저리그 경력’이라 할 수 없다. 왕년의 화려했던 경력보다는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메이저리그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던 선수들의 성공확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 그리고 산타아고처럼 비교적 젊고 꾸준히 발전해온 선수들의 성공도 기대해볼 만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시범경기에 불과할 뿐이다. 라미레즈와 마리오의 성적과 평가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개막이 코앞에 다가온 만큼, KIA 팬들은 라미레즈가 지금의 기량에서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의 성공 여부는 한 팀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만큼 외국인 선수의 스카우트는 매우 중요하다. 로페즈와 니퍼트의 성공으로 이제 국내 스카우트들도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에 낚이기 보다는 현재 기량이 어느 정도이냐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를 소개할 때 가장 강조해야 할 부분도 해당 선수의 과거 경력보다는 전년도에 어떤 활약을 보여줬는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 야구타임스 신희진[사진제공=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블로거는 독자 여러분의 추천(View On)을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