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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 시범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동상이몽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6.

따뜻한 봄이 왔고 이제 곧 야구 시즌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정규 시즌에 앞서 시범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때마침 LA 다저스의 박찬호가 두 번의 시범경기에서 좋은 피칭(4이닝 무실점)을 선보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제이슨 슈미트의 부상으로 인해 5선발 자리를 따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호투는 분명 희소식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시범경기 성적은 선수들마다 각기 다른 잣대를 두고 봐야한다. 이미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검증이 된 선수들과, 주전 다툼이나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을 노리고 있는 선수들. 이들 양자 간에는 시범경기에 임하는 기본 입장부터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


▷ 시범 경기는 단지 컨디션 점검을 위한 전초전일 뿐

메이저리그와 한국 야구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하나 들자면 바로 겨울 동안의 전지훈련이다. 메이저리그에는 오프 시즌 동안의 특별한 단체 훈련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개인적으로 훈련을 하거나, 멕시코 또는 도미니카 등에서 열리는 윈터리그에 참여할 뿐이다.(이러한 윈터리그 참여는 구단에서 계획적으로 유망주를 내보내기도 한다)


비시즌 기간에는 공에 손도 대지 않는 선수들도 간혹 있다. 기본적인 체력 훈련은 열심히 하더라도 추운 겨울에 피칭을 해 어깨에 무리를 주는 투수는 없다. 오히려 시즌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훈련은 선수 생명을 갉아먹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검증이 된 선수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시범경기 조차도 일종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베테랑 선수들에게 시범경기는 새로 익힌 구질을 시험해 보거나 개막에 맞추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연습경기와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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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디선 점검’ 중인 에이스 브래드 페니 ⓒMLBphotographer.com


투수들의 경우를 예로 들면, 팀 내에서 보직(선발이든 마무리든)이 확정된 선수는 매 경기에 임할 때마다 한 가지씩의 숙제를 가지고 들어간다. 투수 코치와 의견을 조율한 뒤, 커브의 위력을 점검하고 싶다면 그 시합에서의 모든 결정구를 커브로 던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2~3이닝 정도 되는 등판 동안 패스트볼만 주구장창 뿌려대는 경우도 있다.


시범경기도 후반으로 가면 5이닝 이상을 소화할 때도 있다. 그럴 때에도 에이스급 투수들은 전력투구를 하지 않는다. 단지 ‘100여개의 공을 무리 없이 던질 수 있는가’하는 것만을 시험해 볼 뿐이다. 설령 계속해서 난타 당하고 방어율이 치솟는다 하더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호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테스트다.


선발 보직이 확정된 선수들이 시범경기에서 자주 무너지는 것은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시범경기에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임할 필요가 없다. 겨우내 쉬었던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개막전에 맞추어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 이것만이 그들이 시범경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해 시범경기의 경우 신시네티 레즈의 에이스 애런 하랑은 6번의 시범경기에서 25.2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메이저리그 최다인 46개의 피안타를 허용했고 그 결과 6.66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를 향해 의혹의 눈초리로 ‘선발 교체론’을 주장한 전문가나 팀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랑은 막상 정규 시즌이 개막하자 당당히 레즈의 개막전 선발로 등판했고, 시카고 컵스를 맞이해 7이닝 1실점(비자책) 승리를 따냈다.


팀 내 5선발 자리를 두고 경합하고 있는 선수가 시범경기의 모든 경기를 무실점으로 마감한다 하더라도, 팀 내 에이스를 로테이션에서 끌어내릴 수는 없다. 그 에이스가 시범경기 내내 두들겨 맞으며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 시범 경기에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선수들

위의 선수들과는 다르게 시범 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선수들도 있다. 40인 로스터 진입을 꿈꾸는 유망주나 마이너리그 계약자들, 그리고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굳히지 못한 신진 급 선수들과 주전 선수가 되기 위해 포지션 경쟁을 펼치는 선수들. 이들에게 시범경기는 매 경기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하나의 시험무대와 마찬가지다.


매년 시범 경기를 치르다 보면 기록실 맨 위를 차지하는 선수의 이름은 조금 의외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인지도가 있는 선수들이 컨디션 점검을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 시범경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올 시즌도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하고 있는 러셀 브란얀은 한때 ‘시범경기 홈런왕’으로 꽤나 주목받았었다. 매년 시범경기만 되면 홈런-타점 부문의 최상위권에 위치해있었기 때문. 하지만 그것이 그의 한계였고 10년이나 메이저리그 선수로 활약했지만 확실한 주전이 되지 못한 채 플래툰이나 백업 멤버로 만족해야만 했다.


어차피 시범경기에 출장하는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거나 팀에서 방출된다. 게다가 일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임한다고도 볼 수 없다. 즉, 시범경기의 수준 자체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메이저리그 급이 아닌 선수들도 간혹 좋은 성적을 거두곤 한다.


때문에 시범경기의 성적은 정규 시즌의 것과는 완전히 별개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수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임해야만 하는 중요한 실전 테스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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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한 시험’을 치르고 있는 박찬호 ⓒMLBphotographer.com


공교롭게도 한국 출신의 코리안 메이저리거들도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LA 다저스에서 5선발 자리와 로스터 진입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박찬호, 피츠버그와의 스플릿 계약을 정식 계약으로 만들기 위해 실적을 보여줘야만 하는 김병현,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을 노리고 있는 시애틀의 백차승과 템파베이의 류제국까지.


모두가 당장의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으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텝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야만 하는 입장이다. 우선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이기 때문이다.


정규 시즌이 개막되기 전, 스프링 캠프에 초청된 선수들은 일단은 모두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비슷한 조건 하에서 경기에 출장한다. 하지만 선수들마다 시범경기에 입하는 입장과 생각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에게는 단지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준비 운동 시간’이나 다름없는 이 기간이 또 다른 이에게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이겨내야 할 격전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구분되어 있는 메이저리그의 엄격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