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을 이끌고 출장한 감독은 전 LA 다저스 감독이었던 데이비 존슨이다.
메이저리그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써 감독으로도 성공적인 경력을 지닌 존슨은 미국인들이 신뢰하는 인물이다. 1984년부터 뉴욕 메츠의 감독을 맡았던 존슨은 14년 동안 메이저리그 팀을 지휘했다.
14시즌 가운데 무려 11번이나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으며, 5번이나 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그리고 메츠의 감독이었던 1986년에는 ‘어메이징 메츠’를 재현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통산 1148승 888패 56.4%의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명실 상부한 명장이다. 미국인들의 신뢰도 높으며 1999년부터는 2년 동안 LA 다저스의 감독을 맡아 박찬호를 지휘한 경력도 있다.
존슨 감독의 야구 스타일은 단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홈런을 위주로 하는 큰 야구’, 그리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선수들을 신뢰하는 믿음의 야구’가 바로 그것이다.
박찬호의 다저스 시절 국내 팬들은 마무리 제프 쇼 때문에 맘 졸여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쇼가 그토록 불안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단 한 번도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다. 99년 4월 박찬호가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한 이닝 동안 두 개의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아픈 기억을 당한 것도 당시 감독이 존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른 감독이었으면 교체하고도 남았을 상황에서 끝까지 선수를 믿고 기용하는 것. 이것이 존슨 감독이 지닌 카리스마의 원동력임과 동시에 약점이다. 덕분에 선수들에게는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맘 급한 구단주들은 좋은 성적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를 해고하기 일쑤였다. 그런 스타일로는 월드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미국 대표팀은 캐나다와의 4번의 평가전에서 11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이것이 존슨 감독의 스타일이다. 벤치에서의 지시를 최소화 하고 도루를 지양하며, 강공과 홈런으로 점수를 뽑는 방식. 믿음의 야구와 이어지는 존슨 감독의 스케일 큰 야구다.
존슨 감독의 이러한 선 굵은 야구는 일견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매우 닮아있다. 올 시즌 그러한 롯데를 가장 잘 잡은 팀은 벤치에서 가장 많은 지시를 내리고 가장 작은 야구(스몰 볼)을 추구하는 SK 와인번스. 발 빠른 타자들을 이용해 작전을 많이 거는 야구에 약점을 보였고, 이는 데이비 존슨이 지휘하던 메이저리그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한국 대표팀에는 발 빠르고 작전 수행능력이 뛰어난 타자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이들이 출루해 빠른 발을 이용해 흔들기 시작한다면 미국팀은 생각보다 크게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국전 선발로 예상되고 있는 봉중근이 인터뷰에서 “홈런을 맞는 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친 것처럼, 현재 미국 대표팀은 존슨 감독의 ‘빅 볼’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번 대표팀은 엄밀히 말해 트리플A 올스타급 수준이 아닌, 더블A 대표 수준. 한국 대표팀에는 그들이 나가길 바라마지 않는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 게임’에 몇 번이나 출장한 봉중근과 송승준이 포진하고 있다.(메이저리그 역사상 퓨처스 게임에 3번이나 출장한 것은 송승준이 유일하다)
또한 좌투수의 부재도 미국팀의 불안 요소다. 12명의 투수 가운데 좌완은 단 2명, 특히 믿을만한 좌완 불펜 요원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약점이다. 이에 대응해 김경문 감독은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좌타자로 꾸리겠다는 구상이다. 이종욱-이용규-이진영-이승엽으로 이어지는 좌타라인은 미국 대표팀으로서는 큰 부담이다.(동일한 이유로 한국전 미국 선발로 좌완인 브랫 앤더슨이 출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그 강함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실상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출장한 미국 대표팀은 과거에 비해 그다지 강하지 않다. 특히 금메달을 차지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에 비하면 선수 구성 면에서 훨씬 빈약하다. 벤 시츠-로이 오스왈트라는 마이너리그 최고 투수 유망주 두 명이 포진해 있던 당시에 비해, 이번 미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평가 받는 투수가 유일한 대학 선수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표 구성 당시에도 메이저리그 각 팀에서 팀 내 최고 유망주의 차출은 꺼리는 분위기였기에 트리플A가 아닌 더블A 위주로 대표팀을 꾸려야만 했고, 대표 명단을 발표한 이후에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선수가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멤버를 교체한 적도 있다. 데이비 존슨의 선 굵은 믿음의 야구가 100% 실현되기 어려운 선수 구성이다.
게다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한국 대표팀의 구성은 그러한 야구의 천적과도 같은 선수 구성을 지니고 있다. 김경문 감독이 이를 십분 활용하기만 한다면 미국 대표팀과의 승부가 의외로 손쉽게 풀릴 가능성도 있다.
8년 만에 기대하는 올림픽 메달의 꿈. 한국 대표팀이 원래 가지고 있는 장점만 100% 발휘한다면 미국과의 첫 경기를 기분 좋은 승리로 장식하면서 메달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