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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이승엽, 그 그릇의 크기와 가능성...

by 카이져 김홍석 2007. 4. 26.
 

130게임 40더블 29홈런 111득점 101타점 72볼넷 113삼진 .325/.427/.588(타율/출루율/장타율)


위의 성적은 84생인 알렉스 고든이 2006년 BA(Baseball America) 선정 ‘올해의 마이너리거’ 로 뽑힐 때의 성적이다(3루타는 2루타에 포함).

정말 굉장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22살이던 작년 AA를 완전 초토화시키며 최고의 타자 유망주로 떠올랐고, 결국 올시즌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고든에게 주전 3루수 자리를 보장해주어야만 했다. 올시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경기당 1개가 넘는 삼진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히 주전 3루수로서 6,7번 타순에 배치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한번 보자.

126게임 37더블 32홈런 96득점 114타점 55볼넷 79삼진 .329/.391/.598

이 성적은 어떠한가?? 위의 고든의 성적에 비해 조금이라도 모자람이 있는가? 볼넷이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삼진이 더 적으니 거의 대등한 성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한 가지 더 살펴본다면

126게임 36더블 38홈런 83볼넷 97삼진 100득점 102타점 .306/.408/.621

이 성적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위의 고든의 성적에 비해 조금은 위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지 않을런지? 이것은 다름 아닌 이승엽의 성적이다. 먼저 언급한 것은 이승엽(76년생)이 21살 때인 97년의 기록이고, 두 번째는 22살 이었던 98년도의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야구의 수준은 마이너리그 AA보다는 조금 위이고 AAA보다는 조금 못한 그 중간쯤이라고들 말한다. 이것은 AA와 AAA를 오랫동안 경험한 한국 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들이 한 말이니 나름대로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편하게 한국 야구의 수준이 단순히 AA라고 치더라도 당시 이승엽의 성적은 정말 가공할만한 수준이 아닌가??


AA에서 저만큼의 성적을 남기는 선수는 그리 흔치 않다. 아니 저 정도의 성적이라면 시즌이 종료되기도 전에 이미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상태일 것이다. 가정일 뿐이지만 이승엽의 97년도 성적, 저 성적이 작년 더블에이에서 85년생 타자가 기록한 것이었다면? 그랬다면 06시즌 ‘올해의 마이너리거’ 의 수상자는 바뀌지 않았을까? 그리고 고든과 마찬가지로 올해 팀의 주전을 확보하고 풀타임 메이져리거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선수의 포지션에 관계없이 말이다.


올해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글을 보니 이승엽에 대한 비난 의견이 또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이승엽의 팬이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롯데의 골수팬으로서, 삼성의 상징이자 기둥이었던 그는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작년 시즌 이승엽의 엄청난 모습을 보고 잠잠하던 일부 네티즌들이 올 시즌 타이론 우즈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보이며, 부상에 대한 걱정까지 겹친 이승엽에 대해 알 수 없는 비난을 하는 것에 대해선 그의 입장에 서서 변호를 하고 싶다.


이유는 단 한가지. 이승엽은 선동렬과 함께 우리나라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이며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야구의 간판이었으며 자존심이었다. 그렇기에 이승엽이 부정당하면 꼭 한국야구가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본인 역시 이승엽에 대한 아쉬움이 참 많다. 그것은 그가 결국은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그 가능성과 길을 여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결국 일본에 남기로 한 그의 결정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자들은 말한다.


‘이승엽의 타격 기술로는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승엽은 타이밍으로 승부를 거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 본래의 파워로는 메이져리그에서 홈런 타자가 될 수 없다’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대하는 1루 포지션에 동양에서 온 알 수 없는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줄 메이저리그 팀은 없다’


등등의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었다. 물론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는 그 근거들을 살펴보면 개인적으로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고, 그럴 가능성이 크겠다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20대 극초반부터 보여줬던 그의 타격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기본기가 튼튼하다는 것이며, 한국과 일본 두 리그를 모두 최고 수준의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야구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들로만 평가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파워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에 비해 모자라 보이고, 타격 기술이 떨어져 보인다 하더라도, 야구는 결국 스탯으로 증명하는 스포츠다. 어떤 타격 자세를 가지고 있고, 체격에서 약점이 드러나 보이는 선수라 하더라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마이너리그에서 저만큼의 성적을 보여준다면 그러한 선수를 일단 빅리그에서 실험해 보지 않는 팀은 없다.


실제로 이승엽이 가서 얼마나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날리던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올라가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 허다하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나 평가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며 빅리그를 호령하는 선수로 거듭나는 이들도 꽤나 많은 편이다. 그들의 한계가 어디인지는 일단 큰물에 던져져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야구에서 만점은 50점이다. 아무리 잘해도, 자기의 그릇이 100점짜리라고 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최고 점수는 어디까지나 50점이라는 이야기다. 이승엽은 한국에 있는 동안 항상 50점 만점을 받으며 자신의 가능성은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적응기를 가져야만 했지만 70점 만점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작년 시즌 다시 한 번 만점을 받으며 아직도 다 보여주지 못한 잠재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2006년 WBC의 사실상의 MVP는 이승엽이었다. 홈런-타점 2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당시 메이져리그 최다승 투수였던 돈트렐 윌리스에게 홈런도 쳤다. 물론 그 시기의 메이저리그 투수는 제 컨디션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 끝도 없다. 어차피 결과로 보여진 것은 이승엽의 홈런이었으니까.


그러한 선수가 20대 초반에 나이에 빅리그에 도전할 수 없었던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다. 요미우리와의 재계약도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은퇴 후 명예의 전당행이 유력한 이치로에 이어, 마쓰이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올해 진출한 템파베이의 이와무라까지도 쓸만한 타격을 보이며 팀 타격을 주도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승엽은 누가 뭐랄 것도 없는 역대 한국 최고의 타자이다. 앞으로 수십 년간 과연 그와 같은 타자가 또다시 나타날지조차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의 선수다. AA 수준이라는 우리나라와 AAA급이라는 일본리그에서 메이져리그에 수십 수백 번은 콜-업 되고도 남을 만한 기록을 남긴 선수가 바로 이승엽이라는 말다.


70+@임을 이미 증명한 그가 100점 만점인 리그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지는 아무도 모른다. 30점을 받으며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90점을 받으며 화려한 신고식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알렉스 고든과 같은 나이에, 고든이 뛰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리그에서,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은 더 위라고 평가 되는 리그에서 고든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던 이승엽이다. 물론 그 뒤 더욱 큰물로 가지 못했기에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해도 조금씩 조금씩 성장세를 이어온 선수이기도 하다. 작년의 기회를 포기한 그이기에 이제는 메이져리그에 진출할 가능성도, 혹시 모를 진출 뒤의 성공 가능성도 그리 크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본래 가진 포텐셜만큼은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해놓고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을 두고서 비판의(비난이 아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가진 것을 다 보여주지도 않은 선수에게(아니 보여줄 수 없었던 선수에게), 그 가능성마저 무시하려는 일방적인 비난은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승엽이나 박찬호를 응원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못하면 왠지 가슴 한구석이 타들어가는 것은 그들이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수준의 선수들이며, 외국에서, 그것도 일본과 미국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대 초반에 이승엽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더라면, 또는 이후에라도 일본이 아니라 미국으로 방향을 잡았더라면 빅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타자가 되었을 거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참으로 즐거움을 주지만, 허무함 또한 함께 주는 단어다. 하고 싶은 말은 단 한 가지, 이승엽은 아시아 무대에선 자신의 100%를 다 보여줄 수 없는 큰 그릇을 지닌 선수이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승엽이 메이저리그에 가는 것이 많이 힘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 모습에 대한 평가일 뿐 바람은 아니다. 여전히 이승엽이 빅리그에 한번 도전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또한 막상 도전한다면 일단 평가는 뒤로한 채 응원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