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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2008 타이틀 예상(4) - AL에는 MVP에 어울리는 선수가 없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9. 22.

양대 리그 사이영상과 내셔널리그(NL) MVP에 이은 4 번째 2008시즌 타이틀 예상, 오늘은 아메리칸리그(AL) MVP 레이스를 살펴본다.


작년에는 몬스터 시즌을 보낸 알렉스 로드리게스(54홈런 156타점 143득점)가 일찌감치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MVP레이스를 주도했었다. 이미 전반기가 마감하는 시점에서 에이로드의 수상이 확실해 보였던 상황. 만장일치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이견의 여지가 없는 수상이었다.(실제 투표에서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기자 두 명이 연고 팀 소속인 매글리오 오도네즈에게 1위 표를 던지는 바람에 만장일치에는 실패했다)


올 시즌의 양상은 지난해와 완전히 다르다. 어느 정도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NL와도 또 다른 양상이다. 올해 AL에는 MVP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춘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자격 없는 자들이 벌이는 맥 빠진 경쟁’이라는 점이 올해 AL MVP레이스를 실망스럽게 만드는 이유다.


▶ MVP와 사이영상, 신인왕 수상자의 선정방법

사이영상과 MVP는 메이저리그 팀이 있는 각 도시에서 두 명씩 선출된 기자단(AL 28명, NL 32명)이 투표권을 행사하여 수상자를 결정하게 된다. 사이영상과 신인왕의 경우 1위부터 3위까지 용지에 이름을 적게 되어 있는데, 1위는 5점, 2위는 3점, 3위는 1점씩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MVP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 용지에 적는데 2위부터 10위까지는 각각 9점에서 1점, 1위는 14점으로 계산해 그 총점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투표는 정규시즌 종료와 동시에 비밀리에 행해지며, 그 결과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일정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발표된다.


▶ MVP는 최우수선수? or 팀을 승리로 이끈 선수?

지난 NL MVP 전망에서 밝힌 바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MVP라 함은 ‘최우수선수’의 개념이 아닌 ‘팀을 승리(포스트시즌)로 이끈 가장 가치 있는 선수’를 뜻한다. 즉, 개인 성적만큼이나 팀 성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지난 2006년 AL에서 가장 뛰어난 개인 성적을 거둔 선수는 54홈런 137타점으로 리그 수위에 오른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빗 오티즈였다. 하지만 정작 오티즈는 MVP 투표에서 단 하나의 1위 표도 얻지 못한 채 3위 표만 무더기로 얻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소속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MVP를 다퉜던 선수는 자신의 팀을 가을잔치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미네소타 트윈스의 저스틴 모노(34홈런 130타점 .321)와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118득점 14홈런 97타점 34도루 .343)였으며, 1위 15표 등 총점 320포인트를 얻은 모노가 306포인트(1위 12표)를 획득한 지터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가장 가치 있는 선수’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최우수선수’라 할 수 있었던 오티즈는 193포인트로 3위.


MVP로 뽑힐만한 최소한의 기준선을 통과한 선수가 하나도 없다면 모를까, 기준 이상의 선수들이 존재한다면 ‘소속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과제는 MVP로 뽑히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선수(MVP)’로 뽑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준 이상의 개인 성적’과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AL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팀 성적을 별개로 판단하더라도 MVP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에 어울릴만한 성적을 거둔 선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28명의 기자들은 지금쯤 대체 누굴 찍어야 할 지 몰라 눈치만 보고 있다.


▶ 후보가 될 만한 선수들은 누가 있나?

현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모두 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보스턴, 템파베이, LA 에인절스 소속(‘O'로 표시)의 선수들이 4명, 현재 2.5경기차로 중부지구 타이틀을 놓고 경쟁중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미네소타 소속(’?‘로 표시)의 선수들 4명, 그리고 그 외 포스트시즌에는 탈락했지만 개인 기록이 좋은 선수들 5명. 이렇게 11명의 타자와 2명의 투수가 2008시즌 MVP의 가능성을 조금이라고 지니고 있는 선수들이다.(기록은 한국 시간으로 2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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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만 놓고 봤을 때 과연 이 중에 MVP에 어울린다 싶은 선수는 누가 있을까? 오히려 타자들보다 두 명의 투수들의 성적이 눈에 먼저 들어올 정도로 화려하다. 솔직히 말해 타자들 가운데 자신 있게 “내가 올해 MVP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없어 보인다.


사실 AL에는 올 시즌 개인과 팀 성적을 모두 겸비한 강력한 MVP 후보가 있었다. 바로 8월까지 36홈런 100타점의 훌륭한 기록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지구 1위로 견인한 카를로스 쿠엔틴이다. 하지만 9월의 시작과 동시에 손목 골절로 시즌 아웃되는 바람에 쿠엔틴의 기록은 거기서 그대로 멈췄고, 그 결과 MVP 레이스가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쿠엔틴이 원래의 페이스대로 잔여시즌을 소화해 42홈런 120타점 이상의 기록을 남겼다면 화이트삭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모든 것은 깨끗하게 정리될 수 있었다.


쿠엔틴 만큼이나 아쉬운 것은 창단 후 10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템파베이 레이스의 신인 3루수 에반 롱고리아다. 시즌이 시작하고 나서 보름이 지난 후에 메이저리그 팀로 올라온 이 신인은 타선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팀을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현재 템파베이 최고의 타자는 분명 롱고리아다.


하지만 롱고리아는 8월 초 부상을 당해 9월 중순까지 31경기를 결장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2001년의 이치로 이후로 신인왕과 MVP를 싹쓸이 하는 놀라운 신인의 탄생을 다시 한 번 지켜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첫 두 달 동안 빅리그 적응에 애를 먹었던 롱고리아가 완전하게 적응을 마친 6월 이후로는 매달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67경기에서 18홈런 54타점 .303/.371/.610(타/출/장)의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 두 명의 부상은 MVP 레이스를 다소 맥 빠지게 만들었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궜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자쉬 해밀턴은 더 이상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1위가 아니며, 팀은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써낸 덕에 5위권에 포함될 가능성은 크지만 1위 표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 MVP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경우, 시즌 초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 때문에 누적 스탯에서 손해를 본데다, 뉴욕 양키스마저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물 건너간 터라 좋은 개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수상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쿠엔틴의 부상 이후 경쟁자 로드리게스를 제치고 한 발 앞서 홈런 공동 선두로 뛰어 오른 미겔 카브레라의 성적이 눈에 띈다. 타점 부문도 2위. 하지만 역시나 시즌 초반의 부진과 그로 인한 연패로 인해 일찌감치 소속팀 디트로이트가 포스트시즌에서 멀어졌다는 점은 극복하기 힘든 난제다. 물론 남은 9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3할-40홈런을 달성하고 타점마저 1위에 오른다면, 나머지 후보들의 부실함을 틈타 의외의 선전을 노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클리블랜드 소속의 두 명도 아쉬운 케이스다. AL 최고의 1번 타자 그래디 사이즈모어는 아쉽게도 막판 홈런 페이스가 떨어지며 사실상 40홈런-40도루가 불가능해졌으며, 그와 더불어 MVP의 꿈도 멀어진 상황이다. 올 시즌 리그를 완벽하게 제압했다는 평가를 받는 클리프 리는 팀 성적만 받쳐줬더라면 1992년 데니스 에커슬리(7승 1패 51세이브 1.93)이후 16년 만의 투수 MVP에 도전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나 가을잔치로 견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먼저 지구 1위를 확정지은 LA 에인절스의 경우 타자들 가운데 마땅한 후보가 없다. 포스트시즌 기간에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사실 이 팀의 타선을 들여다보면 지금 95승 59패의 성적으로 30개 구단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시즌 중반 애틀란타에서 이적해 온 마크 테익세이라를 제외하면 3할-100타점-100득점 가운데 한 가지라도 달성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때문에 단일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경신한 마무리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후보로 명함을 내밀고 있다. 페넌트레이스 최강팀 소속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했고, 그에 따라 ‘K-ROD MVP론’이 일각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7번의 블론 세이브가 있었고, 조 네이든(37세이브 1.44-0.95/방어율-Whip), 마리아노 리베라(37세이브 1.47-0.70), 조나단 파펠본(39세이브 2.08-0.92), 그리고 호아킴 소리아(41세이브 1.63-0.84)까지 방어율과 Whip(이닝 당 안타+볼넷 허용율)에서 그를 앞서는 마무리들이 4명이나 있는 터라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름을 올려놓고는 있지만 쿠엔틴과 같은 소속팀의 저메인 다이는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남은 8경기를 모두 출장해도 쿠엔틴의 누적 스탯을 따라잡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쿠엔틴이 빠진 화이트삭스 타선을 이끈 공신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MVP를 수상할 순 없다.


▶ 그나마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후보는?

결국 남은 것은 보스턴과 미네소타 소속의 선수들이다. 현재 팬들은 지난해 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던 보스턴의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를, 전문가들은 미네소타 1루수이자 지난 2006년 수상자인 저스틴 모노의 손을 좀 더 높이 들어주고 있는 듯 보인다.


주목할 것은 현재 화이트삭스에 2.5경기 차로 뒤진 채 지구 2위에 올라 있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다. 미네소타가 남은 7경기에서 화이트삭스를 제친다면 모노의 MVP수상 가능성은 한 순간에 대폭 높아질 전망이다. 더군다나 두 팀은 한국시간으로 수요일부터 3연전이 예정되어 있는 터라 드라마가 만들어질 발판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페드로이아는 후반기의 맹활약으로 매니 라미레즈가 떠나고 데이빗 오티즈가 부진에 빠진 보스턴을 포스트시즌으로 견인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 덕분에 제법 부족해 보이는 개인성적에도 불구하고 MVP 후보로 올라 있는 상황. 이미 현지의 팬투표에서는 페드로이아가 제법 큰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상황 1. 미네소타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을 때

하지만 미네소타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면 현재 페드로이아가 지닌 모든 이점이 사라지고 만다. 아무리 득점 1위라고 해도 홈런에서 앞서 있는 타점 1위 모노의 기록을 앞선다고 말할 순 없으며, 2루수라는 포지션을 내세운다면 포수로서 페드로이아를 제치고 타율 1위에 올라있는 조 마우어의 명분이 더 설득력 있다.


또한 시즌 내내 꾸준한 성적으로 두 주포가 빠진 중심 타선을 지켰던 팀 동료 케빈 유킬리스의 존재도 ‘페드로이아 MVP 수상’에 있어서의 걸림돌이다. 오히려 유킬리스가 더 많은 표를 얻을 가능성마저 있다.


단지 미국 전역에 보스턴 팬이 워낙에 많아 팬 투표에서 앞서 있을 뿐, 지금의 상황은 지난 2006년과 거의 흡사하다. 당시에도 팬이 많은 양키스의 지터가 사전 팬 투표에서는 모노를 앞섰다. MVP 투표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 전국구 인기 팀의 선수에게 보이지 않는 이점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지터의 예에서 봤듯이 결국 팀의 중심타선을 책임지는 타자에게 무게의 추가 기울기 마련이다.


모노의 성적도 MVP로 봐주기에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미네소타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만 한다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생애 두 번째 수상의 영광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상황 2. 미네소타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을 때

문제는 미네소타가 포스트시즌에 탈락했을 경우다. 그렇게 된다면 모노의 성적도 미겔 카브레라와 자쉬 해밀턴, 그래디 사이즈모어 등의 선수들 앞에서 빛을 잃고 만다. 이래저래 찍을 선수가 없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역시나 페드로이아와 유킬리스의 성적은 MVP급으로 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꼭 그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을잔치에 올라갔을 만한 팀이라는 것도 주저하게 되는 이유다. 페드로이아의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워낙에 마땅한 선수가 없는 터라 의외의 결과가 생겨날 수도 있다.


글의 서두에서 2008년 AL MVP 레이스를 두고 ‘자격 없는 자들이 벌이는 맥 빠진 경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이다. 누가 되던 간에 그 당사자는 훗날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한 ‘하자 있는 MVP’의 주인공이 되고 말 것 같은 지금의 상황, 멋진 MVP의 탄생을 기대하는 팬들이나 투표권을 지닌 기자단이나 달갑지 않긴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최우수 선수’에게 MVP를 수상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시상 기준이 옳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과연 2008년의 AL MVP로 선정될 선수는 누구일까? 열흘쯤 후에 있을 투표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PS. 만약 필자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눈 딱 감고 주저 없이 클리프 리의 이름을 제일 위에 쓸 것이다. 그만이 최고의 영애인 '메이저리그 MVP‘에 어울릴 만한 멋드러진 스탯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김홍석(http://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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