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메이저리그는 칼 립켄 주니어와 토니 그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결정된 것을 시작으로 크렉 비지오의 통산 3000안타, 배리 본즈의 역대 홈런 신기록과 트레버 호프만의 사상 첫 500세이브, 탐 글래빈의 300승,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최연소 500홈런 등의 굵직한 대기록이 풍성한 해였다.
그러나 이미 예상된 폭탄이 마지막에 터지고 말았으니, 12월 13일에 공개된 ‘미첼 레포트’가 바로 그것이다. 금지 약물을 복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수들의 실명이 공개된 그 보고서로 인해 메이저리그는 각종 의혹과 불신이 난무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2008년은 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서도 여전히 상한가의 인기를 누렸다. 역대 최다를 기록했던 2007년에 비하면 관중 동원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비율로 보면 1%에 불과한 수치다. 4년 연속 이어왔던 흥행 신기록은 중단되었지만, 시즌 중 미국 전역에 불어 닥친 경제적인 불황을 감안하면 야구는 여전히 그들의 일상에 녹아 있는 생활문화임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2008년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인 오늘, 지난 1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팀별 성적 추이보다는 ‘사건’을 기준으로 살펴본다.(모든 날짜는 미국 시간 기준)
▶ 1~2월 - 트레이드 & 계약
1월 8일에는 기자단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선수가 발표되었다. 리치 ‘구스’ 고시지는 9번째 도전 만에 85.81%의 지지를 얻으며 당당하게 ‘Hall of Famer’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함께 후보에 올라 있었던 마크 맥과이어는 23.6%의 지지율로 2년 연속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오프시즌답게 선수들의 계약과 트레이드 소식도 풍성했다. 스캇 롤렌(현재 토론토)과 트로이 글로스(현재 세인트루이스)가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고, 필라델피아는 브래드 릿지를 635만 달러에 붙잡았다. 이후 릿지는 1년 동안 48세이브 0블론이라는 환상적인 활약으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했고, 필리스는 시즌 중에 그에게 2009년부터 시작되는 3년간 375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약속했다.
템파베이는 선발투수 제임스 쉴즈에게 7년간 4400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안겨주었으며, 미네소타도 2006년 MVP인 1루수 저스틴 모노를 6년간 8000만 달러의 장기계약으로 묶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29일에 벌어진 뉴욕 메츠와 미네소타 트윈스 간에 벌어진 4:1트레이드였다. 그 ‘1’에 속하는 선수가 바로 현역 최고의 투수인 요한 산타나였기 때문이다. 메츠로 간 산타나는 당시로서 역대 투수 최고액인 6년간 1억 3750만 달러의 잭팟을 터트리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또 한 명의 주목받던 에이스급 투수인 에릭 베다드도 5:1 트레이드를 통해 볼티모어에서 시애틀로 이적했다. 하지만 개인 통산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한 산타나와는 달리, 베다드는 부상에 시달리면서 ‘요란한 빈 수레’가 되고 말았다.
2월 초중순에는 금지 약물 의혹을 받고 있는 로저 클레멘스의 연방 청문회가 열려 한 때 영웅이었던 한 투수의 비참한 모습이 전 세계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 팬들에게 가장 아쉬웠던 사건은 2월 28일에 있었던 션 그린(통산 328홈런 1070타점)의 은퇴선언이었을 것이다. 과거 박찬호의 팀 동료로서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그린은 여전히 6~7개 팀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36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한편,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구단주 회의에서 재신임을 얻는데 성공해 2012년까지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금지 약물과 관련된 파동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셀릭이지만, 적자였던 메이저리그의 경제 구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흑자 체제로 돌아서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 3~4월 - 일본 개막전과 스몰츠의 3000탈삼진
시범경기가 한창이던 3월 중순에는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간의 시범경기가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경기장에서 열렸다. 메이저리거를 눈으로 직접 본 중국에 야구 붐이 일어났음은 당연한 일이고, 자국 선수들이 만리장성 위를 걷는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이는 2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2008시즌 공식 개막전으로 이어졌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야구의 인기가 높은 아시아 시장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으며, 그러한 계획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히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3월 30일에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워싱턴 내셔널스 간의 미국 내의 개막전이 열렸고, 이튿날부터 나머지 팀들이 일제히 162경기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특히 4년간 48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받고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후쿠도메 코스케는 개막전에서 9회말 동점 3점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시즌 초 한 때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 후의 후쿠도메는 1200만 달러짜리 벤치 선수로 전락, ‘계륵’ 신세가 되고 말았다.
4월 22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에서 존 스몰츠는 3회말 펠리페 로페즈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개인 통산 3000탈삼진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역대 16번째 대기록이며, 이는 200승-150세이브 동시 달성이라는 독특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스몰츠의 ‘명예의 전당’ 행 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하지만 스몰츠는 7이닝 1실점 10탈삼진으로 호투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6:0으로 패하는 바람에 기념할 만한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되는 불운을 겪었다.
▶ 5~6월 - 레스터의 ‘No-No’와 그리피의 600홈런
5월 3일에는 한국에서도 뛴 적이 있어 익히 알려진 훌리오 프랑코가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을 원하는 팀이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며 연락을 기다렸지만, 결국 유니폼을 벗기로 결심한 것이다. 만 49세가 될 때까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타자’로 활약하며 통산 .298의 타율과 2586안타 173홈런 1194타점을 기록한 프랑코는 후배 선수들의 좋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19일에는 보스턴의 신인급 투수인 존 레스터가 약체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9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와 득점도 허용하지 않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이 기세를 탄 레스터는 16승 6패 3.21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팀의 기둥 투수로 성장했다.
이후 31일에는 당시까지 레스터의 팀 동료였던 매니 라미레즈가 역대 24번째로 500홈런 고지를 돌파했고, 6월 9일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가 역대 6번째로 대망의 60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1989년 빅리그에 발을 들여놓은 후 꼭 20년 만에 이루어낸 대기록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가 시원한 홈런포를 터뜨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수가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가 아닌 아메리칸리그 소속이며, 그 홈런이 만루 홈런이라면 충분히 놀라운 뉴스거리가 된다. 거기에 홈런을 허용한 이가 NO.1 투수인 요한 산타나였다는 요소가 더해지면 그것은 해외토픽 감이다. 6월 23일 시애틀의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요한 산타나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자신의 빅리그 통산 첫 번째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하며 거함을 격침시켰다. 하지만 펠릭스 본인도 부상으로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바람에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한편, 펠릭스의 소속 팀인 시애틀 매리너스는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더니 결국 빌 바바시 단장과 존 맥라렌 감독을 3일 간격으로 해임했다. 이로 인해 팀의 간판타자 이치로는 그 지지 기반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었고, 지역 언론으로부터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말았다.
▶ 7~8월 - 올스타전과 트레이드 데드라인
역시나 7월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올스타전’이다. 제79회 올스타전 양키스타디움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뉴욕에서 열렸다. 홈런 더비에서는 자쉬 해밀턴이 1라운드에만 28개를 기록, 신기록을 작성하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정작 더비의 우승자는 저스틴 모노였지만, ‘인간승리 스토리’와 결부된 해밀턴의 인기는 그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았다.
다음날 열린 본 경기에서는 아메리칸리그가 연장 15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이클 영의 끝내기 희생 플라이 덕에 4:3으로 힘겹게 승리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내내 단 한 번의 패배나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브래드 릿지는 사실 이날 올스타전의 패전투수였으며, 2점 홈런을 때린 J.D. 드류가 올스타전 MVP의 영광을 차지했다.
올해는 마감시한(7월 31일)을 앞둔 시점에서 각 팀의 트레이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다. 8월에 있었던 웨이버 트레이드까지 포함한 주요 선수의 이동 현황은 다음과 같다.
이들 가운데 싸바시아와 라미레즈는 새로 옮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양키스와 애리조나를 제외하고는 위와 같이 좋은 선수를 영입한 팀들이 대부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기에, 시즌 중 트레이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 9~10월 - 비디오 판독의 시작과 포스트시즌
단장회의에서 결정된 비디오 판독이 처음 시작된 것은 8월말부터였으며, 그 역사적인 첫 번째 수혜자는 공교롭게도 지난 5월에 오심 때문에 홈런 하나를 도둑맞은 경험이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였다. 9월 3일 경기에서 에이로드는 파울 폴대 근처로 큰 타구를 날렸고, 그것이 비디오 판독 결과 홈런으로 인정되면서 잃었던 홈런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개인 기록도 풍성했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62세이브)는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종전 바비 식펜의 57세이브)을 세움과 동시에 60세이브의 벽을 허물었고, 마이크 무시나는 데뷔 18년 만에 감격의 20승 고지에 올랐다. 이치로는 역대 두 번째 8년 연속 200안타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에이로드는 사상 처음으로 11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쉬운 기록도 있었으니, 애리조나의 마크 레이놀즈는 역사상 처음으로 200삼진 고지를 돌파(최종 204개)하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9월 14일에는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인 카를로스 잠브라노가 올 시즌 두 번째 노히트 노런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정규 시즌 종료와 동시에 막판 대활약을 펼친 추신수가 9월달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어 한국의 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물했다.
아메리칸리그에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꺾은 템파베이와 LA 에인절스를 꺾은 보스턴이 챔피언십에서 격돌해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템파베이가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손에 넣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디비즌 시리즈에서 밀워키를 제압한 필라델피아가 시카고 컵스를 누르고 올라온 LA 다저스마저 4:1로 일축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기대를 모았던 두 신흥강호의 대결은 우천으로 경기가 연거푸 연기되는 악재 속에서 필라델피아가 시리즈 전적 4:1로 가볍게 제압, 팬들에게 28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우승의 1등 공신은 시리즈 MVP를 차지한 신세대 ‘체인지업의 귀재’ 콜 하멜스였다.
▶ 11~12월 - 또 다시 시작된 스토브리그
다시 찾아온 오프시즌의 시작은 각종 개인 수상 발표부터 시작되었다. 그렉 매덕스는 통산 18번째 골드글러브를 차지했고, 이치로와 토리 헌터는 8년 연속으로 외야수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됐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10번째 실버슬러거를 손에 넣었으며, 템파베이의 조 매든 감독과 시카고 컵스의 루 피넬라 감독은 양대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신인왕은 시카고 컵스의 포수 조반니 소토(NL)와 템파베이의 3루수 에반 롱고리아에게 돌아갔으며, 주목 받았던 양대리그 MVP는 보스턴의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괴물’ 알버트 푸홀스의 차지였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은 애당초 클리프 리(22승 3패 2.54)의 것이 확실했고, 박빙의 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보였던 내셔널리그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신성’ 팀 린스컴(18승 5패 2.62)이 예상보다 큰 격차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오프시즌의 최고 이슈는 FA 선수들의 계약 소식이다. 특히 뉴욕 양키스의 거물급 FA 싹쓸이는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주요 선수들의 계약 현황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렉 매덕스와 마이크 무시나의 은퇴선언이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큰 사랑을 받아왔던 ‘마스터(Master)’와 ‘무스(Moose)’의 퇴장은 많은 팬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2008년의 메이저리그는 많은 스타를 낳았고, 어떤 이들은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의 역사는 새롭게 다가올 2009년에도 여전히 이어질 것이다.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