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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180

2011년 8개구단 최강 마운드는 어디?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이 있다. 식상한 정의지만, 이제는 이 공식을 부정하기가 어렵게 됐다. 지난해 팀 타율과 홈런에서 각각 1,2위를 기록하며 강력한 공격야구로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롯데와 두산은 팀 평균자책점 1,2위인 SK와 삼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 팀 타율 3위 LG는 아예 포스트시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역시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마운드의 깊이에 있었다. 다음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들은 어쨌든 기본적으로 마운드가 강한 팀들이다. 디펜딩 챔피언 SK를 비롯하여 KIA와 삼성 등이 투수력에 있어서 빅3로 꼽힌다. 강력한 마운드와 수비력을 바탕으로 2011시즌 패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SK 마운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은 ‘밸런스’와 ‘타.. 2011. 2. 3.
박찬호-이승엽, 살아있는 두 전설의 만남 박찬호와 이승엽(이상 오릭스 버팔로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야구사를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투-타의 두 거물이다. 투수와 타자로서 포지션도 달랐고, 박찬호는 미국에서, 이승엽은 한국과 일본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보내는 등 서로 활약한 무대도 달랐지만, 알고 보면 두 사람의 야구인생 궤적은 전성기에서 위기와 극복에 이르기까지 은근히 닮은 구석이 많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풀타임 빅리거가 된 96년부터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1년까지 80승을 달성했고,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이승엽도 삼성에서 보낸 96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홈런타자로 승승장구하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갈아치우는.. 2011. 2. 2.
‘배신자(?)’ 이범호를 둘러싼 ‘진실과 오해’ 이범호에게는 지난 2년간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간이었다. 이전까지 이범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실한 플레이로 ‘무명신화’를 작성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던 선수였다. 대구 출신이지만 한화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이범호를 향해 한화 팬들은 개그맨 오지헌과 닮은 외모를 빗대어 ‘꽃범호’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대전의 프랜차이즈스타로 대접했다. FA를 코앞에 둔 2009시즌, 그 해 봄에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기회를 잡은 것은 이범호의 인생을 뒤바꾼 전환점이 되었다. 이범호의 소속팀인 한화의 사령탑이던 김인식 당시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것도 호재였다. 김동주가 빠진 3루 자리를 놓고 고민하던 김인식 감독은 이범호와 최정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두 선수 모두를 발탁했다. 당.. 2011. 1. 31.
제2의 박찬호-추신수가 나올 수 있을까? 박찬호가 1994년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LA 다저스와 계약한 이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전성시대였다. 유망주들의 해외진출 붐이 절정에 달한 1999년에는 김병현, 송승준(롯데), 최희섭(KIA), 오철희, 권윤민(KIA 스카우트), 서정민 등 무려 6명이 한꺼번에 MLB 구단으로 직행하며 그야말로 호황을 누렸다. 이 기간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남긴 성과도 화려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첫 테이프를 끊은 박찬호는 리그 최고의 우완 선발투수로 성장하며 전성기를 보냈고, 김병현은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멤버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도 봉중근, 조진호, 최희섭, 서재응, 류제국, 구대성 등이 대한민국 국적을 달고 빅리그를 누볐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2011.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