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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154

'한국형 핵잠수함' 김병현의 부활을 꿈꾸다! 삼성 라이온스에서 FA로 풀린 임창용이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재기에 성공하고, 국민타자 이승엽과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박찬호마저 일본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지금의 현실은 새삼 70년대에 태어난 선수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들은 대부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이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을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과 2009년 제2회 대회에서도 대표팀의 맏형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미 30대 중반을 넘은 노장 선수들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와 타자로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대 후반이 지난 야구팬이라면 에리조나 다이아몬드.. 2011. 2. 1.
MLB 명예의 전당이 ‘신의 영역’인 이유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야구선수가 프로에 입문하게 되면 보통 2군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물론 모든 선수가 프로의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신인 드래프트와 신고 선수를 합쳐도 8개 구단이 선발하게 되는 신인 선수의 숫자는 100명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교/대학을 졸업하는 야구선수의 프로 취업률은 10% 정도다. 어렵게 프로무대에 입문한다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선수가 2군 무대에서 첫 안타(투수의 경우는 첫 아웃카운트)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의 시간 동안 아마추어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라 해도 2군에서 자신의 실력을 어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프로에 입문한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2군이 아닌 1군 진입을 목표로 .. 2011. 1. 7.
롯데 ‘자존심’ 박정태와 ‘리틀 박정태’ 박시찬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탱크’ 박정태의 존재는 정신적 지주, 그 이상이다. 박정태는 1991년에 데뷔한 이후 거인 군단의 199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음은 물론, 암흑기를 맞이했던 2000년대에도 부산을 떠나지 않으며 끝까지 롯데 유니폼만 입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그는 2004년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자갈치’ 김민호, ‘호랑나비’ 김응국 등과 더불어 롯데 기관총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었다. 그는 데뷔 년도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991년 연고지 신인 우선지명을 받아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박정태는 122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85, 14홈런, 74타점을 기록했다. 신인왕을 받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성적이었다.(당시 신인왕은 쌍방울의 조규제-9승 7패 27세 .. 2010. 12. 18.
‘현해탄을 건너온’ 재일동포 야구선수 이야기 ‘국보급 투수’ 선동열(당시 주니치)을 시작으로 최근의 김태균(지바 롯데)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스타들이 계속해서 일본무대에 진출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일본 프로야구 출신인 카도쿠라 켄(SK) 등이 맹활약하면서 일본야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또한, 케이블 채널을 통하여 일본 프로야구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많은 야구팬들에게 일본 야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여기에 SK가 올 시즌 직후 재일동포 야구선수인 김대유(일본명 : 가네무라 다이유)를 영입한 것을 비롯, 삼성이 제일동포 출신인 가네무라 사토루와 계약한 것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일본 프로야구 출신의 선수가 국내무대에서 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됐다. 국내 선수가 FA 자격을 취득한 이후 일본무대에 진출.. 2010. 12. 13.